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장의 米식 일기 ⑫ 맛있는 공깃밥 한 그릇
왜 공깃밥인가?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보통의 밥벌이에서도 외식업은 참 어렵도 힘든 영역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메뉴 하나에도 개성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레시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얻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인가 싶다. 메뉴, 인력관리, SNS 홍보 같은 마케팅까지, 모든 일에 만능이길 요구당하는 자영업의 정글에서 지금 천 원짜리 공깃밥의 맛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 세끼 먹는 밥이란 게 너무 친숙하지만 의외로 외식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밥의 대한 매뉴얼이나 기본기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외식업을 준비하면서 꼼꼼하게 준비되지 못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밥이 맛있는 식당은 메뉴 대부분이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주는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찰기 있으면서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남는 그런 밥집을 누구나 호불호 없이 좋아한다. 그러니 공깃밥 한 공기는 그냥 공깃밥이 아니다. 공깃밥 한 그릇을 담아내는 과정과 정성에서 모든 것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공깃밥 한 그릇의 가격
공깃밥이 맛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싼 쌀을 쓰면 좋아질까?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또 자영업이라는 영역에서는 일단 원가를 따져야 한다. 한정적인 비용을 가지고 합리적인 서비스를 만들어야 사람들도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든 자영업의 기본은 원가 계산이다. 그러면 우리 집 메뉴에서 쌀의 원가는 얼마일까? 좋은 쌀을 쓰면 원가가 얼마나 올라가게 될까?
천 원 하는 공깃밥 한 그릇은 보통 200g~210g 정도. 하지만 쌀로 계산하면 90g~100g 정도가 들어간다. 100g이라고 했을 때 20kg 쌀 한 포대면 200인분의 밥이 나오는 셈이다. 가격을 비교해 보자. 오늘(2021년 11월 15일) 소매 기준, 인터넷 쇼핑몰의 햅쌀-혼합미-보통등급 20kg이 5만 5천 원 정도다. 밥 한 그릇당 275원인 셈이다. 브랜드가 있는 햅쌀-단일미-상등급은 7만 5천 원이라고 했을 때는 375원으로 100원의 원가 차이가 난다.
물론 100원의 수익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밥의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밥은 다른 메뉴와는 다르게 단독으로 조리되고 섭취되는 식품이다. (물론 죽이나 떡 등 다른 가동 방식도 있다. 여기서는 백반이나 공깃밥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른 대체 식재료가 없다는 것이다. 반찬이야 시금치가 비싸면 다른 나물이 나갈 수 도 있고, 고기는 대체 부위나 전처리, 조리방식을 달리해서 해서 원가를 줄이면서도 맛을 유지해 나갈 수 있지만 밥, 쌀은 그렇지 않다. 묵은쌀을 쓰면 향과 맛이 티가 나고, 저가미를 사용하면 식감이 확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쌀은 고객이 만족하는 맛을 낸다. 천 원짜리 공깃밥이라고 다 같은 공깃밥이 아니다. 100원의 원가 상승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단일품종과 완전미
쌀이 가진 고유한 밥맛이라는 것은 유전적 특성이다. 그러니 맛을 좌우하는 것은 품종이다, 당연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혼합’ 쌀보다는 조금 단가가 나가더라도 ‘단일품종’ 쌀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좀 다른 이유도 있는데 이 혼합쌀이라는 것이 두 개 이상의 쌀 품종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인데 어떤 쌀을 혼합했는지 구매하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식당 메뉴인 전골에 들어가는 햄이라 치면 이 햄의 고기와 다른 첨가물의 함량을 알 수가 없고, 심지어 그때그때 다르다면, 도저히 같은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메뉴로서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밥도 그렇다. 어떤 쌀 품종이 혼합되어 있는지 모르고 밥을 지어내는데 좋아할 손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식당들이 원가의 이유로 이런 혼합쌀을 사용한다. 손님들이 ‘이 집은 밥이 좀 아쉽네’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단일품종의 쌀이면 다 좋은 쌀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품종은 맛의 문제다. 단맛, 구수한 맛, 차진 맛 같은 것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300여 가지 쌀이 다 조금씩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호불호가 있다. 맛은 취향의 문제다. 그렇다면 외식업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쌀이 제 맛을 다 구현하려고 한다면 쌀알이 부러지지 않고, 금이 가지 않았으며 잘 여물어 제 모양을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완전립이라고 하고 이 비율이 높은 쌀을 완전미라고 한다. 금가고 부러진 싸라기가 많이 섞인 쌀로 밥을 하면 아무리 좋은 품종의 쌀이라도 제맛을 내지 못한다. 끈적끈적하고 밥알은 뭉개지고 맛은 비릿하다. 제맛을 낼 수 있는 완전미의 선택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취향이나 메뉴에 어울리는 품종이다.
메뉴에 따른 쌀 품종 선택
메뉴에 어울리는 쌀이 있을까? 애초에 어떤 메뉴에 어울리도록 개발된 쌀이 있지는 않다. 신품종 쌀을 개발하는 기간이 약 10년 정도이니 특정 음식에 어울리는 쌀이 개발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병충해에 강하거나 재배하기 쉬우면서 수확량이 많은 쌀이 개발되어 왔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는 수량보다는 미질, 그러니깐 밥맛을 중심으로 쌀의 개발 방향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쌀의 품종별 특징을 잘 파악해보면 음식별로 어울리는 쌀을 선택할 수는 있다. 쌀알에 크기에 따라 중대립종, 소립종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현재 국내 생산되는 쌀 중에는 신동진 품종이 중대립종으로 일반적인 쌀보다 1.3배 더 크다. 해서 씹는 식감이 필요한 비빔밥이나 국밥 등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어도 밥맛을 일정 정도 유지하는 특성을 가진 쌀도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는 김밥이나 주먹밥, 도시락 같은 음식에 쓰면 좋다. 강원도가 주 산지인 오대가 그렇고, 최근에 개발된 영호진미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밀키트나 배달 메뉴에 적합한 쌀도 같은 방식으로 찾아 나갈 수 있다.
밥솥의 선택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진’ 밥맛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끈기가 있으면서도 탱글탱글 한 식감을 말하는데 특출하게 더 차진 맛이 있는 쌀 품종이 있기도 하지만 밥을 하는 방식, 특히 밥솥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런 밥맛을 내기에는 압력솥이 더 유리하다. 꽤 많은 백반 식당들이 압력솥에 밥을 해 공기에 담아내는 이유다. 식당에서 흔히 쓰는 업소용 밥솥으로는 이런 밥맛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업소용 밥솥은 대개 밥솥 안의 아래쪽 판에 가열되는 방식인데 양이 많으면 열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고 압력이 약해 원하는 밥맛을 내기 어려운 것이다. 압력솥으로 밥을 하고 업소용 밥솥은 워머로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압력솥으로 밥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일반 가정용 전기밥솥 여러 개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이왕이면 IH 방식이 좋고, 고압과 무압을 선택할 수 있는 밥솥으로 밥맛에 경쟁력을 줄 수도 있겠다. 무압으로 특별히 더 고슬고슬한 밥을 만들어야 한다면 냄비나 무쇠솥이 좋다.
밥 짓기 매뉴얼
대부분의 식당이 밥 짓기에 대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쌀의 구매와 보관, 불리기, 밥 짓기, 뜸 들이기와 그릇에 담기까지의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면 보통의 식당보다는 더 맛있는 밥을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바쁜 식재료 준비로 쌀을 불리는 과정이 생략되기 쉬운데 의외로 밥맛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쌀 불리기 과정이다. 특히나 대량으로 밥을 할 때 더 많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영업준비의 과정으로 쌀을 씻어 불리는 일을 가장 우선에 두면 좋겠다. 밥 한 그릇이 손님에게 따뜻한 온기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이 과정이 섬세하게 준비되고 순서대로 밥 짓기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사실 밥으로 메뉴에 차별을 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보통 밥 보다야 메인 메뉴에 더 관심이 많고 밥은 부차적인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을 잘 짓는다는 것은 외식업에서 기본을 잘 챙기는 일인데 지금까지는 앞서 말한 여러 조건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기대하고, 이런 밥맛을 위해 노력하는 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강조컨데 공깃밥은 그냥 공깃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