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퇴사하고, 한국을 떠났다가, 코로나라는 복병에 몰려 꼼짝없이 한국에 갇히고, 서울을 떠났다가 구직을 위해 다시 서울로 와야하고, 30대에 갑자기 회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와중에 어떤 면접들은 참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1. 첫 면접
스타트업이었고, 겨울이었다.
옷장에 처박혀있던 꼬깃한 (6년 전에 처음 입고 안 입은) 면접 정장을 입고 갔다. 정장에서 쾌쾌한 냄새가 났다. 몇 년만에 구두를 신어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갔다. 면접관이 두 명이었다.
"학교 전공 관련해서 질문 드려도 될까요."
"전공은 XX인데 실무 경험은 XX이네요. 심경의 변화나 계기가 있었나요?"
“프리랜서 일을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회사에 입사하면 프리랜서 일은 그만 하시는 건가요?”
“평소에 업무 스트레스 어떤 방식으로 푸시나요?“
"혹시 최근에 관심 있는 (업계 관련) 사회적 이슈 같은 게 있나요?"
집에 와서 면접을 복기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그간의 업무 경력은 (많은 문과생이 그렇겠지만)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과 큰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요즘 취준 말고는 인터넷을 안 하고, 뉴스도 챙겨보지 않고 있어서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다. 뉴스를 볼 마음의 여력조차 없다는 말이 믿어지는가? 실제로 그랬다. 내 마음이 너무 지옥같아서 어디에서 누가 다치고, 죽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고, 경제가 안좋아지고 하는 얘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아무튼, 거의 6년 만에 면접이란 것을 봤고 면접관 두 분이랑 1시간 얘기했다.
그분들은 참 예의를 다해서 내 인생에 대해 질문을 해줬다 그 점이 고마웠다.
내가 대답을 했을 때 특별히 긍정적인/부정적인 반응 없이 묵묵히 들어주거나 대답해주시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2. 총 6시간에 달하는 면접
외국계 기업이었고 많은 면접을 많은 면접관들과 여러 번 봤다.
몇 주 동안 이 면접만 준비했다.
빡센 인터뷰들이 많았고 질문들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았다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질문도 있었는데 면접 회차를 거듭할수록 나의 인생 전반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다
“만약 대학 전공을 다시 선택한다면 어떤 전공을 선택했을 것 같은지, 그 이유?”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다시한다면, 어떻게 다르게 했을 것 같은지?"
"프리랜싱은 왜 시작했고 왜 그만 두려고 하나? 왜 다시 회사 오려고 하나?"
"너를 가장 변화시킨 두 가지 경험?"
"대학교 입학할 때 목표는 뭐였는지"
"졸업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나 자신에 대해 알기가 두려워서 스스로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면접관이 대신 해줘서 참 고마웠다
그리고 면접을 거듭하면서 면접관이 나를 떨어뜨리려고 한다기 보다는 나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들도 본인들의 일을 하면서 면접까지 보려면, 괜찮은 지원자를 선별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하려고 했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나를 궁금해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이 어려운 면접을 준비하고, 보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걸 배웠다.
모의 면접을 진행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는데, 임의의 질문들을 무수히 받고 그에 대한 답변을 빨리 내놓는 과정에서 진짜 나의 마음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마음을 모르겠을때 갑자기 누가 뭔가를 물어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온 경험이 있지 않은가? 면접 덕분에 내가 어떤 직무와 업무환경을 원하는지부터, 내가 왜 지금 다시 회사를 가려고 하는지, 나의 프리랜싱은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고 생각을 정리할수 있었다.
어떤 포인트들에 면접관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느끼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면접에서 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조금씩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3. 면접관과 토론을 하기도 했다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또 각종 제도를 알아보면서 '데이터'라 불리우는 직무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다. 또 지난 경험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한 적이 있었고, 혼자 조금씩 데이터 분석 관련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런 고민들을 숱하게 하던 내가 AI 관련 회사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면접관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 갖고 있었던 생각을 말했고, 면접관분이 매우 흥미롭게 그것을 들어주셨고 그분의 생각을 말해주셨다. 현업에서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흥미로워서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면접인 것을 잊을 만큼 몰입해서 대화를 나눴다
4. 나도 면접관을 본다.
회사가 구직자를 보는 만큼, 구직자도 회사를 본다.
특히나 그 회사의 얼굴이 되어 지금 내 눈 앞에 나타난 면접관은 이 회사에 대한 나의 인상을 판단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 면접관의 옷, 차림새, 표정, 얼굴, 말투, 나를 대하는 방식, 질문의 내용 등..
물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대해선 그런 것을 볼 여유가 없이 그저 '저를 뽑아주세요' 하는 마인드로 임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나와 맞는 직장을 찾겠다라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간다면, 면접관을 보게 된다.
마치 소개팅과 같다. 우리가 소개팅에서도 되게 사소한 것들에 반하지 않나. 젓가락 두 개를 가지런히 놓는 모습이라던지. 그래서 채용 절차도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개인이 문자를 보내는지, 회사의 채용 이메일로 보내는지, 문자에 줄글만 나타나는지, 디자인 요소가 들어간 이미지가 있는지 등.
재취업 과정에서 본 많은 면접들은 하나 하나 나에게 의미가 있었고 많은 교훈과 배움을 줬다.
나와 눈을 맞추고 나에 대해 질문을 해주던 면접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다음 화에서는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다르게 했을지에 대해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