중독이라고 가볍게 이해하기에는

당신도 뭔가에 중독되어 있나요?

by 물지우개


엉망이었던 컨디션이 아침이 되니 좀 낫다. 눈뜨기도, 몸을 일으키기도 한결 편하니 여느 때처럼 냉장고 문을 열어 마실 것부터 찾았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찬 우유가 내장을 깨우니 근육마저 살아난다. 몸살로 운동을 이틀째 못 가고 널 부러졌다. 오늘은 운동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나는 살짝 흥분한다.


내 몸살의 일등공신은 운동이었다. 배고팠던 그날 저녁, 남편과 김치찌개를 정신없이 퍼먹어 속이 더부룩했다. 무거운 배가 러닝머신에서 덜렁거리니 평소보다 힘들었다. 유죄가 내려진 배에 면죄부를 주듯 나는 참고 달렸다. 평소 뛰던 거리보다 0.5km나 더 달렸을 때쯤 내 배는 수감생활을 끝내고 내려왔다. 긴 노역 끝에 다다른 석방이지만 몸은 자유롭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불편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꼬박 이틀 앓았다. 6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먹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 약을 먹으며 진통과 더불어 수면의 효과까지 있기를 기도했다. 첫날은 실패했고 어제는 먹혔다. 그렇게 살아났는데 칩거의 대미로 운동이 떠오르다니. 이쯤 되면 중독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건 30대 초반이었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주변을 두 시간 정도 걷는 것을 시작으로 헬스, 요가, 걷기, 달리기를 꾸준히 했다. 저녁을 거의 먹지 않거나 가볍게 먹는 습관도 이때부터다. 올해 들어는 매일 8km를 한 시간 안으로 달리고 있다. 내년에는 자전거로 10km 떨어진 학교까지 출퇴근을 해 보려고 한다. 그다음 해에는 학교까지 달려서 출근하는 꿈도 갖고 있다. 운동으로 여러 번 부상을 당했고 아팠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다.

부모님은 평생 일을 하셨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 아빠가 한순간도 벌이를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오빠와 내가 어릴 때도 엄마는 부업을 했다. 아빠는 엄마의 부업 능률을 올리는 기계를 회사에서 몰래 만들어 왔다. 가난하게 자란 두 분은 남들보다 벌이가 빨랐고,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은 절실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하신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은 가정을 꾸려 독립한 지 오래되었고(다행히 둘 다 먹고살만하다), 부양할 부모도 없다. 그래도 돈을 벌러 가신다. 아버지는 쇠 깎는 공장에 가고, 엄마는 건물 청소를 한다. 남들은 그 나이에 취직하니 능력 있다 말할지 몰라도 나는 마음이 아프다. 놀면 뭐하냐고, 아플 때 쓸 병원비 벌러 간다 하시지만 나는 일하러 가기 때문에 병원비가 든다고 생각한다. 일하러 가지 않아야 규칙적인 용돈을 드린다고 협박해도 부모님은 놀면 몸이 아프다 하신다. 다행히 지금까지 큰 병이나 부상은 없으셨다. 얼굴도 좋아 보인다. 나는 부모님을 중독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휴직하는 동안 유일하게 나를 불쌍히 여긴 사람은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는 기꺼이 불쌍해지기로 했다. 효도는 별게 아니니.


이런 분이 어디 부모님뿐이랴. 내가 작년에 살았던 섬에는 밭일을 하시는 분이 많았다. 예상하겠지만 밭일은 벌이가 되지 않아 대부분 두세 개 업을 하신다. 어느 분은 식당 일을 했는데 식당도 여러 군데를 다니셨다. 그러는 중간에도 보건소 청소를 했고, 도로 가로수도 정리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공공근로를 했고 물때가 맞으면 조개를 팠다. 그분이 섬을 나가는 가장 빈번한 목적은 병원 치료였다.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일을 말렸다. 그분은 치료가 마치고 섬에 오자마자 다시 일을 했다. 힘들었던 과거에는 일초의 노동도 절실했지만 지금은 살림이 괜찮아 보이는데도 말이다(실제 그분도 동의했다). 그분 역시 중독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멈출 수 없다.




나의 달리기는 노동이 아니지만 분명 미련하다. 노동 중독도 돈이 목적이든 아니든 몸이 망가질 정도면 분명 미련하다. 자기 의지로 몸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는 비극에 가깝다. 그러나 불공정, 불평등, 부당, 부조리 등 ‘不’ 자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중독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중독의 책임을 비열하게 전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히 노동 중독은 많은 부분 사회 책임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 피라미드의 제일 밑바닥에 사람들은 중독될 만큼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가 된 지금도 피라미드 하층의 삶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계층 구분이 더 뚜렷해지니 분노가 쌓인다. 연대해야 할 동지도 물어뜯는다.


‘열심히 잘 산다’는 말로 보듬기엔 불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연민의 시선이 폭력이라는 말에 동의하나 분별없는 노동으로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를 신문에서 자주 본다. 노동 중독인 내 주변인이 피해자가 되어 신문에 실리는 일은 결코 보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날더러 운동이 필요한 몸이라고 충고하지 않는데 나는 왜 아플 때까지 운동하는지 생각해본다. 일단 건강인데, 건강을 유지하는 목적이 오래오래 돈 벌기 위해서는 아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걸 그룹 멤버 같은 몸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나마 떠오른 답이 노화인데, 할머니 평교사에 대한 편견이나 자격지심이 두려운 걸까? 운동 중독으로 병든다면 더 빨리 늙을지도 모르니 지금이라도 중독에서 정신을 차려야겠다. 오늘은 운동 말고 보양식을 먹으며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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