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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Oct 12. 2024

29. Sitting low

수현(3)





박연호 선생님은 혼잣말처럼 말을 잇습니다.


“명상도 연구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직접 알아내야만 합니다. 그 일은 오직 우리 개인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도 명상 중에 이런 장면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박 선생님은 찻주전자를 양손으로 들어 가볍게 돌립니다.


“김 선생님,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멈추십시오. 만약 다른 사람도 비슷하다면 안심하실 수 있으십니까. 만약에 오직 김 선생님만 그런 경험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상을 멈추시겠습니까? 김 선생님의 명상은 저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저도 애쓰고 있지만 앞으로도 정확히 공유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각자에게 속한 것을 전하는 데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의 명상은 선생님이 가장 잘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크게 경계하셔야 합니다.”



저는 마치 혼이 난 듯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몹시 차분한 탓에 그리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두웠던 부분을 갑자기 조명한 듯 밝아진 느낌이 듭니다. 박 선생님은 찻잔의 더운 물을 비우고는 찻주전자에서 차를 따릅니다. 그리고는 찻잔 하나를 제게 내어줍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저는 연거푸 고개를 짧게 끄덕입니다.


“김 선생님은 지금 열심히 수행하고 계십니다. 간혹 이렇게 만나 말씀을 나누어도 아주 잘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빈 말로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김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찻잔을 듭니다.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답합니다.


“감사해요.”


“선생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명상 중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판단하지도 마십시오. 그냥 바라보세요. 눈을 감았으니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텅 빈 곳에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모든 공간에 위치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말을 붙입니다.



"누군가는 불길 가운데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하늘 위, 또 누군가는 망망대해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명상 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방방 뛰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누구나 서로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명상을 경험합니다. 또 다시 반복하는 말 같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한 가지입니다. 기민한 평정심을 유지하십시오. 명상 가운데, 선생님이 어디에 놓일지라도, 그 무엇을 볼지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오직 들숨과 날숨의 교차를 유지하며 모든 것을 직면하십시오. 갈망하지 말고 회피하지도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나의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바로 보십시오, 억지로 받아들이기 위해 너무 애쓰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애써 외면하지는 마십시오. 알아차리고 그대로 보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박 선생님의 조언은 역시 동일합니다. 명상 지도를 받을 때부터 이미 저도 답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어렵기만 합니다.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차의 수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문장으로만 알고 있는 조언과 혈액순환에 좋은 차가 전부입니다.


박 선생님의 말처럼 제게 일어난 일은 스스로 마주해야 합니다. 제게 조금씩 임하는 회복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습니다. 더 앉아 있어 봤자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없을 겁니다.


“방금까지는 명상 선생으로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뇌과학자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조금은 눈빛이 예리해진 것도 같습니다.


“저는 명상 중 겪는 비현실적인 체험과 오감의 경험에 대해 연구합니다. 예전부터 그 부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는 환상이라 말하고, 또 누구는 전생 체험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무엇이라 칭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 선생님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의와 이름은 오해 없이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혼자서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야든 연구를 위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건 아니기 마련입니다. 아무튼 그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 자체로의 경험과 상태를 받아들이고 뇌과학자로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에게서 처음 듣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뇌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잖고 예스러운 행색 때문에 그를 연구자로 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닿지 못할 듯 높은 곳에 있는 명상 선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뇌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이자마자 저는 단번에 알았습니다. 너무도 개별적인 연구자들에게서도 어쩔 수 없이 공동으로 가지는 기품이 있습니다. 저 또한 연구자여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에게서도 그 태도가 물씬 드러납니다.


저는 동료 연구자를 대하듯 묻습니다.


“제가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이 영역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수학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제 연구의 방향을 밝혔으니 작은 성과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명상 중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안으로 밖으로 연구하며 명상과 관련된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명상 도구요?”


“예. 간단히 말씀드리면 머리에 씌우는 모자입니다. 명상 중 발생하는 뇌파를 증폭시켜 명상 경험을 보다 또렷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제가 지도한 대로 호흡에 집중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경험하신 것처럼, 명상을 할 때마다 항상 그런 범상치 않은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명상에 집중했을 때, 깊이 침잠했을 때, 명상뿐만 아니라 한 가지 일에 몰입했을 때, 그럴 때야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쪽 연구자들은 그 상태를 sitting low라 부릅니다. running high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뇌파도 다르고, 분비물질도 다릅니다. 물질을 직접 다루는 부분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주로 이론적인 연구만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잇습니다.


“연구에 관련된 이야기는 그만 줄이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요. 다시 돌아와서, 제가 개발한 명상 모자는 기존에 발생하는 뇌파를 감지하여 작동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습니다. 이미 재작년에 상용화가 됐고, 명상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활용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띱니다.


“명상 모자. 저는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만, 다른 분들은 너무 촌스럽다고 그러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는 찾는 사람도 드뭅니다. 본래의 명상을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인 듯합니다. 다시 말하면 깊이 침잠하는 상태, sitting low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자를 쓰나 안 쓰나 명상 경험의 차이는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요즘은 모두가 그런 걸 원합니다. 가상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명상 모자 앞에도 안경을 부착해서 몰래 그런 기능이라도 추가할 걸 그랬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는 탓에 저는 어떤 반응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선생님처럼 미소를 띨 뿐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선생님께 명상 모자를 권해드리려 합니다. 김 선생님께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공식 명상 지도사들은 명상 모자를 활용한 면담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좀 해봐도 괜찮을까요?”


“예, 그러세요. 우선 오늘 돌아가실 때 명상 모자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작동 방법도 간단해서 사용하시기에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명상 모자를 사용하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만, 혹시나 사용하신다면 그 후에 간략하게 명상 경험에 대해 말씀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겁니다. 나날로 앉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아무래도 명상 중에 침잠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은 적다보니 저뿐만 아니라 김 선생님께서도 짧게나마 면담이 필요하실 겁니다.”


박 선생님은 뒤쪽 책상 뒤 서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오더니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상자를 뜯어 명상 모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단순한 도구입니다. 헬멧 모양으로 쓰고 벗기 편해 보입니다. 저는 박 선생님의 안내를 듣고 명상 모자 하나를 건네받습니다.


“감사해요.” 


저는 상자를 만지작거립니다.


“더 나누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제 일어나시는 것이 어떨지요.”


저는 상자를 가방에 넣습니다. 우리는 일어나 건물을 나옵니다. 제가 길을 따라 내려가려는데 박 선생님도 따라옵니다.


“연구실 안 가세요?”


“저도 밖에 볼 일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동행하겠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걷습니다. 가을의 정취가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저는 흠뻑 공기를 들이마시며 만끽하다가 입을 뗍니다.


“여기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데 연구실이 있으면 좋겠어요. 연구도 잘 될 것 같고요.”


“열심히 연구하고 수행하는 모습을 보시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연구실을 꾸릴 때, 제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자연과 가깝고 조용한 곳에 연구실과 명상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도 여기가 참 좋습니다. 도시에서 살면 이런 것도 제대로 모르고 살 때가 많지요. 물론 길도 불편하고 벌레도 많습니다. 그것도 자연의 일부려니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일하시거나 찾아오시는 분들이 힘드신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지요.”


“저는 좋아요, 여기.”


제 말을 끝으로 박 선생님과 저는 묵묵히 공원을 걷습니다.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숨을 고르는 듯합니다. 조금 전만 해도 뼛속까지 연구자 같던 사람이, 금세 고상한 명상 선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태도가 옮은 듯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편안한 침묵으로 공원 출구에 닿자 박 선생님이 몸을 돌립니다.


“자, 그럼.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시면 편하게 연락 주시면 됩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립니다. 공원 속의 수풀과 잘 어울리던 박 선생님과는 꽤나 가까운 사이가 된 듯 했지만, 도심 속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현대를 홀로 살아가는 옛날 사람처럼 멀기만 합니다.






30. 수학자의 반성 _ 수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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