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합리화의 함정

학사 에스라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05

by 박준택

자기 합리화의 함정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 나라들, 즉 대적들은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였다. 그 결과 성전 건축은 중단되어 버렸다.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까지 중단되었기 때문에, 성전 기초를 놓았던 기원전 536년을 기점으로 하면 최대 16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런데 공사가 중단된 원인을 대적들의 방해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일어난 유다 백성들이, 그렇게 쉽게 대적들의 방해에 굴복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손에는 대적들의 방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고레스 칙령이 들려 있었고, 또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그들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 건축이 중단된 원인이 대적들의 방해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이 에스라 5장 1-2절에 제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주어지자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지자들이 어떤 예언의 말씀을 전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선지자 학개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학 1:2,49). 대적들의 방해로 손이 점차 약해지자, 즉 성전 건축의 의지가 꺾이자(학 4:4),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해 버렸다. 자기 합리화는 그들의 관심을 성전 건축보다 자신들의 집으로 옮기게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잘 꾸민 집에서 안주하거나 자기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서 황폐된 성전을 그대로 방치해 버렸다. 이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학개를 통하여 책망하셨고, 또 스가랴를 통하여 그러한 죄에서 돌이켜 ‘내게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셨던 것이다(슥 1:3).




국어사전은 '합리화'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하게 함”, “낭비적 요소나 비능률적 요소를 없애 더 능률적으로 체제를 개선함”. 따라서 합리화는 그 기준이 객관성에 있다. 그에 비해 ‘자기 합리화’는 그 기준이 주관성, 즉 자기 자신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할 경우, 부정적인 상황에서 생긴 감정적인 상처나 실망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회피해 버린다.


유다 백성들이 바로 이런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대적들의 방해는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그 상황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은 여전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을 보는 눈(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다만 그것을 자기 합리화의 구실로 삼았다.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졌던 그들이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의 합리화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들의 생각을 접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지금은 대적들의 방해로 괴롭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것으로 믿고 묵묵히 그렇지만 부지런히 성전 건축에 매진해야 한다. 하나님이 대적들의 방해를 묵인하신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다 보면, 유다 백성들이 직면하였던 것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사탄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 부정적인 상황은 피해갈 수 없다. 그때 우리는 유다 백성들처럼 자기 합리화의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우리 앞에 주어진 소명에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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