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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심 Oct 24. 2020

가족이니까 이해, 가족이니까 아픈 말 하지 마.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가족이니까 아픈 말을 더 조심해야 하고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바꿔야 된다. 가족은 오히려 더 예의를 지켜서 말해야 한다. 가족이니까 직언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심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가족한테 말로 상처 받으면 그 상처는 더 깊어질 확률이 높다. 남한테 심한 말을 들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은 한 지붕에서 같이 살기 때문에 사과를 제때 하지 않으면 상처가 깊게 박힌다. 가족끼리 대화할 때 가족이 당신의 말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서로 각자 방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집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본다. 가족끼리 모여 있는 거실은 정적이 흐른다. 가족은 모두 집안에 있는데 서로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대화가 없다.  

  

  가족끼리 대화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렵게 되어 버렸다. 아이들 어릴 때는 아이와의 대화를 이해를 못 해서 대화가 힘들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대화가 부족해 서 이해할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요즘은 가족이 다 모여서 저녁식사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예전 어른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는데 지금은 밥상머리 교육을 꿈도 못 꾸는 세상이다. 요즘 가정에서의 생활을 보면 예전 하고는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퇴근하시는 시간에 식구들이 고생하셨다고 인사로 맞이했다. 지금은 퇴근한 부모가 아이방을 가서 인사한다.     

준혁: ‘아빠 왔어’, (정적만 흐른다. 아이들 방문을 열었다. 이어폰 끼고 있다. 이어폰을 뺀다)

아들: ‘아.(힘없이) 다녀오셨어요?’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는다.

준혁: ‘(다시 이어폰을 뺀다) 아들 오늘 어떻게 지냈어, 요즘 온라인이라 공부하기 힘들지.'

아들: '(귀찮은 듯) 어차피 출석체크만 하고 다시 자요'

준혁: '코로나 때문에 학교는 못 가지만 수업은 들어야 되지 않니?'

아들: '(건성으로 대답한다) 아, 네'    


 자녀들과 대화는 고사하고 대화중에 반응 안 하는 자녀에게 육두문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가 대화를 하고 싶어도 시간 약속을 해야 되는 시대이다. 예전처럼 아이들하고 여행 한번 갈려면 약속 잡기가 너무 힘이 든다. 준혁 씨는 아이들과 억지로라도 대화하고 싶다. 대화를 하자고 아이들에게 하면 아이들은 반발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런 마음으로 대화가 이어져도 고운 말로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소한 대화조차도 부모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눈도 맞추지 않고 무성의하게 ‘왜, 또, 잔소리를 하시지’ 하는 눈빛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한다. “우리 가족은 소중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산다”라고 한다. 이런 마음의 부모는 자녀들의 반응도 없고 인정도 못 받는 거 같아서 더 힘들다. 하지만 가족이 무관심하게 된 게 가족만의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 부모님과 대화하기 싫은 ‘ 질풍노도’ 사춘기 자녀의 행동에 대해 못마땅한 반응을 보인적은 없는지 생각하자. 아이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집안의 분위기를 오픈마인드로 하고 있었는지 생각하자. 아이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그것도 고민이라고 그러고 있니’,‘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게 하는데 뭐가 문제야’ 이렇게 하면 아이는 어떨까. 자신의 고민을 다음에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한다.  


경옥: ‘딸 아까 학교에서 난 너무 반가워서 그랬는데. 엄마 안 반가웠어

딸: ‘엄마 학교 안 와도 되는데, 왜 왔어?.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안 와도 된다고.

경옥: ‘응? 담임선생님도 뵙고 인사드리고 학부모 총회도 참석할 겸 갔는데, 왜?.

딸: ‘친구들이 엄마 할머니 같다고 해서.. 엄마 학교 오려면 좀 꾸미고 와’.

경옥: '딸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엄마가 창피하니, 응, 넌 왜 그렇게 못됐니'.

딸: '엄마가 너무 안 꾸미잖아, 친구 OO엄마는 얼마나 이쁜데'.    


 가족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주부들은 몸이 얼마나 망가져 가는지도 모르고 산다. 물론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자기 관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집안 살림이란 게 끝이 없다 보니 항상 긴장상태의 근무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엄마가 되면 삶에서 가족이 제일 중요해져서 본인이 희생을 한다. 그런 희생을 가족이 무시하고 모른 체 하면 상처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이 스트레스를 주면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균형 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갈등이 깊어진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삶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무기력해져 버린다.  


부인: ‘여보 이번 주말에 친정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당신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남편: ‘으응 그렇게 해, 근데 언제 간다는 거지(텔레비전 야구중계를 보면서 대답한다)'

부인: ‘여보, 내가 한 말 듣는 거야, 분명히 이번 주말에 간다고 말했는데'

남편: ‘응, 이번 주말에 간다고 말한 거야, 어디 간다는 거지, 뭐라고 말한 거야?

부인: ‘텔레비전 소리 좀 줄이고, 이번 주말에 친정 갔다 오기로 했는데, 당신 같이 갈 거지.'   

 

 내가 말한 내용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될 때는 반복해서 말하자.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 시차를 둔 반복)을 활용해 보자. 간격 반복은 반복해서 말해야 할 때, 시간 간격을 두는 기법이며 벼락치기라고 한다. 상대가 그 말에 수긍을 했을 때는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거나, 못 알아들었다고 말할 때 다시 이야기하면 된다. 집안에서 아내 가남 편의 못된 언행을 참으면서 받아준다. 남편의 못된 말을 참아주면 집안의 평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아주는 부인의 맘은 속이 아파서 나중에는 ‘화병’이라는 병이 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족을 위해서 안 좋은 것을 참아주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까운 가족에 의견을 함부로 판단하면서 경청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편하다고 그리고 눈빛만 봐도 아는 가족이라고 하면서 경청을 안 한다. 가족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많이 노력해야 된다. 가족이라고 함부로 평가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게 된다.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존중하는 자세를 잃어버린다. 때론 외모 비하 발언을 하다가 자매끼리 싸우기도 한다. 결국 대화다운 대화가 아닌 서로 고성이 오가다 대화 단절이 되어버린다.   

   

언니: ‘박소희, 너 내 옷 입고 갔지. 네가 입으면 옷이 다 터진단 말이야, 뚱땡이 돼지 같은 게'

소희: ‘이 씨 내가 언제 옷을 터지게 입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너는 뭐 날씬하냐'

언니: ‘그리고 너 내 옷 입어도 하나도 안 예쁘거든. ’ 무‘에다가 치마 걸친 느낌 이야'

소희: ‘너는 이쁜 줄 알지. 넌 바지 입으면 몸빼 바지 입은 사람같이 보이거든'

언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너 자꾸 언니한테 반말하고 지랄이야, 진짜 이게 죽을래'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세상 친절하게 대하면서 상처 주는 언어는 가족에게 많이 사용한다. 가족이 아프면 내가 더 아프다는 걸 생각하고 자신만큼 가족에게 좋은 말을 하도록 하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학연, 지연을 따지다가 같은 지연이면 바로 ‘동생’ 하면서 동의 없이 반말을 한다. 순간 어이없는 기분이 들지만 좋은 뜻이겠거니 하면서 그냥 인정한다.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 우리가 식당에 가면 ‘이모’,‘삼촌’ 하고 말하는 순간 가족 같은 기분이 들어서 편하게 대해 버린다.    


 만나는 사람을 가족화 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편하게 한다고 호칭을 정한다. 호칭을 편하게 부르고 상처 주는 말도 편하게 하게 된다. 상대의 생각은 존중하지 않고 호칭을 본인이 편한 대로 부른다. 호칭 부르는 것을 불편해하면 상대는 호의를 거부하는 이해심이 없는 속이 좁은 사람이 된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호칭을 부르기 전에 상대의 동의를 구해야 된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중에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당신에게 깊이 있는 마음을 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이해하자. 가까운 사이임에도 더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족 간에도 ‘무소통’으로 지내는 가족이 있고 웃자고 하는 말 중에 ‘가족끼리 왜 이래’라는 말을 한다. 그냥 이해하라는 뉘앙스의 말이다.    


  가족은 오히려 더 예의를 지켜서 말해야 한다. 가족에게 힘을 주고 싶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해야 될까. 문제에 바로 뛰어들기 전에 가족 모두 모여서 생각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트레이 파커는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라고 한다. 가족 간의 대화를 할 때도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 가족 간에 희망을 주고 존중해주는 좋은 대화법을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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