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we see] 어린이 + 책 + 미술관
[Place we see]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가) 본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미팅, 출장으로 가보았거나 호기심에 이끌려 주말에 슬쩍 찾아갔거나,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다양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한 문장으로 미리 보기
그림책을 작품으로, 읽을거리로, 작업의 재료로, 일상 속 호기심을 탐구하는 소재로 만날 수 있는 공간
그림책을 수집하기 시작한 지 약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림책을 사려고 일부러 그림책 서점을 들립니다. 누군가 여행 기념으로 냉장고 자석을 모으듯 저는 그 나라 언어의 그림책을 삽니다.
제가 그림책을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글을 읽지 않아도 내용이 이해가 되는가 (그래서 지금 책꽂이엔 포르투갈어, 일본어 등 온갖 언어의 책이 꽂혀있죠), 둘째는 세상과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겐 새롭지만, 어른이 된 저에겐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쉽게 잊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인가를 봅니다. 예를 들어, [Hug Machine] 동화책을 보다가 엄마의 사랑을 새삼 느끼고, [I like myself] 동화책을 보다가 제 자신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 [Strictly No Elephants] 동화책을 보다가 차별 없이 다 같이 어울리는 열린 마음을 깨닫죠. 이처럼 그림책은 그림과 간결한 글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내 주변,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한 어린이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림책을 중심에 둔 기획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 무려 6천여 권의 국내외 그림책까지. 예술과 문학의 조화, 그림과 글의 만남, "아트와 스토리를 통해 꿈을 키우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이 어떻게 전시에, 공간에, 책장에 녹아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냉큼 찾아갔습니다.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스토리에 담긴 의미와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다양하고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습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관장 노정민 (출처: 현대어린이책미술관 홈페이지)
저희가 갔을 때는 타라의 손 Tara's Great Hands (~10/28)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인도의 남쪽 첸나이 지역에 기반을 둔 '타라북스' 출판사의 그림책과 실험적인 예술 작업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림책 자체의 독특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책의 한 장 한 장을 작품처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페이지를 따로 떼어내어 액자에 걸어두니, 시각적 아름다움이 더욱 배가되어 신선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그림책 중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액자로 걸어두고 싶단 영감을 받을 정도로요. 그리고 인도 각 지역에서 전해지던 신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이해를 돕고자 인도의 일상에 대해서도 함께 전시한 부분이 세심하게 느껴졌습니다.
타라북스 책 자체의 아름다움은 특히, 예술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실험적인 출판 기법에 기인합니다. 손으로 한 겹씩 색을 찍어 완성하는 실크 스크린(Silk Screen) 판화 기법이나, 아코디언처럼 종이를 접어 만드는 스크롤(Scroll) 형식의 책들을 보면 책의 예술적 가치가 내용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책을 단순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예술가가 되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크고 작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각적 호기심을 손작업으로 이어가 스스로 새롭게 탐구해볼 수 있는 이런 공간들 덕분에 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는 것을 더욱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전시도 전시지만, 제가 가장 좋았던 장소는 열린 서재였습니다. 6천여 권을 그림책 속 주제를 분석해서 나온 75개의 키워드로 분류해놓은 공간이었는데요. 키워드를 타겟 독자인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직접 책을 고를 때 참고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분류해놓은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예를 들어 콜라주를 조각조각 이야기로, 워터컬러를 물먹은 이야기로 표현한 것처럼요. 뿐만 아니라, 사고력, 호기심, 미래, 꿈, 용기, 말썽 등 진지한 주제들도 있어서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 즐겁게 책을 집어 들 수 있는 균형 잡힌 서재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열린 서재에서 궁금한 키워드의 책을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키워드와 내용이 어떻게 잘 맞는지 글로 써 보고 (MOKA 키워드 전파 어워드),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추천하는 글을 써볼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참여한 글들을 전시해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도록 신경 쓰고 있었죠.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아이들이 그림과 글을 통해 본인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레 글로 남기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책미술관에 걸맞게, 별도로 등록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Little Writer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나의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창작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동안 참여했던 어린이들이 만든 그림책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머리를 탁 치는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많았죠. 열린 서재에 전시된 책에선 보지 못했던 독특한 스토리와 그림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권 한 권 읽어보았습니다. 본인이 만든 책이 하드커버로 제작되고, 전시까지 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제 버킷리스트에도 그림책 만들기가 있어서인지 정말 부러웠습니다.)
전시와 체험 공간도 충분히 좋았지만, 책을 읽다가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을 배려한 듯한 야외 아틀리에, 전시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픈 아이들을 위한 실내 아틀리에 공간이 함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화장실까지도 역시 아이들의 눈높이와 키에 맞추는 세심함을 잊지 않았고요. 공간 구석구석에서 아이들을 생각한 마음이 느껴져, 어린이를 위한 좋은 공간을 기획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어린이에겐 그림책이 시각을 즐겁게 하는 작품이 되고, 새로운 작업과 체험의 영감이 되고, 일상 속 호기심을 탐구하는 매개체가 되는 공간입니다. 글을 아는 누군가가 읽어줄 필요 없이, 아이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스스로 골라 그림을 통해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세상을 해석해볼 수 있는 공간이지요. 어른들에겐 평소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고, 잠시 잊고 있었던 약간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만 해도 충분히 가볼만한 공간이 아닐까요?
+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찾아가기
신분당선 판교역 3번 출구로 나와서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서울숲놀이터, 북서울 꿈의숲,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박 2일 캠프 등 아이와 함께 가보면 좋을 공간이나 읽어보면 좋을 흥미로운 콘텐츠가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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