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고 나서 찾아오는 감정은 절망과 무기력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좋아했던 일로, 꿈꿔왔던 성취를 이루는 과정은 짜릿했지만 그것 역시 영원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뤄낼 수 있는 꿈을 꿨다는 사실이, 마치 나의 작은 그릇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아 괜히 분한 생각도 들었다. 그다음을 꿈꾸고, 생각해보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꿈을 꿨지만 마치 그것을 이룰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꿈으로서 저 멀리에서 빛나 주길 바랬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내가 남들보다 아주 특별해서? 특출 난 노력을 해서? 기발해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꿈을 꾸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어떤 것은 노력하기도 전에 꿈의 목록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노력하다가도 내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걔 중 최소 한 가지는, 언젠가는 그것을 반드시 이뤄낸다. 사람마다 꿈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비교할 수 없지만, 크고 작은 성취들이 모여 세월을 이뤄내는 것이 인생이구나 싶었다. 어떤 꿈은 인생을 통째로 던져 이뤄내기도 하지만, 어떤 꿈은 시시각각 획득되고 체화되어 눈을 크게 뜨고 발견해내려 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뤄지지 않을 것 같지만, 꿈꿀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한 목표가 있다. 무언가를 향해 걸어갈 수 있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곧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의 방향과 불빛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랬던 꿈이 이뤄진다는 건 아주 짜릿하기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쫓던 방향과 불빛을 잃어버리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더 이상 무엇을 향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꿈을 이뤘다는 만족과 자부심도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인생에는 그다음 감정과 생각이 찾아왔다.
평생을 걸쳐 원했던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 뒤에 찾아온 허무함, 절망감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 성숙한 생각을 가지게 된 상태에 그 감정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 감정들이 훗날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애써 떨쳐버리려 하지 않았다. 힘들지만, 그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최대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응시하려 노력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과 성취들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천천히 발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세상과 타인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와 조언들 중에 내게 맞는 것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꿈이라는 것을 다시 꿀 수 있을까? 생각했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차츰 시간이 흐르자, 다른 모든 감정과 생각들처럼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일생의 시간, 생각, 희망, 행복 등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거대한 꿈이 이뤄짐과 함께 텅 빈 감정을 느꼈다. 그리곤 차츰, 텅 빈 공간에 조금씩 새로운 것들이 채워졌다.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외면했던 사물들, 감정들, 세상들에 관심이 갔다. 그중에는 여전히 심드렁한 것들도 있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재미와 기쁨을 선사하는 것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 오히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에게도 재미를 발견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성취와 절망감을 지나,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꿈을 이뤘다는 성취는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자, 배움이자, 철학이자, 자존감으로 체화된 것이었다. 텅 빈자리에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을 채워 넣는 동안에도 그것은 계속 내게 영향을 줬다. 때로는 빠른 학습력으로, 때로는 단단한 경험치로, 때로는 분명한 사리판단으로.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무함은 서서히 사라지고,
지나간 감정과 경험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점 같은 시간들을 버티고, 그것을 선으로 이어나가자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성취의 기쁨이라는 점은 허무한 감정이라는 점과 이어져, 지나가버릴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허무한 감정이라는 점은 새로운 채워짐이라는 점과 이어져, 다시 찾아오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해 주었다. 성공과 실패, 성취와 좌절. 결국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는 다시 배우고 일어설 것이라는 용기를 얻게 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결국 새로운 가능성이자 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해 앞길이 막막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가보지 않은 미래 앞에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작은 존재이지만, 수 많은 점들을 이어 선 하나를 그려내고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음에 큰 감사를 느낀다.
'하루'라는 점들을 쌓아, 선과 면을 그리면
그것이 결국 나만의 모양과 크기로 완성되어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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