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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May 26. 2024

억울하실렵니까?

자기 성찰의 비용

한쪽 구석에서 막내사원이 우드락, 스티로폼, 폼보드 등으로 자르고 붙이고 풀칠하면서 건축모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맞은편에서는 민중가요 <사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처럼 XY플로터가 지이직~ 지이직~ 열심히 도면을 출력하고, 둔탁한 형광등 아래로 쾌쾌한 담배연기 피어오르며 수북이 쌓여있는 책상 위 도서 뭉치들이 괴로움에 헉헉대고 있을 때,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창가엔 어제 잠을 못 잔 듯한 직원이 손만 빠르게 움직이고, 여기저기 분주한 발걸음에 느릿하고 무거운 슬리퍼 소리가 사무실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제도판에 도면을 그리는 시대에서 CAD를 이용한 컴퓨터 설계로 바뀐 후, 다시 Dos라는 운영체제를 뒤로하고 Window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어느 날!

진행하고 있는 단지설계 프로젝트에 대해 시행사 쪽에서 입주예정자들에게 현장설명을 개최한다는 일정이 공지되었고, 발표형식은 PPT로 준비해 오라는 조건이 달렸습니다.  "PPT가 뭐야?" 사무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났습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PPT? 그게 뭔데?" 당시 대부분의 설계사무소에서는 보드판에 출력해서 브리핑하던 시절인지라 생소한 용어에 잠시 술렁거렸고,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던 제가 낙점되어 며칠 동안 브리핑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현장설명회가 다가왔고, 저는 노트북 가방 하나 옆에 끼고 대표 건축사와 동행했습니다. 200여 명 되는 청중 앞에서 설명회가 이어졌고, 저는 능수능란하게 엔터키를 누르며 설명하는 순서에 맞춰 자료 화면을 넘겼습니다.


설명회가 끝나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 직감적으로 대표 건축사님의 오늘 브리핑은 조금 "망친"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래도 멋들어지게 보조진행을 했던 제게 "수고했네!"라고 할 줄 알았는데.....

" 자네, 노트북 때문에 앞이 잘 안보이잖아!! "

헐! 이렇게 황당하고 억울할 줄이야! 칭찬은 못 받을 망정 원망의 소리를 듣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ㅠㅠ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기원전 2136년 하(夏) 왕조 4대 왕 중강(仲康)의 시기에 일식현상에 놀라 그것을 예측 못한 천문관(天文官) 희화(羲和)의 목을 베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일로 죽임을 당했으니 억울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천지개벽의 위급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한 중강대제는 밤새 술에 취해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있던 희화를 찾아냈으니 왕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 고대 일식현상에 일어난 기이한 일을 기술한 <취리스인터넷> 기사의 한 부분 ; 하늘의 개가 태양을 먹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
“天狗吃太陽”終於結束,仲康大帝這時才發現,天文官羲和到現在也沒露面,發生了這麼大的事,身負重任的羲和居然不見人影,仲康大帝十分惱火,立刻派人去尋找。幾個差役趕到清台(當時的天文觀測台),好不容易在清台旁守夜的小屋裡找到了羲和。這位重任在肩的天文官居然在呼呼大睡,一問羲和的下屬,才知道羲和昨天喝了一夜的酒,此刻仍然爛醉如泥,差役們不敢耽擱,架起羲和塞進車子,把他送進宮中。到了殿上,跪倒在天子面前,羲和還是混混沌沌,不知幾分人事。仲康大帝問明情況,才知原來是羲和酗酒誤事,頓時大怒,立刻下令將羲和推出斬了首。 :  古代日食稀奇故事:仲康日食讓天文官丟了腦袋-趣歷史網 (qulishi.com)

건축현장에서도 천재지변이나 외부의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오해나 억울함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 정말 이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책임을 나한테 돌리다니'하면서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난감할 때도 있죠. 지진(地震), 한파(寒波), 혹서(酷暑), 우천(雨天) 등 예견할 수 없는 각종 천재사고에 대해 공격을 당할 때면 참으로 곤혹스럽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억울함은 분노를 동반할 수 있지만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디오 판독기로 사건을 돌려보듯 내 머릿속에서는 그 억울함의 원인을 무한 반복 재생하고 곱씹어 보게 될 것이니까요. 물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서 사안의 본질을 재해석해보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는지, 미리 예측할 수는 없었는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억울함은 문제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무엇에 이끌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감정이 우선될 때 사안의 본질을 절대 객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요동치는 가슴으로 문제를 대하지 말고, 냉철하고 정제된 사고로 문제를 가슴 위로 올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리라는 것입니다. 억울함에도 한 번쯤은 역지사지로 사건을 재해석하는 자세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제 노트북 때문에
설명회를 망쳤다고 말하는 건......
 정말 억울한 일 아닌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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