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공간 경험을 만드는 다양한 제3의 어른
[C Program X 아르떼365]에서는 SEE SAW 뉴스레터가 1달에 1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뉴스레터 아르떼365를 통해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제3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넘나들며 배울 수 있는 성장과 자극의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과학관의 사례와 함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미술관, 작업실, 과학관, 도서관, 박물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제3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지난 4월부터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을 주제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365에 10차례에 걸쳐 다양한 공간을 소개했다. 아이답게 예술을 만나는 미술관, 창조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작업실, 질문하는, 실험하는 재미가 있는 과학관, 새로운 시작을 돕는 도서관 등을 살펴보면서 아이들이 평소에 집이나 학교에서 하지 못하던 제3의 새로운 경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의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다.
집, 학교, 학원을 오가는 일상생활에서는 충족하지 못했던 호기심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
시험 점수를 잘 받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커리큘럼처럼 짜여진 경험이 아니라 시작과 끝,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공간
부모님, 선생님처럼 사회적 관계가 아닌, 동등하고 수평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
여기서 공간이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과 영감의 기회를 주는 환경은 물리적 공간,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공간을 운영하는 제3의 어른들이 아이들이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어떻게 환영의 제스처를 보내는지,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떻게 북돋아주는지, 아이들 스스로 경험을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유사한 공간, 콘텐츠로도 새롭게 말을 걸 수 있다.
제3의 새로운 경험은 제3의 공간과 제3의 어른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은 제3의 공간에서 만나는 다양한 어른들과 함께 '일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박물관의 관람객과 학예사로 만나거나, 미술관의 관람객과 도슨트로 만나거나, 도서관의 이용자와 사서로 만나거나, 작업실의 작업자와 스태프로 만나기도 한다.
이처럼 제3의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는 해석할 여지, 만들어 갈 여지가 풍부하다.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는 관계일 수도 있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동등하게 소통하며 협업할 수 있는 관계일 수도 있다. 어떤 관계의 양상이 있을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필자가 지난 10회에 걸쳐 소개했던 제3의 공간에서 만난 제3의 어른들과 함께 나눈 대화의 일부를 소개한다.
지난 7월에는 떠오르는 영감이나 호기심을 손으로 시도하고 표현해보는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 작업실을 소개했다. 작업실에서 아이들은 평소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접하며 상상 속에 있는 것을 구체화하고 구현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는 단순히 작업 공간과 재료, 도구만 갖춘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간 운영자가 곳곳에 숨겨둔 세심한 장치, 예를 들면 이름 대신 별칭을 사용해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듯한 환기를 해준다거나 흰색 가운을 입으며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배려가 조화를 이뤄야 가능하다. '제대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안정감,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청개구리 작업실의 운영자 하루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Q. 처음에 했던 생각과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도 처음엔 ‘어린이들이 아무것도 없으면 작업실에 들어와서 방황을 할 것이다.’ 이런 가정과 가설을 가지고 뭔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가이드를 줘야겠다, 장치를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테스트를 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안 썼어요. 2주일 동안 아무도 안 썼어요. 딱 한 명 썼어요, 그것도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썼어요. 이렇게 빠르게 실패를 하고 (웃음) 그냥 들어오자마자 본인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서 되게 많이 놀라고 한편으로 안도하고 그랬죠. 어린이들한테 너 여기 오면 재료도 똑같고 공간도 똑같은데 왜 자꾸 오냐고 물어봤는데 어린이 중 한 명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게 다르잖아요”. 어린이들의 상상과 생각은 늘 다르니까 늘 새롭게 만들 게 있다고 답변을 해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Q. 한 사람의 작업자로서 어린이를 대하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저희 스태프 매뉴얼에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는다, 너무 밀착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최대한 거리감을 둔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 실험하게끔 유도한다"와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공간의 모토인 '스태프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저희 스태프들에게도 너무 친밀하게, 너무 한 사람에게 밀착적으로 도움을 주지 말자는 이야기를 항상 공유해요. 물론 그런 어린이가 필요할 수는 있어요. 작업하다 손이 미숙하니까. 그래서 도와줘야 할 때엔 도와주지만 너무 붙어 다니면서 해줄 필요가 없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오히려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그런 경험을 주는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9월에는 트윈세대를 위한 도서관을 소개했다. 트윈세대는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단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취향이 생기기 시작하고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자아를 형성하는 단계에 필요한 다양한 영감과 자극을 주는 제3의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시험 기간에 공부하러,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로 사색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수다 떨며 감상평을 나누기 위해서, 평소에 하고 싶던 경험을 어른들의 지지 안에서 안전하게 시도하기 위해서, 집,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문가 어른들을 만나러, 책 외의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 찾아가면 어떨까. 도서관이 트윈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라며 친구와 조력자, 그 사이 제3의 어른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송지은 운영자와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Q. 일반 도서관과 비교했을 때 트윈세대 공간 운영자는 어떤 다른 역할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주로 세 가지 목적으로 도서관에 와요.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죠. 이번 프로젝트는 앞서 말한 세 가지의 목적(공부, 책, 프로그램)이 아니라 트윈세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공간을 만드는 취지가 다르기 때문에 운영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자료실에서는 참고 봉사 위주의 서비스를 객관적으로, 공적으로 제공했다면 이 공간의 운영자는 이용자가 공간에서 경험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아이들을 환대해주고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경험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트윈세대 공간 운영자가 어떤 어른으로 인식되면 좋을까요?
처음에는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할 줄 알았어요. 한 번은 중학생인 첫째 아이에게 우리 공간을 소개하면서 운영자가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 한번 물어봤더니 "엄마, 처음엔 반갑게 맞아주고 그다음엔 나에게 신경을 꺼줬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한다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한 명, 한 명을 주시하고 관찰하고 지켜봐 주는 게 중요하겠구나, 환대뿐 아니라 기다려주는 시간이 중요하겠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또한 이 공간이 각자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존중받고, 그러한 의견들을 다채롭게 펼치고 실행해 보는 공간, 다른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트윈세대 각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조율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 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11월에는 전시물을 만드는 과정과 사람을 비추며 일상에서 하기 힘든 '제3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박물관을 소개했다. 박물관에서의 배움은 진열된 전시물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박물관은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어른들,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나 아티스트, 큐레이터, 연구자 등 각자의 자리에서 박물관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직,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거나, 집이나 학교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 예를 들면 전시 기획부터 전시물 제작까지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3의 공간이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 속에서 전시물, 그리고 전시물 너머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배움을 이어가도록 영감을 북돋아주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김지나 학예사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Q. 어린이박물관에서 일하면서 특히나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린이들이 "뮤지엄에서는 되게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학교처럼 학생, 선생님의 관계가 아니라 박물관에선 어른이든 어린이든 모두 관람객이니까 그렇기도 하고, 어린이박물관은 비형식적인 교육기관으로서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제2의 교육을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린이 자문단 친구들이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경험, 주도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뿌듯합니다. 박물관이 말썽처럼 보이는 다양한 행동도 새롭고 창의적인 행동으로 해석되는 곳, 다양성을 인정받고 환영받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어린이들이 한 명 한 명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는 공간으로서 박물관을 이야기할 때 특히 뿌듯함을 느껴요.
Q. 교육이나 전시를 기획하실 때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자유를 많이 주고 싶어요. 무언가를 배워야 끝나는 프로그램이나 이걸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어린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 답이 없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노력해요. 어떤 결과로 끝날지 시작할 때 아무도 모르는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많이 하고 싶어요.
익숙한 일상 공간과 달리, 평소에 못했던 낯선 경험을 새롭게 시작하고 시도하도록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과 공간 속 제3의 어른을 살펴보았다. 부모님, 선생님도 아닌, 친구와 조력자, 동료와 보호자 그 사이 어딘가의 역할을 지닌 제3의 어른들은 몇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정서적인 안정감(Emotional Safety)
함부로 단정 짓거나 평가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
누구나 자기다워도 된다는 안전망이 되어주는
책임감 있는 자유로움 (Freedom and responsibility)
개입하기 전에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며 기다릴 줄 아는
동등한 주체로서 인정하면서 동시에 보호해야 하는 부분을 정확히 아는
창조적인 자신감 (Creative Confidence)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여지와 기회, 환경을 제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의견, 엉뚱한 생각까지도 존중하는
더 많은 아이들이 제3의 공간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단계의 호기심으로 넘어갈 수 있는 영감을 만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공간도 많아져야겠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조력자처럼, 협업하는 동료처럼, 좋은 어른처럼 경계를 넘나들면서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는 힘을 주는 제3의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과 제3의 어른에 마음이 움직이는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더욱 많아지길,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변화를 기대한다.
글: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