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이후에도 자기 계발서나 누군가의 성공담 속에서 종종 마주하기도 했다. 그 말이 참 꼰대 같아서 듣기가 싫었다. 조언을 가장한 강압적인 예절이나, 대접을 바라는 훈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조언을 해주는 어떤 이들은 실제로 그런 것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너네 팀 애들 인사 좀 시켜
후배가 생기고 나서는 종종 이런 얘기도 들었다. 군대에서도 가끔은 들었던지라, 묘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말이다. 역시 기성세대나 권력자의 압박으로부터 저항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말들. 회사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땐 갈등이 되었다. 내가 아끼는 팀원이나 후배가 혹시나 잘 몰라서 어떤 실수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전달하는 톤 앤 매너를 적절히 설정하지 못하는 순간, 나 역시 꼰대가 되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10여 년의 사회생활 경험이 쌓이고 나니, '성공은 인사부터'라는 말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와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인사를 잘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더 많은 이야기와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시초가 되어준다. 그것이 인사를 잘하는 사람의 평판을 좋게 만들고, 나아가 사회생활의 아군들이 되어주는 것이다. '인사를 잘한다'는 의미는 결국 나의 이미지, 평판, 네트워크 등을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첫 발이었던 것이다.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비단 인사만을 잘하지 않았다. 이후 벌어지는 관계 형성을 위한 모든 것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기분 좋은 미소로 내 인사를 받아주던 업계 동료가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답고 밝아서, 항상 찾아가서 먼저 인사를 하고 싶게 만드는 미소였다. 실제로 그 동료와 일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동료의 편에 서서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비단 그런 기분을 그 동료에게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동료와 친해지고 싶고, 더 같이 일해보고 싶고, 더 얘기 나눠보고 싶고, 그 에너지를 나 역시 본받고 싶게 만들었다.
인사를 할 때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사람의 목소리, 표정, 기질, 기분, 성격, 태도 등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게 만든다. '인사'가 단순히 기계적인 예의범절뿐 아니라, 그 많은 정보들을 한꺼번에 노출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면 '인사'를 대하는 나 스스로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퇴사할 즈음 들어온 어떤 동료는 유난히도 인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어색해서였을지, 불편해서였을지 '인사 행위'를 비단 나뿐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편히 나누는 것 같지 않았다. 먼저 인사를 하는 일이 잘 없을뿐더러, 상대방의 인사를 뚱하게 받기 일수였다. 기분이 좋을 땐 웃으면서 받기도, 기분이 안 좋을 땐 고개만 까딱하고 말아 버리는 모습들도 보였다. 그냥 가볍게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 그 동료와의 인사는 항상 부정적인 감상이 남았다. 나는 그 뒤로 가급적 그 동료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고, 그 외 어떤 말도 굳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섞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소심하고 예민한 반응일 것 같아 언급한 적이 없었지만, 한 술자리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동료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도 있었다.
나는 예의범절을 잘 지키려고 가급적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땐 차렸던 예의를 잘 거두기도 하는 편이다. 아직 그릇이 작고, 어려서 일지 모르겠다. 상호 예의를 갖출 줄 모르는 사람과 필요 이상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자기 의지였다. 회사의 어떤 임원은 인사를 안 받기로 유명한 임원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인사를 못 봤거나, 피드백을 잘해줄 수 없는 어떤 상황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직접 여러 번 마주해보니 진짜 인사를 안 받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 임원의 정면으로 찾아가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봤다. 안 볼 수도, 피할 수도, 피드백을 하기 어려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사를 하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임원은 아무런 표정에 변화 없이 고개만 살짝 숙이고 지나갔다. 그 뒤로 나는 그 임원을 봐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상호 예절을 모르는 임원이 오래 갈리 없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결국 조직관리였기 때문이다.
인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갖추어야 하는 예절만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상호 작용의 시작이었다.
그걸 이해하고 나니, 후배에게 먼저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인사의 기준에서 나이와 연차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인사는 나에게 상대방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호감과 의사의 표현방법이 되었다. 더불어, 상대방의 그것도 확인할 수 있는 척도이자 기준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인사를 받지 않는 윗사람도 마음에서 지웠다. 관계를 안 맺으면 그뿐이었다. 영혼 없이 고개를 까딱이며 하는 인사가 뭐 그리 어렵고 대수일까. 그런 인사를 받고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조직과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사회생활의 스킬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언행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모습들이 불현듯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식당이나 카페에서 점원을 대할 때였다. 불쑥 반말을 내뱉기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 디테일한 모습들을 나는 흠집잡거나,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이들, 다른 상황에선 어떻게 대하는가를 확인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것은 물론이었다.
인사에 담긴 여러 가지 맥락, 의미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인사를 잘하라'는 조언을 굳이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 맥락을 이해시키지 못한 채, 인사를 잘하라는 얘기는 어차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사에 담겨있는 한 사람의 인격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내 한마디 조언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뀔 일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이 꼭 정답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도 없고, 일방적인 대우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차라리 '인사를 잘하라'는 조언보다, '인사'가 어떻게 관계에서 기능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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