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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Oct 20. 2023

남의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

내 삶의 지휘는 이제 내 방식대로 


남의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 방식대로 해.


케이트 블란쳇의 신들린 연기가 매력적인 영화 [타르]의 대사다. 리디아(케이트 블란챗 분)가 그녀의 후원자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카플란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카플린은 리다아에게 악보를 빌려달라고 한다. 그 순간, 리디아가 조소하듯 카플린을 응시하며 했던 대답이 바로 위 대사다. 


[타르]의 주인공 리디아는 베를린 필 여성 최초의 수석 지휘자다. 최근 말러 교향곡 5번을 완벽한 공연실황으로 녹음하고, 자신의 스승이었던 번 스타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다. 


탑을 찍은 리디아는 우리식으로 치자면, 써머리 노트를 좀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써머리 노트를 빌리는 장본인은 리디아의 후원자로, 근사한 점심을 사는 자리에서 이런 부탁을 하고 있다. 보통은, 이런 경우 거절을 할라치면 당혹스럽더라도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대답이 정석이다. 그런데 리디아는 당혹은커녕, 조소까지 담아 상대방을 한 방 먹이는 멘트를 날린다. 


"남의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 방식대로 해."


나는 리디아의 저 당당한 멘트가 좋았다. 진짜 남의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니까. 특히나 중년이라면. 영화에서, 리디아도 중년이고, 악보를 빌리는 카플린도 중년이다.


젊은 사람은, 인생의 초반부인 사람은 남이 이미 가진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인생은 모두 처음이고, 학교를 벗어난 사회라는 곳에 첫 발을 디딘 젊음에게는 '남의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리디아의 악보 같은 것들. 


하지만, 중년은 리디아의 악보처럼 남의 것에서 무엇을 얻으려 할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방식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게다가 중년은 남을 탓할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젊을 때처럼 타인에게서 얻은 방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내 방식의 삶이기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러니 중년은 골치 아픈 나이다. 누구보다 내가 나의 그릇을 잘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나'라는 그릇을 얼마나 키워왔는지,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그 결과에 내 그릇의 사이즈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자꾸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나를 쪼그라들게 한다. 안 그래도 작은 그릇의 사이즈가 더 작아진다. 남의 그릇들은 죄다 커 보인다. 남의 그릇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흘깃댄다. 이 그릇, 저 그릇 들여다보면 한숨만 나온다. 남의 그릇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얻는 것, 남는 것 하나 없다. 역시나, [타르]의 대사대로 남의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 


중년, 내 삶의 지휘는 이제 내 방식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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