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교실 속 세상

마흔이 넘어 다시 학생이 된 소감

by 물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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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했으니 아무도 만날 필요가 없었다. 내향적이고 예민한 성격에는 유리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교실이라는 공간에 뚝 떨어져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한다? 그것도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입학 전부터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보낸 첫 주에는 긴장 때문에 저녁이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지난 세월 재택근무를 하며 고요함을 누렸던지라 갑자기 20명이 가득 찬 교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다음 주가 되자 그나마 두통이 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매일 교실의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인과 외국인 학생들이 각자 그룹을 지어 나뉘는 현상이었다. 독일인들은 독일인들끼리, 외국인들은 외국인들끼리 무리를 짓고 함께 노는 경향이 일주일 정도만 지난 시점에서도 관찰되었다.


특히 내 마음에 걸리는 건 튀니지에서 온 남학생들 몇몇 그리고 독일인 여학생 몇몇이 본인들 그룹 안에서만 움직였고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는 일은 없다시피 한 거였다. 그들은 같은 교실 속에 있지만 서로를 투명인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나는 딱히 그렇게 친한 사람이나 단짝은 없지만 다양한 학생들과 두루두루 이야기를 한다.


튀니지에서 온 학생들하고도 스몰톡을 하고 이제 10대 후반인 독일 여학생들하고도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다. 뭐 그렇게 속 깊거나 친근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 내가 여자고 외국인이고 독일에 오래 살았고 나이가 많고 등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내 캐릭터에 유연성을 부여해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중에 나와 가장 자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온 도미니카이다.


도미니카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뭔가를 묻는다.

“너 수업내용 다 이해했어?”

“우리 이 서류 언제까지 내야 해?”

“어휴, 실습 나가는 거 너무 걱정돼. 벌써부터 이렇게 배울 게 많은 거야?” 등등.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면 ‘아, 나는 그렇게까지 걱정이 많은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학교의 일과는 오전 8시에 시작하여 오후 3시 반이 되어야 끝난다.

그것도 매일같이 같은 교실, 같은 지정석에 앉아야 한다. 3년 내내.

실습을 제외한 이론수업 기간에는 그 자리를 늘 지켜야 한다.


자유롭게 강의실을 오가며 빈자리에 앉았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니 일정이 꽉 짜인 직업학교는 참 다르구나 싶다. 네모난 교실 안에서 보내는 나날이 조금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도미니카가 한 말에는 공감이 가는 바였다.


“내가 이 병원을 선택한 건 다른 데보다 월급을 좀 더 많이 줘서야.

내 나이가 몇인데! 푼돈 받으며 아우스빌둥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돈을 많이 주는 간호사 아우스빌둥을 선택한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런 아우스빌둥 제도를 몰랐더라면 나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접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간호대학의 학비는 비쌀 테니 말이다.


학비를 내고 다니는 게 아니라 월급을 받으며 공부하러 다닌다! 이게 독일 아우스빌둥(직업교육)의 좋은 점.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참 고마운 일이란 걸 기억해 내면 교실 생활이 답답한 것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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