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we see] 세 살배기 아이와 다녀온 느티나무도서관
[Plac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가) 본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미팅, 출장으로 가보았거나 호기심에 이끌려 주말에 슬쩍 찾아갔거나,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다양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느티나무도서관] 한 줄 미리 보기
느티나무도서관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삶에서 만난 질문에 답을 얻고, 또 다른 질문을 품고 돌아올 수 있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일상의 공간입니다.
임신했을 때,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을 포럼 때 왔었으니 꽤 오랜만이다. 교육이 어때야 하는지, 마을에 살고 있는 저마다의 사람들이 서로의 질문을 내어놓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 소위 전문가들이 모여 계몽적인 메시지가 일색이던 여타의 포럼과 다르게, 삶과 밀접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인상 깊었더랬다. 이런 모습도 느티나무 도서관의 한 장면이다. 이 도서관에선 매번 갈 때마다 기존에 봤던 장면과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이번엔 아이가 공간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함께 갔다. 아직 세 살배기 어린아이지만,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자극과 친구들을 찾아다니기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놀기도 하고 책을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는 이 공간에 익숙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간에 익숙해지리라 맘먹고 갔던 터라, 공간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처음으로 외벽에 빼곡히 적혀있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에선 꽤 여러 통로를 통해 도서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간에 들어가서 오른쪽에 보면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그네가 있는데 그네 뒤편 벽에도, 이 도서관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싶은지,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지 '서비스 헌장'이라는 이름으로 상세하게 적어두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는 사립 공공도서관, 책꽂이 옆에 그네와 다락방도 있는 시끌벅적한 도서관입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넓은 세상을 만나고 경쟁보다 먼저 어울림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책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던 아이들이 놀이터보다 도서관이 좋다 하고, 책과 일상을 나누는 이웃들이 자꾸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서관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겠습니다.
아직 도서관을 모르는 잠재 이용자, 책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도서관의 자료와 만남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열심히 말을 걸겠습니다. - 서비스헌장 중
환대의 공간, 특히 아이들이 만나는 공간 중 아이들을 환대해 주는 곳을 떠올려보면 쉽사리 떠올려지지 않는다. 도서관이지만, 책보다 먼저 환대를 말하는 것이 반가웠다. 이제 이 환대의 공간들을 구석구석 둘러볼 차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서가는 사회를 담는 컬렉션이다. 공간 벽면을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채우고 있지만, 공간 한가운데는 사회를 담는 질문 또는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책들을 배치해두었다.
예를 들어 다양성과 존엄의 섹션을 채우고 있는 주제들은 적어보면 이렇다.
차별과 낯섦을 넘어, 학대에 제 3자는 없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 나이 듦에 대하여, 정신질환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 우울증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어느 장애인 이야기.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인종차별의 민낯, 데이트 폭력은 사랑싸움이 아니다.
학대, 죽음, 나이 듦, 장애인, 인종, 성별, 데이트 폭력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의 존엄성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큐레이션만으로 생각해볼 주제를 던지고 머물게 하고, 궁금하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친절하게 배치해둔다. 어느새 책을 펼치고 또 다른 질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책뿐만 아니라 참고할 수 있는 논문집, DVD까지 다양한 종류의 정보원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 세션에 야근 대신 뜨개질 영화 DVD가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던져진 질문은 생각해보고, 필요한 정보는 나의 수준에서 닿을 수 있는 것들부터 단계별로 가면 되는 것. 1층에 들어설 때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곳 사이사이에 앉아 그림책, 만화책을 포함하여 뭐든 읽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 머물며 무슨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계단으로 올라가다 보면 계단 아래쪽에 만들어놓은 다락방. 계단 밑 공간을 이용하여 만든 곳인데, 항상 인기가 많다. 제일 사랑스러운 공간이기도. 토요일 낮이었는데 4~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휴대폰 충전도 하며(^^) 만화책을 읽고 눕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그 연령대의 남자아이들을 도서관에 신발 벗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달까.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다시 보니 사회적 컬렉션 코드번호는 위에서도 볼 수 있게 표기해두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꽤 많은 책인 벽면에 꼳혀있었고(사회적 컬렉션 보느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중간중간 그냥 의자가 아니라 넓은 테이블을 둔 것도 인상적이다.
2층엔, 문학책들 시리즈물, 그리고 DVD, 점자책이 있다. 그리고 문학작품을 즐길 수 있는 넓은 마루 + 원두막도 있다. 원두막은 혼자 또는 몇 명만 조용히 혼자만의 소설 타임을 즐길 수도 있으면서 일층이 다 내려다보이는 뷰를 자랑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느티나무에서 다락방만큼 매력적인 공간이다.
2층 안내 사이니지를 보니 새삼 이 사이니지가 직관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위치 설명보다도 찾아가기 쉽게 되어있고, 어떤 책들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2층엔 특별한 공간이 숨어있다. 작당 모의하는 곳.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하는 곳으로도 쓰였던 이 곳은, 창문 밖으로 완연한 가을을 볼 수 있으면서도, 소규모로 모여 어떤 작당이든 가 가능한 곳으로 꾸며놓았다. 아늑한 공간에 아이들, 어른들의 흔적이 가득한 벽에 둘러싸인 곳을 잠깐 들어가 보니, 밖의 도서관과는 단절된 느낌도 든다. 이렇듯 도서관은 항상 오픈되어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만한, 혹은 몇 명 모여서 그들끼리 뭐든 할 수 있을만한 곳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이번엔 도서관 구석 쪽에 연결되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았다. 계단실 벽면에도 서가처럼, 이야기가 가득한데 도서관에서 추진해온 마을 포럼 등의 이야기 소식들을 알리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서관 사서들이 읽는 책을 소개해둔 곳. 도서관 사서들은 어떤 책을 읽을지 항상 궁금하곤 했는데 왜 이런 책을 읽었는지 사소한 언어로, 소개해두었다. 책을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도서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잘 이용하지 않는 3층으로 인도하는 질문들을 만난다. 3층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3층엔, 기존에 독서회를 하면서 그 독서회에서 읽었던 책들의 컬렉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물음표와 쉼표라는, 누구든 대여해서 쓸 수 있는 작당모의 방보다는 3배 정도 큰 넓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3층은 텃밭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겨울이 되어 가는 중이라 식물들이 다 말라있어서 아쉬웠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냥 텃밭이 있는 게 아니라, 그 텃밭을 키우기 위한 책들이 함께 꼳혀있었다는것. 일상에서 맞닿드리는 질문이 있을 때, 도서관이 해주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 같았다.
텃밭 연습장으로 빠져나가면 도서관 밖으로 연결된다. 신기하게 이 도서관은 여러 개의 입구를 두고 3층으로 먼저 오거나 지하 1층으로 먼저 들어올 수 있게 해 두었다. 도서관 이용자들을 믿고,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다양하게 해 두는 것. 또 한 번 열린 공간의 의미를 여러 개의 입구를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었다.
지하는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할 만한 그림책들이 있는 곳이었고, 더 어린아이들도 편히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마루와 소파 등이 있다.
꽤 많은 시간을 지하 1층에서 보냈는데, 아이는 그림책이 있는 서가를 오가는 것을 좋아했고,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 형태 자체를 흥미로워했다. 그리고는 마루 한쪽에 있던 장난감에 눈길을 두었다(역시^^;;). 그림책 서가에는 국내, 해외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이 큐레이션 되어 있다. 꽤나 많은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은 옆 테이블에 앉아 그림책을 본다.
아랫마당으로 나가보면 계단부터 이어지는 미끄럼틀이 있다. 아이는 계단을 몇 번씩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미끄럼틀 타는 걸 좋아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다가 나가서 놀기도 하고, 간식을 먹기도 하고, 다시 들어와 책을 읽기도 하고, 마루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림책을 보기도 한다. 지하 1층에 있으면 책만 읽어도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순 없어서 좋았달까. 아이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다.
서비스헌장에 보면 '음식물 반입금지나 정숙 같은 규칙을 내걸진 않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특히 지하 1층 공간에 해당되는 내용일 것 같은데, 이용자들은 식사 대용은 간식을 먹일 땐 조용히 아랫마당으로 나가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들어왔다. 적당한 소음은 있지만, 서로를 배려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앉아 있으면서 시끄럽다고 느끼거나 혹은 너무 적막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적당히 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이었달까. 일반적인 규칙 대신 자발적인 존중과 배려를 규칙으로 삼겠다는 말을 읽고 나니, 이 부분에 대한 규칙을 지키고 있었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신난 표정으로 도서관 지하공간으로 들어올 때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여타 도서관에선 보기 힘든 모습이었던 것 같아서.
느티나무도서관은 행정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이 아닌,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따라서 후원금이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꼭 필요한 공간이다. 이런 실정을 이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쉽게 후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이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이용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느티나무 도서관은 후원 홍보도 잘해두었는데,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벽면에, 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되는 곳인지 명확히 알리고, 후원자들의 이름을 붙여두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옆에 붙어있던 질문과 답변이었다. 소액의 후원에 거리낌 없도록 느티나무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두었는데, 포스트잇으로 사람들이 의견을 붙여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후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누고 내가 잘 이용하는 도서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보태는 마음. 도서관은 후원금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아 유지되는구나 생각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한 식구 회원으로 가족 모두 한 번에 회원이 될 수 있다. 몇 번 왔지만 회원카드를 만든 것은 처음이었는데 3살 배기 소울이에게도 회원카드를 건네주었다. 회원권을 받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었지만, 3개를 각각 받고 나니 내 회원권으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소울이는 소울이가 읽고 싶은 책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울이는 소울이의 몫을 이곳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지금은 아랫마당을 제일 좋아하지만 어느 날 원두막에 앉아 소설을 읽고 있던 학생처럼 곳곳을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받아 든 느티나무 소개자료는 접지로 되어 있는 A4. 공간 소개, 공간 이용 규칙부터 제공하고 있는 편의시설,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고 작은 독서회 낭독회, 이야기 극장 안내, 그리고 가장 중요한 후원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말 이 한 장짜리면 느티나무 도서관에 대해서 90%는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크게 인쇄를 화려하게 하지도 않고, 한 장 짜리 A4로 출력 가능하게 만들어, 정보가 바뀌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버전으로 만들었다. 현재의 자료는 몇 월 며칠에 업데이트된 것인지도 적혀있다. 그 부분도 좋았다. 낭독회의 책이 바뀌어도, 어떤 정책적인 변화가 생겨도 쉽게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 이런 시스템이 이용자와 함께 최선을 다해 공간을 유연하게 운영해가면서도, 철학을 지켜나가는 공간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으로는 느티나무 도서관 공간을 구석구석 이용해 보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 숨어있는 따듯하고 섬세한 공간들이 많을 텐데 글에 다 담지 못해서 아쉽다. 대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바란다. 서비스헌장으로 명시해 둔 것을 최선을 다해 지키며 운영하고 계신 분들. 이런 분들 덕분에 아이들이, 우리 모두가 열린 공간을 누리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를 조금은 편안하고 쉽게 접한다. 느티나무도서관 같은 곳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 느티나무도서관 찾아가기
휴관일: 매주 월요일, 목요일 / 법정공휴일
운영시간: 화, 수, 금, 토: 10시-22시 / 일: 13시-18시
전화: 031-262-3494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풍로 116번 길 22
홈페이지: http://www.neutinamu.org/
이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도서관 관장님의 책 '꿈꿀 권리' 감상글,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감상글, 서울숲 놀이터, 북서울 꿈의 숲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지난 4년간 어린이를 위한 열린 공공 공간과 놀이 환경에 투자해 온 C Program이 엄선한 정보를 놓치지 마세요. 이번 주 목요일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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