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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돈의 공통점

말했더니 돌아왔다

by K 엔젤


소통의 중요성

이모와 함께 살면서 두 번째로 크게 느낀 건 바로 소통의 힘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유독 어려움이 있었다. 이유를 곱씹어보면 단순했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이래서 나한테 이렇게 했을 거야” 하고 지레짐작해 단정 지어버리는 습관 때문이었다. 특히 기가 센 사람이나 소위 말하는 ‘갑질’하는 타입을 여러 번 겪고 나니, 내 의견을 꺼내기보다 상황을 맞추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순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 만나는 게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만나도 내 속마음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친절한 호의조차 불편해졌다. ‘저 사람이 왜 이렇게 잘해주지? 혹시 나한테 뭘 바라는 걸까?’ 이런 생각이 먼저 앞서니, 진심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막내 이모는 한마디로 ‘직설적인 사람’이다. 처음엔 그게 부담스러웠다. 말이 너무 날 것 같아서 거리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시애틀에서 이모와 3개월을 함께 살면서 알게 됐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진짜 솔직하고 가식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졌다.

며칠 전, 한국인 룸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냉장고에 있는 김치 편하게 드세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사 첫날 김치 나눠주실 때, 밴쿠버에 가족이 사시는 줄 알았어요.”

순간 웃음이 났다. 만약 내가 말을 아끼고 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을 일부러 피했다면? 아마 우리는 서로 엇갈린 추측 속에서 지냈을 거다.

사람이 무서워서 대화를 피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나다. 이모와의 시간은 그걸 아주 단단히 가르쳐줬다. 대화는 관계를 이어주는 줄이고, 때로는 오해를 풀어주는 유일한 다리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그 다리를 건너는 법을 조금 더 배운 것 같다.


남자친구도 늘 말한다. “네 생각을 말해줘. 대화가 필요해.”
나는 가끔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문자나 전화를 미루는 편이다. 그런데 그 무심함이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연애를 하면서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밴쿠버에 막 와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전날 늦게 자서 아침에 겨우 눈을 떴다. 하필 그 전날 남자친구는 열이 심하게 났고,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답장 없어도 이해하겠지’ 하며 그의 안부 메시지에도 답장을 못 했다. 아침에도 전화 한 통 하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남자친구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다.
“내가 아픈데, 넌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섭섭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급히 전화를 걸었고, 한 시간 넘게 통화한 끝에 겨우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때 남자친구가 한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네 생일에 네가 외로울까 봐 비행기 표까지 끊었는데. 너네 엄마는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 연락도 안 해? 네가 바쁘면 바쁜 대로, 걱정된다고 한마디는 할 수 있잖아.”

그 말이 정곡을 찔렀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을 포장하고 있었던 거다.
“미안해.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라면 절대 그냥 안 놔뒀을 거야. 죽이라도 끓이고 약이라도 사 오겠지.”

그날 이후로 알았다. 연애도 결국 소통이 전부라는 걸.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나는 내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는 걸.

무서운 줄 알았던 막내 이모와도 대화가 편해진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 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더 잘해야 한다. 사랑은 결국 ‘말’과 ‘듣기’ 위에 세워지는 거니까.


다시 돌려받게 된 잔돈 15불


오늘 집주인아주머니가 단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내일 오전 11시쯤 오빠가 와서 집 전구를 고칠 거라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약속한 15불은 꼭 받아내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결국 용기 내서 집주인아주머니께 예의를 갖춰 메시지를 보냈다. 조심스럽게 15불 이야기를 꺼냈더니, 역시나 아주머니는 그 돈을 깜빡 잃고 있었다.

만약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 아주머니는 평생 ‘하숙집 애들 돈 떼먹는 집주인’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15불보다 값진 건 그 오해를 풀 기회를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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