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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Jul 20. 2021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8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Prologue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1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2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3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4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5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6_>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7_>


우리를 찾아온 당신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다들 우리에게 어찌 그리 좋은 기억들만 남겨주고 떠나는지.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 8_>

- 메이 Part 4_


메이 #16. 첫 출근이에요


이 큰집에 둘만 지내다 낯선 사람이 온다는 사실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첫 출근인 셈이라 조금 설렌다. 생각해보면 전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만나게 되는 것은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셀누나네가 당신과 조금은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조금 긴장된다. 호스트가 이토록 설레어한다는 것이  다소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게스트에게는 최대한 여유 있는 척하며 숨겨보기로 한다.


손님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 미리 게스트와 호스트 시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예약 당일, 미리 보내준 지도와 정보를 보고 우리 집에 찾아와 벨을 누른다. 기다린 만큼 한걸음에 달려 나가 환하게 맞이한다. 디테일한 지문은 (더도 덜도 말고 명절날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처럼 반갑지만 쑥스럽게)이다.

이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오래된 유럽식 엘리베이터에서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찬 당신을 포근한 방으로 안내한다. 짐을 놓고 거실 테이블에 앉은 당신에게 체크인 안내와 함께 웰컴 드링크로 샹그리아 한잔을 건넨다.


각본은 이렇게나 완벽했지만 첫 게스트 응대는 역시나 어설프다. 다행인 건 첫 방문자가 나의 오랜 친구여서 연습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때마침 근처로 비행 오게 되어 내가 한국에서 주문한 식판을 조달해주는 큰 도움을 주었다. 그녀와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었던지라 감회가 새롭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손님을 어떻게 맞이 할지 걱정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기에.



메이 #17.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앨리스는 여행 때 밥이 너무 그리웠다고 한다. 하여 든든한 한식 아침을 위해 장을 보고 냉장고를 빵빵히 채웠다. 국산 고춧가루부터 각종 라면까지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나의 경우엔 체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낼 때 포근하고 뽀송한 침구가 너무 좋았다. 역시 우리 침실에도 정갈한 이불과 은은한 향을 세팅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준비해도 엄마처럼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 철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수운 누나들의 정은 또 어떻게 전달하지? 물질화시킨다면 초코파이.. 는 스페인에서 매우 귀하다. 아쉽지만 다른 달콤한 간식을 지퍼백에 담아 체크아웃 전날 밤 건넨다. 게스트와의 기억을 담은 편지와 함께. 참 별거 아닌데 이별 간식을 대부분 좋아해 주셨다.

같은 날 대여섯 명씩 체크아웃을 할 때면 벅찰 때도 있지만, 편지를 쓸 때면 보통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게 된다. 우리를 찾아온 당신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다들 우리에게 어찌 그리 좋은 기억들만 남겨주고 떠나는지.    

  



메이 #18. 티파니 언니와 대동단결


나를 위한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히 러닝이나 간단한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과 담쌓고 살았던 터라 우리 가족들이 들으면 놀라 뒤집어질 일이다. 앨리스 또한 정체모를 외국 언니 영상을 보며 저녁마다 운동을 하고 있다. 동작이 웃긴 것 이거나 또는 앨리스의 몸이 웃긴 것인데, 원인이 무엇이든 일단 너무 웃기다.

장난스레 오늘 처음 체크인한 모찌손님에게 이 격하게 웃긴 티파니 허리 운동을 함께 하자고 권한다. 세상 수줍게 응하더니, 아니 어려서 그런지 잘한다. 그래서 더 웃기다. 다음날 아침, 셋은 뭉친 옆구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있지만 한층 더 가까워졌다. 연이은 체크인으로 셋이 넷이 되고, 다섯이 어느새 아홉이다. 뭉친 옆구리도 아홉이라는 뜻. 유독 이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티파니 언니 덕분인가 보다.  



메이 #19. 거실에서 일어나는 일

체크인 후 사나흘 정도 지나면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못 알아보게 퉁퉁 부은 얼굴, 까치집 지은 머리, 도수 높은 안경으로 한껏 작아진 눈으로 모닝멍을 때린다. 이때 누군가가 들어오면 부끄럼 없이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일찍 가우디 투어를 다녀와선 늦은 오후 잠깐 수다 떨며 쉬기도 하고, 저녁이면 오렌지색 조명이 켜지고 일정이 끝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각자 취향의 술과 안주와 함께 시끌벅적 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시끄럽지는 않다.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거나 도란도란 잔잔한 얘기가 오가기도 한다.

단둘이서는 보일러를 켜도 썰렁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사람 온기로 가득하다. 이곳은 우리 집 긴 복도 끝에 있는 거실이다.


쭈뼛거리며 들어오지만 어느새 별다른 통성명 없이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또는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여행자들은 서로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이름이나 나이 직업 등을 묻지 않았다. 교집합이 오직 여행뿐이기에 그렇겠지.  그랬던 이들이 어느새 마주치면 반가워하고 형, 언니,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저녁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거실로 모인다. 누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말이다.  

멀리까지 떠나와서 왜 굳이 또 한국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가 하고 싶을까 의문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매력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물론 혼자가 좋을 때도 있지만 사람은 본디 고독한 존재이기에 함께일 때 채워지는 행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왔기에 불행하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고 때문에 이곳은 행복한 사람이 다른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장소이다. 여행정보뿐 아니라 자기 동네 국밥 맛집, 오이를 싫어한다는 시덥지 않은 잠깐의 대화로도 충분히 웃음을 그리고 위로를 얻기도 하니 이들이 여기에 머무는 것 일지도 모른다.    



메이 #20. 벨리스 나비다(Feliz navidad)

크리스마스에는 대부분 휴업이라, 갈 곳 잃은 게스트들과 우리 집에서 작은 홈파티를 했다. 참여자는 대략 10명. 먹거리와 작은 선물을 증정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마피아 게임을 시작한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마피아는 얼굴을 들어 확인하세요.”

사회는 호스트가 볼 것 같지만, 촌스러운 우리는 정작 룰도 정확히 모른다. 호스트가 어떠한 분위기를 만들고 끌어가기보다 게스트들에 따라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모이면 이상하게 꼭 진행을 잘 보는 손님이 있다. 항상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늘어져있던 거실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흐른다.


그렇게 서글서글 웃던 섭 손님도 이 순간만큼은 아주 냉정하다. 시크하게 혼자 지내던 유니벌스 손님의 반전 메소드 연기, 막내 손님의 억울함이 내성적인 성격을 뚫고 나와 목 높여 하소연했다. 귀여운 아재에서 마피아가 되는 순간, 곧바로 경직된 얼굴로 검거되기도 하며, 한바탕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피바람이 불었다. 내일 아침에 또 모여 한판 더 약속하며 산타의 선물 같은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메이 #21. 인생은 아름다워

오픈하고 조용할 날 없이 많은 게스트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주었다.(자랑하는 거 맞다.) 덕분에 즐겁고 재미있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힘들기도 하다. 원래 계획에 아침식사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었지만 현실은 눈떠서 고양이 세수 후, 아침을 조리하고 시간 맞춰 내어 주기 바쁘다. 그리고 나만 차려입고 식사를 제공했다면 게스트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스러웠으리라 합리화해본다.


어느새 2019년 마지막 날이다. 카운트다운과 포도 열두 알 그리고 화려한 불꽃으로 섹시한 서른을 맞이한 터라 유난히 눈꺼풀은 더 무겁지만, 새해 첫날이니까 특별히 김밥을 준비하여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잠꾸러기들은 제외. 토끼 가족과 헝가리 형님들 매력부자열이가 함께 했다.


솔직히 앨리스와 나도 잠이 많은 편이고 매일 뜨는 해를 굳이? 울며 겨자 먹기로 게스트들을 위한 이벤트로 계획했던 일이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너무 감사한 광경이 펼쳐졌다. 자주 걸었던 골목이 처음 보는 오묘한 새벽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펼쳐진 해뜨기 직전의 아득한 빛의 바다. 황홀경에 빠져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모래사장을 냅다 달려보기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과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나의 내일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을 만들어준 나의 가족들과 게스트들, 앨리스에게 감사하다. 살아보니 내 인생이 너무 재밌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찾아올까. by 벨레 매거진



*<뜨거운 스페인, 민박집 언니둘>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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