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에너지 넘치는 4남매와 아빠의 책 <어른은 어떻게 돼?>
[Things we watch]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본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영화, 다큐멘터리나 책일 수도 있고 공연일 수도 있고 재밌게 들었던 팟캐스트, 영상 클립일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를 보고 나서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고 콘텐츠에 대해 대화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박철현 작가가 일본인 아내, 4남매와 함께 일본에 살면서 가족들의 다양하고 개성있는, 때로는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어른은 어떻게 돼?>를 읽고 느낀 점을 담은 글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아이를 만나시는 많은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일본에서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가 쓴 에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네명의 아이라니(한 명도 키우기 힘든데....?...), 더군다나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빠가 썼다니? 흥미로웠다. 힘든 육아현실(이라 예상되는) 을 아무리 아름답게 썼더라도, 그건 미화된 이야기일것이야 라고 생각하며 의심을 품으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는 아이들을 키운다라는 표현보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행복하고 따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빠가 쓴 에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책 표지의 제목과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은 어떻게 돼? -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책에서는 4명의 아이가 제각각 각자의 속도로 각자가 재미있는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장하고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 아빠도 함께 다른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게 되고, 아이들이 담아 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며 그 세상에 함께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안에서, 각자의 몫을 해나가며 전혀 다르게 각자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책을 읽다보면 아이의 일상을 정말 소소하게 나누고 그 일상의 장면들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공부엔 취미가 없지만 운동을 좋아해서 소프트볼 클럽에 들어간 첫째 미우가 연습이 너무 힘들어 집안일을 돕지않고 있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을 때, 아빠는 세심하지만 투박하게 아이를 이해하며 대화를 한다. 툭.
"벌써 10시네. 빨리 자라,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응 시 대회 우승하는 바람에 계속 아침연습이야."
"그래, 엄마한테 들었어. 너 열심히 잘한다고 그러더라 야."
"진짜??"
"응 진짜야. 도 대회도 높은데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 너도 출전해야지!"
"응! 열심히 할게."
"그래. 잘 자라."
미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일어나 나간다. 방문을 닫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미우가 들릴듯 말 듯 속삭인다.
"아빠. 고마워." -p93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그리고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일을 전담하여 맡고 있느라 육아와 가사일을 전담하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저자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은 대화에서까지 아이들의 일상과 닿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아빠와 일상을 공유하고 생각을 말한다.
책을 읽다보니 22화에, 술집마스터로 일하는 저자가 집과 멀리떨어진 일터와 집을 오가다가 힘들어져서 근처에 방을 얻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때 아내가 아이들 행사에는 반드시 참가할 것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이 제안이 그 시작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참여하는 축제 및 이벤트에서부터 일일자원봉사까지,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매해 갖게 되는 이벤트로부터 아이들의 성장의 궤적을 함께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심지어는 아빠가 기억하는 상황을 아이가 잊기도 한다.
" 기억나? 유치원 졸업반 체육대회 할 때 너 혼자 안 뛰어서 엄마가 엄청나게 걱정한거."
"하나도 기억 안나는데."
"그럼 너 육상부 동아리에 왜 들어갔는데?"
"어? 설마 그게 그 이유 때문에 들어간 거야?"
"그럼 당연하지. 40명 중에 너 혼자 안 뛰는데 걱정되잖아. 그래서 엄마가 수소문해서 거기 같이 갔는데 가자마자 네가 하고싶다고 해서 한거야. 정말 기억안나?"
"와, 하나도 기억 안나."
"그래도 다행이었어."
"뭐가?"
"네가 하고 싶다고해서.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는 거니까."
"근데 되게 신기하네. 왜 그때 안 뛰었지? 이렇게 즐거운데." -p181
기억을 공유하는 것. 담백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하는것. 어쩌면 흥미로운 이벤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게 중요하기보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는 것의 다른말이 아닐까. 가족이어서 당연히 지원군이 되는것이 아니라.
" 아이고 미우 아버님. 유치원 들어오는 아이들 나이가 서너 살이에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건데 공부를 왜시켜요. .... 서너 시간 동안 유치원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면서 아주 기초적인 사회성을 기르는 거죠." - p34
첫째 미우의 담임이자 막내 시온의 담임 유치원 선생님(첫 아이 보낸 유치원을 막내 아이도 보내고 담임선생님도 같다니!!!)이 저자가 공부는 안시키냐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유치원이라는 곳은 엄마 아빠, 혹은 본인만을 돌봐주는 곳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곳이다. 새롭고 신기한 경험들을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가정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가정 밖으로 나가,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곳. 사회생활을 되짚어보면 사회성을 기른다는 것 자체가 때론 어렵다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하며 살고 있다. 글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성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차곡차곡 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유치원은 가장 중요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닌 음악을 즐기고, 동료와 노는데 충실한 유치원이 된다.
바깥에서 친구들과 뛰놀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면서 소중하게 같이 키워간다는 인상을, 그런 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느낀다. 사회전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느낌을 아이들도 받는다.
-p143
4남매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대신 학교의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논다. 공동체 이야기도 나오는데, 동네에서 크고 작게 열리는 행사나 이벤트가 많고, 아이들은 그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간다. 동네에 직접 참여하는 행사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고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최근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우리 동네가 놀기 좋은 동네인지 평가할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지표중 이런 항목이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호의적인가요?" 몇번의 워크숍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이 질문을 가장 어려워 하셨다. 우리 동네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느낌이 드는지. 아이들을 위해 시설적부터 동네의 분위기까지 아이들의 놀이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는지. 기꺼이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주는 동네 사람들이 되어주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워크숍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본인 동네를 떠올리며 그 질문을 해보시고는 평가 자체를 어려워 하시거나,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시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 전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느낌이라, 부럽기까지했고. 이런 느낌의 동네를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게되었다.
'이치닌마에'는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한다, 혹은 그 정도 수준이 됐다는 의미다. 원래는 음식점에서 뭘 시킬 때 1인분만 주문할 경우 이 표현을 쓰는데 관용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느냐 없냐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우리식으로 따진다면 독립해도 되는 수준인가의 기준이다. 일본 사회는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즉 업종에 상관없이 '이치닌마에'가 된다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풍토가 있다.... 일본어에도 '팔방미인'이란 표현이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나쁜 의미로 쓰인다.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를 추구하고 장려하는게 일본사회의 암묵적 룰이고, 그래서 직업에서 차별받는 경우는 적어도 '겉으로는' 보지 못했다. -p196
저자가 아이들을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정말 하지 않게 두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한사람 몫"을 온전히 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존중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면, 잘하는 다른 일로 전문가가 되면 되고, 그 분야는 어떤것이어도 상관없는 것. 4명의 아이들이 (막내는 너무 어리니 제외하고서라도^^;;) 공부에 집착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커도 미래가 불안하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유나가 아빠 생일에 짧은 소설을 써서 선물 한다. (공부는 안한다). 소설을 쓰고 소프트볼을 하고 육상을 하고, 동네 축제에서 열리는 뮤지컬 무대에 선다. 뭘 해도 각자의 몫은 할거라는, 그리고 그렇게 해도 무시받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확신. 그 확신에서 아이들은 더 다양하게 경험하고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쓸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의 아이들의 삶에서 특정한 경험들만 하게 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들의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길을 내고 각자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그 길의 단계마다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수준의 어른이 되어가고, 그 어른을 사회적으로도 차별없이 인정해주길 바래본다. 아래 저자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처럼.
미래가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미래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만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우, 유나, 준, 시온의 미래를 누구보다 절절히 기다린다. 그리고 너희들이 어른이 됐을 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책은 보잘것 없는 이 아빠가 미래의 너희들에게 띄우는 연애편지니까.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올랐던 포스팅이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동료인데 가끔 대화를 나누거나 SNS 포스팅을 볼 때 동료와 부모님과의 관계가 따듯하고 단단하게 느껴져서, 그 동료의 어머니처럼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해외에 출장갈만큼 제 몫을 해내는 딸에게 용돈을 건내며 써주신 편지도 인상적이었지만, 딸에 대해 매번 발견하는 것처럼 말씀하신다는 것, 구체적이지만 어느정도 거리감 있는, 투명하고 다정하게 존중해주는 칭찬을 하신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대화를 통해 동료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긍정하게 되었다는 것도.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 서로를 존중하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가족은 이런 모습일까 상상해보게 되었다.
단단하게 일상을 지켜가는 힘. 그 속에서의 가족과 부모의 역할.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에세이여서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책 중간중간 나오는 아이들의 사진이 너무 예뻐서 책을 계속 들여다 보게 된다. 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아이를 만나시는 많은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 뿐만 아니라 아버지예술학교 참관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감상글, 서울숲놀이터, 북서울 꿈의숲,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박 2일 캠프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지난 4년간 어린이를 위한 열린 공공 공간과 놀이 환경에 투자해 온 C Program이 엄선한 정보를 놓치지 마세요. 이번 주 목요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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