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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Feb 20. 2021

연봉 1800만 원을 제안받았다.

그러니까 10년 전쯤이었다, 1800만 원의 연봉을 제안받은 건. 

어렸을 때부터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나는, 졸업 전 다양한 회사에서 인턴 경험을 해본 뒤 가고 싶은 회사를 정하자는 마음을 먹고 휴학을 했다. 졸업 전까지 총 4번의 인턴 경험을 했는데, 그중 한 곳은 아주 작은 규모의 영화 마케팅 에이전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한다한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겠냐 싶다마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기쁨에 참 열심히도 했다. 제일 먼저 출근해 선배들의 책상 위, 뽀얗게 화분 위를 덮고 있는 먼지도 닦고, 설거지도 했다. 잡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든 해야 하는 일인데, 내가 하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몇 개월의 인턴 생활에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 선배가 일을 시키면 즐거웠다.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는 생각에. 


회식을 쫓아가 노래방에서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며 재롱을 떠는 짓도 즐거웠다. 그 자리는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동경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개월을 일하고, 정규직 제안을 받으며 회사가 제시했던 연봉은 1800만 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업계의 수준은 훨씬 나아졌겠지만, 아직 개선되어야 할 노동환경들은 많을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당시 인턴으로 지원할 수 있는 회사들 중 가장 연봉과 조건, 비전 등이 좋다고 평가받는 제조업의 대기업을 지원해 합격했다. 2달 후 나는 그 대기업에 정규직 채용되었다.



그렇게 수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하고 나서, 그리운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그 산업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꿈꿔온 사람들이 대기업에는 많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조건과 비전을 보고, 그중에 제일 나은 선택지로서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커리어 개발 측면에서도, 업무 스킬업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동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묘하게 그들의 동력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영화계에는 조건을 따지며 업계로 유입된 인력 자체가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애정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업계 내 어디선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한 편의 영화가 투자를 받고 개봉을 해 성공하면 다 같이 기뻐하고, 망하면 다 같이 힘들어했다. 모두의 역할과 책임은 달랐지만,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똘똘 뭉쳐지는 에너지 같은 것들이 있었다.


대기업에선 그런 걸 찾기 쉽지 않았다. 


이번 분기 나의 KPI를 위해, 승진을 위해, 우리 팀의 비전을 위해. 100명의 구성원이 마음먹는 다짐 역시 100개였다.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룰들과는 많이 달라서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연봉 1800만 원을 주겠다던, 그곳이 더 올바른 곳이었을까?

연봉 1800만 원을 제안받은 지 5년 뒤, 나는 대기업에서의 연봉을 반으로 깎고 영화계로 돌아갔다. 산업마다의 특성과 수익 가능성, 리스크 등이 제각각이라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난 그곳에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봤다. 어디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 없겠지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욕심은 더 큰 부의 불균형을 만들고 있었다. 


그 체재를 가능하도록 연명시켜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었다. 누군가는 꿈과 열정을 빌미로 열악함을 감수하지만, 누군가는 불균형한 부를 장악하며 더욱 열을 내고 있었다. 열정과 시스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다니 아이러니했다. 시스템을 가진 무언가를 좋아했다면 참 좋았으련만.



무언가를 좋아하면, 약자가 되어도 괜찮은 걸까?

연애에서도, 일에서도, 사회에서도. 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종종 나를 약자로 만드는 걸까. 나는 내가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실력으로서 인정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애썼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거부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난 너 아니어도 괜찮은데.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유일한 핑계나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랬다. 






오늘도 미디어는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방법과 회사를 소개하느라 분주하지만, 맹목적인 부의 축적은 인생의 최상위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어떤 가치를 선택해, 어떤 만족을 느끼며, 어떤 균형을 이뤄나갈 것인가. 

그 고민의 중심에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고 잘 버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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