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극복 방법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한 운동을 웜업Warm Up이라고 한다. 몸이 많이 굳어 있는 경우 작은 움직임에도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가 나고 움직임이 둔하다. 반면 몸이 유연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시원하다”라고 표현한다.
같은 의미로 번아웃으로 피폐해진 정신과 육체를 깨우기 위해서는 웜업이 필요하다. 어떤 웜업이 통증이 덜하면서도 효과적일지는 자신의 컨디션과 의지에 맞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정스님 인생응원가>를 읽으며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 속에서는 커다란 산이라도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그래서 등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입산, 산에 들어간다고 했지 산에 오른다는 말을 감히 하지 않았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라. 거대한 산속에 있는 우리는 멀리서 보면 개미만큼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감히 산에 오른다 하여 등산이라는 말을 써도 괜찮을까?, 익숙한 단어이니 순간순간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산의 일부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입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매일 산을 다니다 보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져 자연스레 등산이라는 말을 삼가게 되었다.
번아웃을 치유하기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웜업들 중 첫 번째가 입산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몇 개월 동안 방 안에만 있다 보니 체력저하와 근력저하, 무기력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암울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번아웃이 한창일 때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도 불편했기에 홀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 보니 입산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매일 4시간씩 우기나 기상 악화를 제외하고 365일 중 300일 이상 산을 걸었던 것 같다. 한두 달까지는 바닥났던 체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꼈지만 집에 오면 또다시 몸이 무거워지고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역시 기적 같은 변화는 없는 것일까.. 차츰 숨을 헐떡이며 걷던 오르막도 평온한 숨으로 걷게 되고, 세네 달이 지나니 계절의 변화가 눈에 보이니 마음에도 작은 동요가 시작되었다. "그래, 내가 생기 없이 보낸 날에도 자연은 묵묵히 변화를 받아들였구나." 눈으로 보고 냄새로 맡고, 소리로 느껴지는 그 자극들이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느낌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변하는 산을 바라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맺을 열매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왜 이리도 예민하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인가" 등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에서 이상향을 찾기 위한 질문들까지, 산길을 걸으며 생각을 비우는 동시에 새로운 생각들을 채우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각기 다른 꽃이 피고, 각자의 계절에 열매들이 맺히는 것이 인간의 삶과 같지 않은가. 빨리 핀 꽃은 빨리 지고, 예쁜 꽃은 사람들에게 꺾이기 쉬우며, 빨리 열린 밤송이는 설익은 채 생명을 다하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사실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할 때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었지만 그날처럼 마음에 와닿는 날도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고통스러운 번아웃 기간을 내 평생에 처음 맞는 '안식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안식년은 유대인들이 7년 만에 1년씩 휴식하던 해를 말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있어 번아웃은 더 긴 휴식의 해를 주었다. 그럼에도 좋게 생각하려고 했던 것은 내 평생 이렇게 긴 휴식기를 가질 수 있는 날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과 사를 고민하고 깊은 밤이 되면 나 자신과 대화하는 새로운 경험을 나를 되돌아보라고 가지는 안식년과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빗살무늬 토기 같은 나의 그릇
사람은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기를 다른 그릇을 가지고 났으니 그 그릇에 채우는 양과 속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옆 사람의 그릇이 먼저 차는 것을 보고 뒤쳐진다 불안해하고, 상대가 더 많이 채우는 것을 보고 질투하며 더 빨리 더 많이 채우지 못한 자신을 채근하게 되는 고단한 삶.
나의 그릇은 어떤 모양일까 수없이 상상하며 그려봤다. "빗살무늬 토기" 아래는 뾰족하고 위는 넓은, 손으로 빚어 만들어 깨지기 쉽고, 청동이나 스테인리스보다 화려하거나 변형이 다양하지 않은 그릇.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혹을 달고 나와 "나 뱃속에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소"라며 예민함을 드러내 나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느낀 부분들로 뾰족한 자리를 메우고 넓적한 윗부분까지 채워가던 청춘의 나, 변화무쌍하지 않지만 성실과 책임으로 역할을 다하며 살아온 나의 모습이 빗살무늬 토기와 닮아 보였다.
다른 사람의 그릇과 비교하며 더 채우기 위해 안달하기에는 나와 그들의 그릇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의 그릇의 양과 속도를 파악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그래, 나대로 사는 거다. 나대로.
1년 이상 산을 찾아갔지만, 마음의 변화가 미미했던지 행동의 변화까지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운동으로 번아웃을 극복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 것일까? 다른 운동으로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번아웃이 있기 전까지 가장 좋아했던 운동은 대련, 팀 운동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스포츠였다. 그러나 번아웃이 오니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을 자신이 없었고, 가장 즐기던 운동이 두려운 운동이 되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헬스장에 등록해서 혼자 하체 근력운동을 시작했는데,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고 갓 40을 넘은 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깨는 팔을 들 때마다 통증이 심해서 조금 더 튼튼한 다리 근육에 힘을 빌려 하체 스쿼트와 무게 들어 올리기를 주 3회 이상하고, 내린천 걷기를 하루 7천 보씩 주 3회를 하며 8개월간 꾸준히 운동을 했다.
헬스장에서의 근력 운동은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말 한마디 할 필요가 없었다. 각자 원하는 기구를 이용하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 있으니 서로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린천 걷기를 하는 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거나 맞은편에서 오가니 어느 순간에는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기분 좋게 산책하라고 꾸며진 전경에 예쁘게 조경된 꽃과 나무, 신나서 영역 표시하고 냄새 맡으며 뛰어다니는 강아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는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 나는 사람들의 눈을 보며 에너지를 주고받았던 컨설턴트이자 강사였지. 그 기운에 힘을 받아 2시간, 8시간도 행복하게 일했던 사람이 나였는데, 그걸 잊고 있었네."
마음은 이미 반 이상 회복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다시 일하고 싶고, 사회에서 내 몫을 하고 싶은 열정이 행동으로 발현될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아무것도 성취한 것 없이 패배감에 젖어 있던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 그렇게 번아웃 극복을 위한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