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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Nov 16. 2021

목격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어제와 같은 길로 돌아오면서 나무들에 이파리가 어제보다 적어진 것을 보았다. 어떤 나무는 마지막 이파리 하나만이 매달려 그것조차 바람결에 여리게 뒤척였다.

나무 하나하나의 이파리들을 살펴보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같은 길에 서서 같은 볕이 들고 같은 바람을 맞아도 나무들이 아직 부여잡은 이파리 수는 전부 다르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눈앞에서 또 몇 개의 이파리가 낙하한다. 낙엽이 된다.

가을이 도리 없이 쓸쓸한 것은 사방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가을은 바래고 익어가고 싸늘해지고 고요해지고 어두워진다. 봄이 빛나고 돋아나고 물들고 채워지는 것과 다르다. 사람도 자연이라서, 봄의 사람과 가을의 사람은 한 몸으로도 다르게 살아간다. 봄의 나무와 가을의 나무가 그러는 것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도로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게으름도, 뜨거운 물을 끓이며 괜히 시집을 들추는 느린 몸짓도, 괜히 멍해지고 쓸쓸해지는 청승도 다 가을 사람이라서 하는 짓이다.

가을 사람이니까 그래도 된다. 가을 옷을 입을 때 우리는 기분과 태도도 바꿔 입는다.


수십 번째의 가을에 나는 처음으로 떨어지는 이파리들을 보았고, 나머지 이파리도 며칠 사이에 모두 떨구고 말 나무의 메마른 몸을 보았고, 그것 때문에 한동안 멈추어 있어야 했다. 나무는 할 일을 하고 나 혼자만 애처롭다. 나무는 해온 것처럼 겨울을 위해 몸을 사리고 곧 봄을 준비하겠지만 나 혼자만 봄을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군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여름에 무심하게 지나가고도 여태 마음에 남아있는 문장 하나를 찾았다.


'이파리가 나무에서 멀어지는 일을 가을이라고 부른다.'


나는 오늘 가을을 처음으로 본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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