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출근 기차
오늘은 회식 약속이 있고 아마 음주할 예정이라 기차를 타고 출근했다.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기차역까지 데려달라고 부탁한다. 반쯤 눈을 감고 일어난 아내의 차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하니 약간의 추위에 움츠려있는 사람도 보이고 오픈 준비에 한창인 인력사무실의 모습도 보인다. 사무실 입구에 모인 인부들이 담배를 태우며 알아듣지 못할 영웅담을 나누고 있다.
평소 자가용으로 하는 출퇴근길은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꽉 막힌 도로 위에 늘어선 차들과 나란히 달리며 심한 햇빛 눈 부심에 시달리다 다시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이 없는 것인지 내가 출근하는 방향은 동쪽이고 퇴근하는 방향은 서쪽이라 어떤 길로 가더라도 햇빛 눈 부심은 피할 수 없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기차를 타고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다. 다들 밤새 잘 못 잔 것인지 피곤함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잘 차려입은 옷과 다르게 밝은 표정의 사람은 볼 수 없다. 하긴 출근길이 그렇게 유쾌할 리 없겠지.
승무원이 좌석을 확인하기 위해 지나는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 기차 안은 조용하다. 부족한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창가에 스치는 자욱한 안개와 이미 추수가 끝난 논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동안 매일 같이 지나던 길과 다르지 않은데 이제야 풍경이 보이는 걸까? 기차가 도시로 들어서자 새로 생긴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래 어떤 건물이 있었던 곳일까? 저 건물은 뭘 하는 곳일까?
도착을 알리는 기내 방송에 찌뿌둥한 몸을 한참이나 뒤척이다 일어나 기차에서 내린다. 역시나 내릴 때도 사람들의 표정은 AI급이다. 요즘은 표정도 구사하는 AI가 있다니 AI보다 더 AI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하루를 시작하는 걸까?
목적지에 도착해 역사(驛舍) 안을 잠시 둘러보니 생산설비의 제품처럼 기차를 타려는 사람과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스치지도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웃음소리 하나 없는 역사(驛舍) 안은 기차 도착 예정을 알리는 전광판 불빛과 웅성거리는 소리, 카페 앞에 짧게 줄을 선 모습이 보인다. 역시 커피는 모닝커피가 진리 아니던가.
역사(驛舍) 밖 광장에는 가을을 알리는 국화꽃 조형물이 있어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무슨 공사인지 역 광장은 자주 공사를 하는 듯하다. 공사가 끝나도 몇 개월 뒤면 또 공사를 시작하겠지.
발밑에 보이는 낙엽 색이 잘 구운 붕어빵처럼 보인다. 낙엽에서 고소한 향기가 날듯하다. 가을을 이렇게 느껴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트레킹을 할 때나 등산을 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가을을 오늘에야 느껴본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고 했다가 예년보다 온화할 거라고 했다가 기상예보도 갈팡질팡하지만, 지금 계절을 잘 간직하고 다가오는 계절을 잘 맞이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지금은 온전히 가을만 느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