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한국어 학급에 대하여
가끔 졸업한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초등학생 때는 맑기만 했는데 중학생이 되니 푸릇푸릇함까지 더해진 모습이다. 다시 안 올 푸릇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나름의 고민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이성 친구를 처음 만나 친구 이상의 관계를 알아가고 있는 아이, 갑자기 다가온 학업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큰 갈림길에 있는 아이... 그 시절을 한참을 지나온 나로선 고민 자체가 소중하고 기특하다. 하지만, 고민은 항상 상대적이어서 아이들에게는 큰 듯하다.
우리 한국어 학급 아이들의 고민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많은 청소년이 가지고 있을 평범한 고민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고민은 일반적이지 않을 것 같다. 다문화 아이들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곧 특별한 고민이 생길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이주 배경 인구로서 한국 사회와 한국 학교 속에서 살아가면서 아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계속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일반적인 고민과는 무게부터 다르다.
아직은 푸릇한 고민을 안고 지내는 졸업생들을 보면서 앞으로 겪을 그 무거운 고민 걱정되었다. 그러던 중 KBS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10년 후 동창회(KBS 스페셜 2019.08.29.)’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2009년이다. 2009년에 KBS는 부산의 다문화 대안학교인 ‘아시아 공동체 학교’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9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세 친구의 현재 모습을 다시 담았다. 다문화 가정 학생으로 자라 성인이 되어 사회 속에 나선 그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아직 겪지 못하고 듣지 못해 생겼던 불안도 많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1 오랜 고민
2009년 ‘아시아 공동체 학교’의 존재는 놀라웠다. 요즘이야 사람들이 다문화 교육에 대해 관심도 많고 관련 내용이 이슈 되지만 그 당시는 다문화 교육이 생소하고 필요성도 못 느낄 때인데 다문화 가정 학생만을 위한 교육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었다는 점이 존경스러웠다. (검색해 보니 2005년에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2006년 9월 10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다문화 교육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면 시작하신 분들은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영상 속에서도 선생님들이 고민을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은 흘러 2021년이 되었다. 하지만 세월만 흘렀지, 선생님의 고민은 흘러가지 못했다. 2009년 그 선생님들의 고민은 2021년 나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여러 문화 사이에 껴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이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학습 부진 등으로 떨어진 자녀의 자존감이 이주 배경 부모의 자존감까지 떨어지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민이었다.
2021년 한국어 학급 교사인 나 역시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아이들이 학교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지내지만, 온전히 홀로 사회에 던져졌을 때 겪을 미래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사이 사회가 많이 변해 인식이나 대우가 좋아졌지만, 아직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어 학급에서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춰 교육하고 있지만, 항상 아이들의 학습이 걱정이다. 살기 위한 의사소통 한국어와 학습을 위한 한국어는 양과 질에서 천지 차이다. 아이들이 학교 교육과정을 잘 따라갈 수 있게 하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잡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상 엄청난 차이의 두 가지를 한 교실에서 동시에 익히기 어렵다. 대다수의 다문화 가정 학생이 학습 부진인 이유다. 더욱이 시간이 지나면서 학습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된다.
#2 같은 학교 다른 미래
다큐멘터리에는 세 친구가 등장한다. 정민(가명), 민주(가명) 지연(가명), 이 세 친구는 모두 2009년 ‘아시아 공동체 학교’를 다녔지만 10년이 지난 후 모습은 많이 달랐다.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면서 거친 자갈 같은 생활을 하던 정민은 현역 군인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다. 정민은 군대를 기회이면서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군대가 주는 의미는 크다. 한국인의 의무이기도 하고 ‘한국 남자=군대’라는 인식이 크기에 군대는 큰 의미가 있다. 군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인의 입장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다. 계급이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그만큼 한국인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한국 사회에 스며드는 듯하다.
학교생활에 힘겹게 적응하던 들꽃 같던 민주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회인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민주는 2009년 후 가족의 권유로 일반 학교으로 진학을 했는데 학교생활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친구 관계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숨으려고 도망치려고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시아 공동체 학교에서 ‘나만 이렇게 혼자가 아니구나’ 소속감을 경험하다 일반 학교에서의 시선과 소외감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감정의 골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도 힘든 시기을 보내고 사회인으로서 한 걸음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모습이었다.
학교를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온 바람 같던 지연은 앞선 두 친구와 달리 한국에 없다. 외국인 가정의 자녀였던 지연은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지내다 비자 만료로 강제로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시 한국에 올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니 외모는 달라도 속은 한국인과 마찬가지였는데 갑자기 본국으로 가게 되어 본국 언어부터 문화까지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쫓겨났지만, 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물어본 사람이 없어서 서운하다. 한 번이라도 물어봐 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지연의 말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국적법과 출입국관리법 등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있어 쉽지 않은 문제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세 친구의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펼쳐질 미래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겠지만, 아이들 모두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의 누구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온전히 아이가 중립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과 평가가 들어가면 안 된다. 결과 역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없다. 함부로 평가할 수도 없다. 다만 고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왔던 한마디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지금 쌉쌀한 초콜릿을 골랐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상자 안에는 아직 달콤한 초콜릿이 남아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