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 X 해외 리포터] SEE SAW 뉴욕 리포터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 X 해외 리포터]에서는 아이와 함께 해외에서 살고 있는 엄마, 아빠 리포터들이 직접 경험해본 다양한 제3의 공간을 소개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공원 등 공간의 물리적인 환경은 물론, 공간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 아이들이 경험하는 콘텐츠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맨모삼천지교는 무슨 뜻인가요?)
뉴욕 맨해튼에서 만 다섯 살이 막 지난 딸을 키우고 있는 안선희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의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다가 남편의 일 때문에 뉴욕에 오게 되었어요. 이사온지 겨우 1년이라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좀 더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한국과 다른 육아환경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 그 작은 차이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제 경험들을 ‘Man모삼천지교’라는 별명과 함께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함을 의미하는 '맹모삼천지교'처럼 '맨해튼'이라는 서울과 비슷한 대도심 속에서,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요.
+ 맨모삼천지교 선희님의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childrensheaven
Q. 뉴욕으로 오시고 나서, 요새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여기 오기 전에는 아이들을 둘러싼 시선, 문화, 시설, 법, 복지 등을 포함한 환경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고 나서 한국과는 크게 다른 환경과 문화를 마주하게 되니까 '왜 이럴까, 왜 다를까'를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뉴욕으로 가신 후에 가장 다르다고 느끼셨던 첫 순간이 언제인가요?
뉴욕에 간지 얼마 안 되어서 동네 델리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아이는 그때만 해도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던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테이블에 앉혀두고 저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한 할머니가 아이에게 다가오시더니 "너 참 예쁜 아이구나. 동네에서 못 봤던 것 같은데 놀러 왔니?"라고 말을 거셨어요. 어리둥절한 아이 옆에서 제가 감사하다고, 이제 막 이사를 왔다고 설명하자 "너같이 예쁜 아이가 우리 동네에 왔다니 너무 반갑구나. 좋은 하루 되렴"하고 가셨어요. 처음엔 약간 경계심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그런 식의 코멘트를 하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마트에서 우리 앞뒤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일상적으로 일종의 빈말 같은 따뜻한 인사를 건네요.
재밌는 건 시간이 지나니까 저희 아이가 그런 인사와 칭찬을 받는 게 익숙해지면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지 자신만만 긍정만만이 되더라고요. 저 또한 아이와 다니면서 늘 어딘가 모르게 '민폐'를 끼칠까 움츠러들었는데 요즘엔 어딜 가든 배려받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고요. 내 아이가 아니어도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정신없음도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이 사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Q. 아이들을 둘러싼 '물리적인 환경' 측면에서 한국과 뉴욕의 환경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먼저 물리적인 환경이 '아이들에게 열려있다'라고 생각해요. 모든 시설에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쉽거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구비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패밀리 도슨트 프로그램이나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 심지어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들도 문화적인 혜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특별한 관람 시간을 지정하고 지원하는 전시관들도 많죠.
문화시설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아이들이 한 명의 손님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존중하는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마치 고객 응대를 위한 서비스 매뉴얼처럼 아이들이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면 아이용 수저, 식기류, 의자가 따로 준비되어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구성된 키즈 메뉴를 별도로 판매하는 건 물론,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간단한 색칠공부 키트나 보드게임을 빌려주는 곳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가끔 아이들이 좌석은 차지하지만 매출 측면에서 도움되지 않는 방해꾼으로 여겨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한 명의 손님으로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식당에서 완벽히 준비해둔 느낌이었고 이러한 작은 차이 덕분에 외식이 훨씬 수월해졌어요.
Q. '심리적인 배려' 측면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소 모호하지만 '아이를 보는 눈'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우선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아이들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그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 역시 배려받고 이해받아야 한다는 게 일상적인 배려 속에 담겨 있어요. 예를 들면 버스에 올라탈 때나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아이와 함께 하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너무나 당연하다듯이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줘요. 그 어떤 대도시보다 바쁜 뉴욕에서 말이죠!
Q. 아이와 만났던 사람들에게 감동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소소한 삶 속의 감동들인 것 같아요. 아이와 이야기할 때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어 주려 노력한다거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할리우드 배우인양 아이가 하는 말에 호응해주는 어른들을 볼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집의 할머니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오실 때, 유모차를 끌고 가며 무거운 문을 열기 힘들어 곤란해하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던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기다려줄 때, 버스에 느릿느릿 한 걸음씩 올라타는 아이를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어른들을 볼 때,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함 없이 늘 밝고 생기 있게 자라나는 아이를 볼 때, 그런 일상의 순간들이 감동인 것 같아요.
Q.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경험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나요?
한국에는 '이건 아이들이 못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있는데 여기는 거꾸로 '아이가 못하는 게, 할 수 없는 게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친구인 쌍둥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볼링장에 가자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볼링장에 가?' 물었더니 '갈 수 있어. 왜 못가?' 하길래 따라갔어요.
가서 보니까 키즈 볼링장도 아닌데 4살, 5살 아이가 신을 볼링 슈즈가 '당연히' 구비되어 있더라고요. 가족 단위로 와서 즐기려면 당연히 '가족 구성원 중에 하나인' 아이도 즐겨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구성품이 완비되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무거운 볼링공을 어떻게 굴리나 봤더니 미끄럼틀 같이 생긴 지렛대가 있어서 공을 들어 꼭대기에만 올리면 볼링을 할 수 있었죠. 여긴 오히려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찾는 게 더 빠른 곳인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큰 차이죠.
Q. '가장 최근에' 다녀오신 곳 중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인가요?
얼마 전에 소개했던 'The Giant Room'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과학과 아트를 연계한 일종의 팝업 활동 공간인데요. 공간 자체는 다소 어지러워 보이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해도 되는 여지가 있는 공간이에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통해 상상력, 창의력이 발전하는지 연구해서 4가지 모듈로 만들어 공간에 적용했다고 해요. 예를 들면 아날로그로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코딩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해서 경험해보도록 준비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발표 세션이 따로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 The Giant Room 이야기 자세히 보기: https://brunch.co.kr/@sunheean0305/21
그리고 최근에 맨해튼에서 페리를 타고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Govenors Island의 Play:Ground NYC”에 다녀왔어요. 폐자재를 모아 놓은 것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른의 관여 없이 놀이를 만들어가는 놀이터였는데요. 다치지 않을까 주저할만한 공간이었는데도 아이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사회를 만들고, 활동을 만들어내더라고요.
한국도 그렇고 흔히들 '아이 중심으로' 교육한다고 하는데 이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놀이터에서 본 것처럼 아이들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자율성을 극대화해서 아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놀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어른이 자의적으로 '위험해, 못해'라고 울타리를 정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공간이에요.
Q. 다녀오신 곳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요?
MOMA의 A Closer Look for Kids라는 가족 대상 도슨트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어요. 우선 아이들이 작품 가까이에 둘러앉아 작품을 만들 때 쓰인 여러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재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구성이 좋았어요. 그리고 프로그램의 모든 구성이 아이들의 집중력과 반응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아이들의 관심이 흐트러지면 작가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그림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변주가 있어서 아이들 중심으로 아이들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잘 기획한 경험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뉴욕에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 나들이 코스가 있으신가요?
'뉴욕 맨해튼' 하면 아무래도 다들 박물관, 미술관 같은 관광 스팟을 먼저 떠올리실 것 같아요. 대부분 박물관 미술관에 가봐야지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 안에 가족이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하시거든요. 예를 들면 뉴욕 자연사박물관에는 '디스커버리 룸'이라는 공간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MOMA(현대미술관)에서도 가족을 위한 주말 프로그램은 물론, Art Lab이라는 무료 아트워크 공간도 구비해두고 있어요. 시간만 맞춰서 가면 외국인도 들어갈 수 있고 무료인 경우가 많거든요. 박물관 , 미술관을 그냥 둘러보고 나오는 것보다 아이들의 기억에 훨씬 많은 잔상을 남겨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박물관, 미술관도 너무 좋지만 '놀이터'를 꼭 방문해보시길 추천하고 싶어요. 맨해튼 대부분의 놀이터들이 각기 다른 테마와 디자인으로 굉장히 잘 구성되어 있어요. 센트럴 파크 안에도 놀이터가 굉장히 많고요.(센트럴파크 놀이터 맵) 특히 센트럴 파크의 가장 대표적인 놀이터 '헤셔 플레이그라운드'와 맨해튼과 뉴저지 사이의 허드슨 강변에 늘어선 다양한 놀이터들은 꼭 방문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놀이터마다 나름의 특색도 좋지만 탁 트인 환경에서 아이들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특히 허드슨 강가 쪽 놀이터는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현지인 아이와 부모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맨해튼 놀이터 탐험 시리즈: https://brunch.co.kr/@sunheean0305/30
+ 허드슨 강변의 Pier 25 플레이그라운드: https://brunch.co.kr/@sunheean0305/28
+ 센트럴파크의 헤셔 플레이그라운드: https://brunch.co.kr/@sunheean0305/26
앞으로 뉴욕 리포터, 선희님이 SEE SAW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할 새로운 공간과 경험, 환경을 기대해주세요!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사진: 안선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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