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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Mar 07. 2021

내가 좋아했던 직장상사들 BEST 4

직장상사들에게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은 양면적이라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항상 좋기만, 항상 싫기만 하지도 않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에게 애증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실로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이 모두 감당하기 낯설고 어려웠지만, 경력은 그런 감정들에게도 무뎌지게 만들어주었다. 혐오와 비판과 낙인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기꺼이 좋아하고 애정 했던 상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 나의 발전을 고민해주는 상사


누구나 성장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산다. 나이는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데, 사회에서 갓난아기 취급을 받던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 단어가 더욱 간절했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단순히 일을 잘하는 상사만이 좋은 상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원 때 만났던 리더는 분기에 한 번씩 성과 미팅을 했다. 그것은 회사의 인사제도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그 리더만의 시스템이었다. 분기가 시작할 때 서로 공동의 목표를 세팅했다.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이유에서 맡고 싶고, 그것을 완료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에 대해서 서로 교감했다. 분기를 마감할 때 즈음엔 서로 그 목표를 점검하고 평가했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목표 대비 아쉬웠던 점, 기대 이상이었던 점, 다음 목표에 반영하고 싶은 점들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가질 때마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는 내 시야가 급격하게 확장됨을 느꼈다. 나의 목표를 상사가 함께 점검해주고, 고민해주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함께 노력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기가 반복될수록 나는 그 리더와 가지는 성과 미팅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함께하는 팀원이 성장해야, 결국 팀이 성장한다.
리더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2. 비전을 제시해주는 상사


경력이 차면 승진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누락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특진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가 승진했다. 그것이 나에겐 그리 대수로운 느낌이 들지 않다. 승진을 했어도 여전히 사원때처럼, 대리 때처럼, 팀원일 때처럼 일하던 선배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사원때 새로운 사업부장님이 부임하셨다. 이미 여러 대기업의 마케팅 헤드 자리를 경험하며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오신 분이었다. 그분은 오자마자 사업부 전원을 모아놓고 본인이 이 조직을 어떤 목표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지 PT를 하셨다. 주로 후배가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은 많았어도, 상사가 후배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PT 하는 일은 처음 목격했다.


경력은 어마어마하지만, 그 회사는, 그 조직은 처음이었던 사람이었다. 그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조율해나가야 하는 조건으로 마주했다. 후배들에게 질문도 거침없이 받았다. 때때로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후배들도 있었지만, 그분은 당황하지 않았다. 생각의 차이를 가지게 된 원인을 찾고, 그것을 조율해 공동의 목표로 다져나가는 실력이 수려했다. 무슨 꼰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을까 경계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의 목표와 비전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3. 일의 의미를 정의해주는 상사


거대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일수록 내가 하는 일은 규칙적이고 파편화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 모든 일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의 방식을 쌓아온 조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거대한 바퀴를 굴리는데 작은 톱니 같은 역할을 하는 본인의 처지에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경력과 경험을 쌓은 리더는
일의 소명과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주니어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일이 잘 되기 위해서 전후로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헤드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아젠다가 화두이길래 지금 이 일을 하는지. 의외로 명쾌하게 일을 지시하는 상사들은 매우 드물다. 상사가 되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나의 흠결과 실력이 드러나기도 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실력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다. 일의 효율과 속도를 생각하면 생략해도 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지시가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상사들은 그러면서도 후배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길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내 일은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는가,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가치와 보람을 주는가를 고민하며 사는 것은 인간이라면 숙명적으로 가지게 되는 생각들이다. 솜털이 보이는 애송이 같아 보여도 우리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 의미를 넓은 시야에서 해석해주고, 단서를 제공해주는 상사들이 나는 좋았다.



4. 말을 아끼는 상사


처음부터 이런 상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같이 소주 한 잔 하면서 회사 욕도 해주고, 다독여주는 선배들이 좋았다. 당장의 위로와 자존감 회복을 위해 즉시 처방 가능한 방법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일수록 말의 무게를 아는 선배들에게 호감이 갔다. 말을 아낀다는 것이 단순히 후배들과 대화의 기회를 줄이고, 자신을 숨기는 상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도 함부로 뒷담화를 나누거나, 욕을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리저리 굴려지고 해석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 적극적으로 관계를 나누고 교류하되, 자신이 뱉은 말에 있어서 더없이 신중하려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그렇게 뱉은 말 한마디가 더욱 빛나는 사람, 나는 그런 선배들을 더 믿고 따르게 되었다.


때로는 말을 뱉는 것보다,
아끼고 지킴으로서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이 쉽지, 알면서도 좋은 상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난 10년간 나에겐 '성장'이 화두였다. 언제나 성장에 목말랐고, 그것을 가지고 싶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화두는 '동반 성장'이다. 나 혼자만 성장하는 것이 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가족, 조직, 사회라는 공동생활체에 반드시 이익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장하는 동시에, 연대를 맺은 사람들도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간 시절 속 내가 좋아했던 상사들을 더욱 자주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왜 믿고, 좋아하고, 따랐나. 내가 그런 존재가 되려면 무엇을 배우고 적용해야 하는가.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상사이자, 선배이자, 리더가 되어주고 있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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