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내린 후에 우리 부부도 뒤따릅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던 아이들 몇이 은근슬쩍 우리 옆에 달라붙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양쪽에서 손을 잡습니다. 속으로는 놀랐지만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참 여리고 보드랍습니다. 가슴 한 쪽이 뭉클합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을 한 아름 안아주고 싶은데 아이들이 놀라지는 않을까, 아직은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갑자기 달려가듯 걸어가며 저를 잡아끌기까지 합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슬쩍 보니까 남편도 웃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아이들은 우리 부부를 자연스레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저와 남편은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물어가며 천문대로 들어갑니다. 1층은 우주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집니다. 보육원 선생님은 이미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누비는 중입니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우주비행복 착용하고 사진 찍기, 무중력 간접 체험하기, 지구 주위의 행성 맞추기, 우주탐사선 내부 살펴보기, 관련 영상 시청하기, 다양한 체험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바로 다음 체험관으로 달려갑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뿌듯한 마음이 든 적도 오랜만입니다.
개별 체험이 끝나자 우리들은 한데 모여 1층 마지막 체험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은 대형 영화관 같습니다. 조명은 어둑어둑하고 의자가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차례로 의자에 앉습니다. 잠시 후, 의자의 등받이가 서서히 뒤로 넘어가더니 거의 누운 상태가 됩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재미가 있는지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천정 전체로 3D 영상이 시작됩니다. 근엄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을 탐사대장으로 소개하며, 출발을 알립니다. 우리는 우주탐사대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와와 소리를 지릅니다. 애들은 애들인가 봅니다. 참으로 귀엽습니다. 의자가 흔들리며 우리는 우주로 날아오르고 지구를 벗어납니다. 가상이기는 하지만 진짜처럼 실감이 납니다.
저 멀리 푸르른 행성이 보입니다. 탐사대장은 지구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목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탐사를 시작합니다. 태양계의 행성을 살피고, 우주정거장에도 잠시 머뭅니다.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갑니다.
우리는 갑자기 멈춰 우주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천정을 바라봅니다. 탐사대장은 행성의 생애를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의자에 누워 그 우주를 보면 볼수록 이제는 사라진 명상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눈을 감고 자리에 앉은 채로 지나간 그곳은 정말 우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듭니다. 하얀 점들, 붉고 푸른 점들, 검은 배경, 공중에 정지한 하얀 눈들. 제 상념을 깨우듯 의자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미끄러지듯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릅니다. 우리의 탐사는 계속됩니다.
위기는 있었지만 탐사대장의 기지 덕분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1층 로비로 나와 탁자가 놓인 편의시설에 모였습니다. 슬슬 아이들도 허기질 때가 돼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간식을 야무지게 먹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작은 입에도 쏙 들어가도록 김밥을 얇게 쌌는데, 다행히 아이들 입맛에도 괜찮나 봅니다. 우리 부부와 선생님은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다 먹고 음료를 마실 때가 돼서야 우리도 한 조각씩 입에 넣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남편과 선생님은 제게 맛있다고 칭찬까지 해줍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아니라 보육원 선생님이야 말로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돌본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아이들을 온전히 품으려는 마음의 크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하지만 조금도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큰 결례를 저지르는 일인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음료수의 뚜껑을 따서 보육원 선생님께 건네 드리며 속으로는 존경의 마음을 담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게 모여 앉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배까지 불리자 시간이 눈에 듭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 이미 해는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우리를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앞으로 인도합니다. 천문대 연구원 한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 천문대 망원경 앞에 도착했습니다.
망원경은 거대하고 천정은 돔의 형태로 높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손에 닿는 대로 만지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어린이 천문대답게 연구원의 진행 실력이 일품입니다. 어렵지 않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호응을 이끌어냅니다.
연구원은 망원경의 이름을 한별이라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설명한 후에, 아이들에게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힘을 모아 함께 하늘을 열어야 한다는 겁니다. 연구원은 주문을 알려주고 바로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하늘의 문이여!”
아이들은 악을 지르듯 소리칩니다.
“열려라!”
아치형의 천정은 앳된 외침이 끝나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로 밤하늘의 일부가 드러납니다. 별들이 보입니다. 아이들은 입을 벌린 채로 천정의 이동을 신기한 듯 올려다봅니다. 그들의 눈망울은 밝게 또랑또랑 흔들립니다. 저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 다시 고개를 듭니다. 하늘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우리 모두 얌전히 기다립니다. 드디어 연구원이 말을 잇습니다.
“친구들, 이제 보고 싶은 별을 얘기해주면 한별이가 찾아줄 거예요. 가장 먼저 어떤 별을 찾아볼까요?”
우주체험관을 모조리 거치고 올라온 보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질세라 알고 있는 별의 이름을 외칩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달. 별자리를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연구원은 옆에서 컴퓨터를 조작합니다. 갑자기 한별이가 변신 로봇처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몸을 회전하고 고개를 위 아래로 꺾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은 한별이에게 쏠립니다. 금세 한별이는 하늘 어딘가를 응시합니다.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은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어 별을 관찰하기도 하고, 옆에 마련된 화면으로도 눈에 담습니다. 저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얼마나 신기할까요.
저도 순서를 기다렸다가 망원경에 직접 눈을 대어 봅니다. 경이롭습니다. 마치 별이 살아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흔들립니다. 제가 눈을 떼자 아이들은 별을 또 보고 싶다며 망원경 뒤로 재빠르게 줄을 섭니다. 이 와중에도 혼자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마음이 쓰여 은근슬쩍 다가갑니다. 그 아이 눈에는 별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 무릎을 구부려 몸을 낮춥니다. 아이는 제가 가까이 다가와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를 봅니다. 저는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러자 아이는 자연스레 제 품에 안겨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저는 그 아이가 바라볼 만한 별을 찾은 후에 작은 손을 가만히 잡아줍니다.
연구원은 한별이와 함께 별들을 하나씩 찾아 나갑니다. 그때마다 한별이는 멋지게 몸을 움직이고, 아이들은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한 표정을 짓습니다. 구름에 가리거나 관측이 어려운 별은 미리 준비한 영상을 띄어줍니다. 어린이 천문대에 오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흡족합니다. 내년 성은이 기일에도 아이들과 함께 또 별을 보러 오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살피는 도중에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앞에 계신 선생님?”
남편과 보육원 선생님의 시선이 제게로 모입니다. 옆을 보자 연구원이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와 눈을 마주칩니다. 제가 눈짓으로 답하자 그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보고 싶은 별 없으세요?”
“저요?”
“네, 말씀하시면 찾아드릴게요.”
보고 싶은 별.
아이들도 제 대답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주목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하나씩 눈에 담다가 고개를 들어 열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머릿속으로 별 하나가 떠오릅니다. 저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곳, 이미 수도 없이 다녀온 그곳, 이제는 갈 수 없는 그곳,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곳, 나만의 별.
“그럼, 저는……”
눈이 가는 대로 하늘 여기저기를 헤맵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딸아이가 우주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 무수한 별들을 하나씩 헤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게는 그럴 시간도 능력도 없습니다.
저는 막막한 심정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한눈에 가득 담아 봅니다. 불가사의한 별들을 응시할수록 속에서 치미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별빛은 흔들리고 차츰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반짝이는 별들이 물속에 잠긴 듯 눈앞 가까이에서 일렁입니다. 서로에게로 번져 나가 한몸을 이루며 어른댑니다. 물결치는 별빛 아래에서 저는 오직 하나의 별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로 조용히 미소를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