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여유롭고 노련해진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둔다. 어렸을 때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패기와 열정이 있었다면, 지금은 뻣뻣해서 부러질 것 같은 느낌에 기름칠을 조금 해둔 느낌이랄까.
우리는 지속해서 나이 들어가고, 나와 내 주변의 환경은 시시때때로 변해가기에, 그 순간에 걸맞은 삶의 가치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매번 점검한다.
나에게 언제나 최상위의 화두는
'무엇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줄 것인가'이다.
그것이 때로는 나에게 꿈을 좇게 하고, 쉼에 머물게 하고, 반성과 발전을 이루게 해 준다. 여러 가지 생각의 단련을 통해 긴 시간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생각법, 시간이 지나고 나니 빛을 발했던 생각법들이 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고작 이거였냐'는 물음에도 별 수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들 일지는 모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역시 이거였나!'싶을 수도 있겠으니 적어본다.
'방구석에서 잠만 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니? 밖에 좀 나가라'
는 말이 아니다.
방구석에서 잠을 자는 게 좋다면, 자는 것이 행복이다. 다만, 방구석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내겐 행복이 필요하다.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행복이라는 현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최대한 많이 찾아두는 것이 좋다. 돈이 있을 때, 없을 때, 바쁠 때, 한가할 때, 혼자 있을 때, 가족이 없을 때, 솔로일 때 등등 온갖 상황을 마주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즐거울 수 있는 방법들을 가급적 많이 찾아두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것이 큰 즐거움을 가져다 줄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다. 다양한 감정, 놀이, 상황, 취미, 일 등에 본인을 노출하고 본인이 느끼는 감정들을 놓치지 말고 잘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바쁨이라는 흐름 속에 나를 맡기다 보면 내가 느끼는 찰나의 감정들을 놓치기 쉬우니 챙겨봐 주자.
'어? 이거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나 이거 좋아하나? 계속해볼까?'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시간과 경험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 시간이 꼭 다수를 향해, 외부를 향해 나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100점을 맞기 위한 시험지를 푸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 나만의 답을 찾자. 다만, 이 과정에서 '부지런함'은 필요하다.
부지런히 나를 발견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탐구하듯 많이 알아낸 사람들은 타인과 외부 상황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의존의 경향을 줄일 수 있고, 이는 결국 자존감과도 연결이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기쁨이라도 상관없다. 그것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 자주 나에게 기회를 선사하는 것이 좋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춤출 것 없다.
그냥 내가 추고 싶을 때 추면 된다.
남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들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내 행복의, 인생의 절대 진리나 평가기준이 될 필요 없다. 칭찬을 들었을 때 가져야 하는 감정은 나를 좋게 생각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충분하다. 나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말자.
'이쯤 하면 열심히 한 걸까? 이쯤 하면 행복한 걸까? 이쯤 하면 칭찬받을 수 있나?'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감정과 상태를 채점받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선생님, 부모님, 학자, 부자 등 권위와 권력을 가진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고, 남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안도하고 기뻐해 왔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크게 기뻐할 것도, 욕을 먹었다고 해서 크게 낙담할 것도 없다. 지금 행복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치킨이 맛있나?
그게 행복이다.
사실은 행복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분명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거대한 환희이자, 기쁨으로 내 인생을 무엇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줄 어떤 것이라는 허상의 개념을 만들어왔고, 그 허상을 찾으라 많은 시간을 보내던 것이다. 행복이었을지 모르는 순간을,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내가 찾던 행복은 더 특별하고 엄청난 감정일 거야.'라는 생각들로 수없이 놓쳐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 별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더 많이 행복하기 위한 시작일 수 있다.
행복은 꼭 무언가를 획득하고 얻어내야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부, 성공을 지향하는 것 역시 시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가치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행복을 위한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실패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오직 남들이 인정하는,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성공에게만 내 행복을 맡긴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승부를 봐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동성과 생산성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화'를 '지혜와 현명함'으로 치환해내며 향기롭게 나이 들어가는 누군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결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이뤄냄에서만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생산노동, 수익 노동의 가치 외에도 우리가 인정해줘야 할 가치들은 얼마든지 있다.
획득해낸 재화와 숫자들,
시스템에 기여하기 위한 개인의 책임과 역할에서만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흥청망청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내일의 행복은 내일의 내가 만끽하게 내버려두자. 오늘의 행복은 오늘의 내가 누리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오늘의 나를 더욱 기쁘게 할까?'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해보자. 더 큰 성공과 결과를 얻어내면, 그때 비로소 행복하겠다고 내일의 나에게 양보할 필요 없다. 소소한 시도, 작은 결실, 새로운 다짐 등을 마주하면서 수시로 지금 행복하자.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의 행복이 꼭 극단적일 필요가 없다.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찾아냈다면, 행복이 그리 대단한 관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결과를 얻지 않아도,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주체성을 획득해냈다면. 우리는 지금 오늘,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이 별 것 아닐지도 모를 생각법들을 찾아내느라 나는 많은 시간을 돌아왔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이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해지고, 그것이 다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30대의 끝자락 즈음에서 찾아낸 생각법들에 더해 40대, 50대, 60대, 그 이상을 살아가며 인생을 좀 더 노련하게 마주할 나를 기대한다. 그땐 부디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깨달은 어른이 되어있길 바라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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