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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작가 물킴
Mar 06. 2021
장거리 연애를 하는 친구가 보내는 편지
안녕? 오랜만이지?
그동안 너무 바빴지 뭐야.
지난번에 카톡 답장 못 해서 미안. 까먹었어. 크크. 싱겁지.
나는 지금 교토에 와있어!
와, 봄의 교토는 이렇게나 좋구나 싶어.
처음 와 본 교토도 아닌데 새삼 너무 좋더라니까?
료칸이 비싸긴 한데, 역시 돈이 최고야.
비쌀수록 더 좋은 거 있지.
너도 생각 있다면 여기가 어딘지 알려줄게. 너도 꼭 한 번 와보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게 없나 몰라.
누구랑 있냐고?
그때 얘기했던 외국인 친구 있잖아, 그 친구랑 오게 됐어.
그 사이 관계가 많이 진전됐지?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니까...
장거리 연애라는 게 이런 건가 싶어. 뭘 해도 하나하나 다 특별해.
그냥 밥을 먹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매 순간 너무 소중한 느낌?
평범한 일상도 이 친구랑 함께하면 무언가 스페셜해지는 느낌이야.
이런 느낌이 그 친구 때문인지, 장거리 연애 때문인지가 조금 헷갈려.
보통 연애라는 게 그렇잖아.
만날수록 익숙해지고, 심드렁해지고.
근데 이번 연애는 웬걸. 매번 새로워.
'와, 이런 게 있다고?'
'와, 얘는 진짜 신선해!'
이런 재미가 있더라고. 나 웃기지. 크크.
내가 외국인을 만나서 연애할지 누가 알았겠냐구.
어제는 료칸 근처에서 밤 산책을 했어.
밤에만 느낄 수 있는 산 냄새 알아? 그 습하고 묘하게 청량한 냄새.
그 냄새가
어딘지
한국 하곤 다르더라고.
습한 공기가 우리를 적시는 느낌이 들었어. 공기를 막 헤집고 걷는 느낌 같은 거.
정말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거야. 료칸에 우리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마치 우리 둘을 위해서 누군가 조용히 하라고 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크크.
무작정 걷다가, 이름 모를 꽃이 시선을 붙잡으면 잠시 멈췄다가.
또 걷다가, 신기한 일본 구옥을 만나면 같이 구경했다.
그러다 생각했어.
'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평생 못 잊겠구나.
이 공기, 이 냄새, 이 장면, 이 온도. 다 기억하겠구나.'
오랫동안 간직할 경험을 하고 있는 게
매분 매초 실감 났어.
지금도 정말 헷갈려. 이게 그 친구라서 인지, 그 친구가 외국인이라서인지,
내가 지금 외국에 와있어서인지, 우리가 장거리 연애 커플이라서인지.
굳이 답을 찾고, 정의 내리지 않기로 했어.
다음 달이면 또 무슨 황당한 이유로 헤어져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느끼고, 지금 이 친구를 충만히 사랑하기로 했어.
미래 계획?
한국에서 살 건지, 일본에서 살 건지?
글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생각할수록 모르겠는 거 있지.
왠지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진짜 대책 없지? 근데 어떡해.
지금 너무 사랑하는데.
지금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미래는 미래의 나에게 맡길래.
나 녀석, 잘 해낼 수 있겠지? 크크.
저 친구가 자다 깨서 나 찾는다.
오늘 편지는 이만 줄일게. 교토에선 다음 주에 돌아가.
여기서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이 곳에 갇혀도 저 친구랑 있다면 행복할 것만 같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랑꾼이었냐며.
네가 봐도 내가 낯설지? 30년간 나로 살아온 나는 얼마나 낯설겠니. 못살아. 크크크.
또 편지할게.
귀찮아하기 없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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