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물킴 Nov 11. 2020

새벽 5시 30분 출근 준비하는 신입사원의 일과

10년 전 첫 직장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까지.(요새는 그 회사도 드디어 유연 출퇴근제라는 것을 하고 있단다.) 하지만 정작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전 7시 30분 즈음에는 자리를 지켜 출근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 이 룰을 철저히 지키는데 도움을 주고자 회사의 통근버스는 7시 20분 즈음 회사에 도착하는 스케줄로 동선이 짜여있었다. 유난히도 서울 외곽에 위치했던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 내가 사는 곳에서 통근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은 6시 30분.



5시 30분

첫 번째 알람 소리가 울린다. 한 번에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면서 잠시 뻐겨본다.


5시 33분~45분

요란하게 울리는 두 번째, 세 번째 알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동시에 지금 10분 더 자면 얼마나 더 허둥대면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잠시 계산한다.


5시 45분

최대한 허둥대길 다짐하며 드디어 기상.


6시 15분

후다닥 샤워, 환복, 대충 머리를 만진 뒤 집에서 나선다.


6시 20분

통근버스 정류장에 도착. 통근 버스에 자리가 남아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선배들이고 뭐고 눈치 보지 말고 첫 번째로 줄을 서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다.


6시 30분

통근버스 탑승. 줄 선두에 선 덕분에 두 자리 남은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앞에 선배가 서있던 말던 야멸차게 눈을 감아 버린다.


7시 20분

해도 온전히 다 뜨지 않은 동안, 병든 닭처럼 차 안에서 졸다가 회사에 도착. 바로 자리로 가지 않고, 회사 구석 빈 회의실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 이미 먼저 도착한 다른 직원들이 동굴 속에 파고든 곰들처럼 엎어져 웅크리고 쪽잠을 자고 있다. 나도 한 자리를 찾아서 동참한다.


7시 55분

통근버스에 문제라도 있었던냥 바쁘게 걸음을 하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 가방을 놓고, 팀장님께 눈도장을 찍는다. '저 지각은 안 했어요~'


12시

오전 일과 종료 후 점심시간. 대기업이라 점심시간만 되면 쏟아지는 인간들의 군상이 꼴 보기 싫어 근처 야외로 나가 가벼운 산책을 하며 점심을 때운다. 최고로 힘든 신입사원은 바로 이 몸이라며 동기들과 서로 불행 배틀을 뜬다.


17시

정식 퇴근시간이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역시 같이 저녁을 먹자던 친구들 모임에 나는 없는 셈 치라고 말해두길 잘했다.


19시

미안해하며 자리를 뜨는 선배들이 하나 둘 목격된다.


멋진 사람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당당히 퇴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19시 20분쯤 적당히 일어나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19시 15분

퇴근 목표 시간 5분 전. 팀장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척하더니 한마디를 하고 지나가신다.


누구 같이 저녁 먹을 사람 있나?


몇 초간 지옥 같은 정적이 흐른다. 그때, 나의 그룹장이 '팀장님, 저랑 가시죠.' 하며 번쩍 손을 드는 것도 모자라, 나를 힐끗 쳐다본다.


아, 눈 마주쳤어, XX....


20시

'그래, 회사 돈으로 저녁이나 실컷 먹자'며 굳게 마음먹고 따라나선다.


22시

1차 식사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해 기분이 좋으신 팀장님이 노래방을 가자며,


오늘 빠지는 사람 아무도 없다!


노래방을 가자며 선수치고 먼저 식당 지하로 내려가신다. '하아... 따라갈까 말까' 고민하다, 태도 좋고 적극적인 적응의 노력을 보이는 신입사원의 매뉴얼에 따르기로 한다.


22시 20분

마이크를 놓지 않고 계시는 팀장님의 애창곡을 함께 따라 부르며 애교 섞인 춤을 시전 한다. '남자가 춤추는 거 좋아하는 남자들 이렇게 많은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야.' 생각한다.


이번 우리 신입사원 00 이는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좋네!


애교 춤 한 번으로 일 잘하는 신입사원 칭찬까지 획득한다. 소기의 성과 달성.


23시 10분

정신없이 선배들이 노래 부르는 틈을 타 잠시 빠져나와 노래방 사장님을 찾는다.


사장님, 서비스 시간 주지 마세요. 제발요. 저 집에 가고 싶어요.


간곡히 부탁한다.


23시 30분

노래방 미션 종료. 기분이 한껏 좋아지신 팀장님 택시를 불러드린다. 제발 빨리 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 택시가 도착하고 절도 있게 문을 열어드린다. 팀장님 뒷좌석 탑석 확인 후 깍듯이 인사한다. 이어서 선배들의 택시도 부리나케, 빠릿하게 잡아드린다. 그래야 나도 집에 빨리 갈 수 있다.


23시 40분

드디어 모든 선배들을 먼저 보내고 내 택시도 잡는다.


이제 집에 들어가시나 봐요~
아니, 오늘 제가 태운 앞손님이 어쩌구 저쩌구~


택시기사가 말을 건다. (타다 누가 없앴어. 왜 없앴어.)


죄송한데요. 조용히 갈 수 있을까요? 제가 진짜 너무 피곤해서요


택시기사 표정이 안 좋다. '젊은 놈이 싸가지 더럽게 없네' 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죽겠다.


00시 30분

집 도착. 엄마 아빠는 아들 기다린다고 졸린눈으로 거실서 버티고 계신다.


01시

간단한 세면 후 침대에 누우며 알람을 맞춘다. 새벽 5시 30분으로. '하아... 4시간을 자고 사람이 내일 하루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생각하며 잠든다. 제발 내일이 천천히 오기를 기도하면서.


5시 30분

첫 번째 알람 소리가 울린다. 한 번에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면서 잠시 뻐겨본다.






그 회사의 시계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었고, 나는 딱히 불평할 생각이 없었다. 하기 싫으면, 못 견디겠으면 나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3년 넘게 다니면서도, 나는 이 통근시간만큼은 마지막까지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거 10년 전 이야기인데,
요새는 이렇게 사는 사람 아무도 없겠지?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