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엔디 May 18. 2024

난 어른이쟈나

인생의 주름진 질감

  가끔 무인카페에 들어가서 노트북으로 현장업무를 보기도 하고, 급한 문건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들리기도 합니다.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서 작은 사업을 해보기엔 안성맞춤인지라 동네 한 블록에 최소한 하나씩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너무 좋습니다. ㅎㅎ 또 하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습니다. 입이 좀 궁금하다 싶으면 먹고싶은 달짝지근한 추억의 아이스크림으로 “브라보콘”이나 “붕어빵 아이스크림, “누가바”도 빼놓을 수 없죠!  한가한 오후, 골목길을 걸어가다 눈에 띄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입니다. ‘날도 더운데 하나 사 먹어야지! 저녁때 2천보 더 걷지 뭐!’ 다이어트 때문에 약간 걱정은 돼도 재촉하는 제 다리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연걸, 장쯔이가 출연하는 《영웅》에서 10보 안에서 상대를 확실히 죽이는 검술, '십보일살(十步一殺)'이 있습니다. 진왕을 죽이기 위해 100보로부터 시작해서 그 거리를 좁혀 들어가는 자객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가기 10보전에 생각지 못한 “초등학생 무리”가 우르르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갑니다. 저 또한 십보일살의 무공을 익힌 지 수십 년을 보냈건만 아이스크림 가게 출입문 10보전에 제 다리는 멈칫!

‘난 어른이쟈나~!’

  아!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여기서도 그 유명한 MBTI의 힘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내향성 90%의 극 I성향의 나로서는 성(城) 진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거울 앞에 서면 목가에 주름이 언뜻 보입니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안보이다가도 약간 고개를 들면 주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름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애써 ‘잘못 봤나?’하는 내적위안을 삼던 차에 딸아이가 키우는 애완견 비숑 “모찌”를 미용실에 맡겨두고, 하원이와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을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빠! 목에 주름 생겼네”

  십보일살의 무공을 익힌 지 수십 년! 바로 코앞에서 저격을 당했습니다. 확인사살! ‘맞아 늙었구나! ㅎㅎ’ 씁쓸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학교에서 리포트과제가 주어지면 매점에서 학교마크가 인쇄된 리포트용지를 구매하고 손글씨로 과제물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리포트용지의 줄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는 것이 싫어서 A4용지에 원하는 높이의 줄을 작도하고 복사해서 나만의 리포트 용지를 만들어 사용하곤 했습니다. 또 편지를 쓸 때는 종이를 사정없이 구겼다가 다시 원래대로 피면 그 주름진 질감이 너무 좋아 거기에 글을 쓰는 것을 즐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구겨진다는 것은 매력이 있습니다. 구기고 나면 긴장감이 없어집니다. 강력한 텐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구겨짐은 작은 흠집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상처는 자연스러움을 드러냅니다. 주름은 크랙이나 변형에 자유롭게 대처합니다. 융통성이 생깁니다.


  요즘은 아침마다 주름을 개선하고 탄력을 강화해 준다는 스킨로션을 바릅니다. 얼굴에 무언가를 바른다는 것은 올해부터 시작된 습관입니다. 주말에 족구 할 때는 선크림을 찾습니다.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일을 지금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지금이 제일 멋있는 것 같습니다. 주름은 내 인생의 주름진 질감입니다. 주름은 긴장감 없는 편안한 글쓰기 노트가 됩니다. 올해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만의 리포트용지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난! 어른이쟈나~”


이전 06화 이 정도면 까딱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