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어떤 병명을 지니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발이 불편해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며 걷는 '절름발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대체로 그의 '장애'를 애써 의식하지 않는, 혹은 '그게 뭐 그리 대수겠냐'는 선진적 개념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득권의 포악함은 누군가를 배척하고 공격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의 '장애'는 보통 승진 철에 맞춰서 언급이 되곤 했다.
그분은 장애인이라 승진 누락 안될걸?
무슨 쿼터 같은 거 있지 않나?
잘못 언급했다간 나의 사회성과 인간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소재이므로 그의 '장애'는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 않았지만, 누군가 한 번 물꼬를 트면 쏟아지듯 말이 이어지기도 했다. 최상위권 대학을 나오신 분이었지만, 대기업에서 그 정도 학벌은 특별할 것도 되지 못했다. 신입사원임에도 그 팀장님의 퍼포먼스가 동료를 사로잡을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못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일을 못하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혜택을 받는다면 그건 조금 불공평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대학도 그 전형으로 간 거 아냐?
때때로 그의 '장애'는 그의 퍼포먼스를 폄하하거나, 그가 가까스로 잡았을 기득권을 배척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득권의 세계 속에서, 나는 그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뺏기지 않으려는 다양한 노력을 목격할 때가 많았다.
비단 눈에 보이는 신체적 불편함이 아니더라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는 분명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괴이한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그것은 트라우마라는 정신의학적 용어로 정의되기도 '외로움', '이기심' 등의 피상적 용어들로 지목되기도 한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신체는 노쇄해지고, 정신은 상처 입는다. 모두가 '결함'과 '쇠락'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즉, 누구나 어떤 기준과 조건에 대해서는 결함을 가진 그룹이 될 수 있고, 또한 누구나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며, 보호받을 권리와 존엄이 있다. 그것은 비록 다수가 지닌 조건들을 내가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대체로 모든 어젠다에 대하여 다수는 소수에게 일정한 방식의 폭력을 가한다. 다수가 지지하는 의견과 방식으로 소수자를 압박한다. 소수자는 점점 소외되고, 자신의 '다름'을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차별과 구분을 다수 역시 모르는 바 아니기에, 더욱 공고히 다수는 다수의 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배척하고 연대한다. 기득권을 놓침으로 겪게 될 '소외'가 두렵기 때문이다.
성장 만능주의 이후,
우리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모든 성장에는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후 사회와 세대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성장의 한계와 부도덕성, 양면성 등을 경험한 우리 세대가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성숙도와도 큰 연관이 있다. 평등과 화합이라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높아질수록, 우리가 소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공평한 권리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는데 애를 쓰게 되는 이유다.
어떤 것이 옳은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과연 평등을 원하는가, 부의 획득을 통해 불평등 속의 기득권을 원하는가. 당신은 다수자인가, 소수자인가. 당신이 소수자인 영역은 무엇인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해 소수의 승진 기회를 경쟁하는 것이 공평한가? 그들의 승진 기회를 제도적으로 확보해 신체적 결함으로 상실해왔을 수많은 기회들을 복원시키는 것이 공평한가?
10여 년의 사회생활을 하고 난 지금에 와서, 그때 그 절뚝거리던 팀장님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소수자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다수자와 공평한 권리를 누려 마땅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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