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대답하던 시절
-이윤기, [나비넥타이]
이윤기의 [나비넥타이]처럼, 내게도 부르면 대답해 줄 사람이 있었다. 그들만 일방적으로 내가 부르면 대답할 사람이 아니라, 나 또한 그들이 부르면 대답할 사람이었다. 그때 우리는 한껏 젊을 때였다.
누군가 여수 밤바다를 보러 가자고 연락을 하면, 앞뒤 잴 거 없이 표를 먼저 검색하는 우리였다. 다음 날 새벽 첫차 시각이 되기까지 우리는 하염없이 밤바다를 쏘다녔다. 목적 따위 없이, 그저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었을 뿐이고, 누군가를 불렀고 누군가 대답했기에 동행했을 뿐이다.
부르면 즉시 즉답하던 젊은 시절의 우리는, 중년이 되었다.
응답하라! 아무리 불러도 이제, 중년의 우리는 젊을 때처럼 즉답을 하지 못한다.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실은 대답을 하고 싶지만, 그건 마음뿐... 걸리는 것들이,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중년의 우리는 '나'로서 대답하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직장이라는 허들이 '나'를 가로막는다. 아니, 가장 큰 허들은 '나'다. 내가 나를 막는 자기 검열의 허들은 높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불러도 대답을 쉬이 할 수가 없다.
젊을 때, 부르고 대답하는 것이 쉬웠던 그 시절엔 삶도 제법 재미라는 것이 있었다. 단지 젊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재미라는 것을 느낀 것은 아니다.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을 만나서 재밌었던 것이다. 나 혼자 뭘 해서 느끼는 재미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해서 재밌었다.
부르면 응답하는 것, 그것이 젊은 사람들이 재밌게 사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00아! 놀자!"
"응!'
중년이 되고 보니 내가 부르면 대답하던 그 사람도, 그가 부르면 대답하던 나도 좀처럼 부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도, 나도 '나'의 허들을 넘지 못하고 허들 안쪽에 갇힌 듯하다. 그러니 인생이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들을 기어이 넘어 응답하는 때가 있다. 서로의 경조사 때이다. 그때 우리는 부르면 대답하던 젊은 시절로 훌쩍 넘어간다. 시공간을 넘는 멀티버스의 세계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 우리 그때 부르면 대답이 뭐야. 바로 앞에 나타났지.'
누군가 이런 산통을 깨며 현실적인 한 마디를 해서 모두를 웃게 만든다.
"이제 우리 늙어서 누가 불러도 잘 들리지도 않고, 대답할 체력도 안 돼. 그래도 돈은 바로 카뱅으로 보내지."
젊음의 낭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중년의 자본주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현실의 나를 아이가 부른다.
"엄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