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수업이 지루한가 보다. 아까부터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온몸으로 ‘공부하기 싫어요!’를 외치더니 결국 치트키가 나온다. 마침, 내 뱃속에서도 꼬르륵 소리도 나기도 했고 수업도 5분밖에 안 남았으니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맛있는 게 나오려나?
오늘은 현미 찹쌀밥, 쇠고기 뭇국, 채소 계란말이, 배추김치, 미니 피자, 유기농 식혜가 나오네요.
칠판에 식단을 정성스레 적었다. 말로만 불러줘도 되지만 식단을 굳이 일일이 적는 것은 내가 비록 너희들 속셈에 넘어가 수업과 상관없는 얘기를 하지만 이것도 공부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수업을 해야 한다는 의무와 쉬고 싶은 마음 사이의 타협점인 셈이다.
-쇠고기는 무슨 고기예요?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쇠고기라고도 해요, 여기 채소는 야채인 거 알지요?
-아~ 그럼 오늘 돼지고기는 안 나와요?
-음 어디 다시 보자
다시 식단표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니라 숫자를 찾아본다. 요새 학교 식단표에는 음식 옆에 숫자들이 적혀있다. 이 숫자는 알레르기 성분 표시로 어떤 재료를 썼는지 대략 알 수 있다. 돼지고기는 10번이다.
-없는 것 같은데... 아?! 미니 피자에 돼지고기가 있어요
-네 알겠어요
미니 피자 옆에 있는 여러 숫자 가운데 10이 있다. 이 아이가 돼지고기를 꼭 찍어 물어본 것은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학교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겠지만 다문화 학생이 많은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식단 체크가 흔하다.
아이들의 영양과 성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급식에 육류가 아무래도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음식에 돼지고기가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 줄 몰랐다. 이번 급식은 미니 피자 한 메뉴만 돼지고기가 들어갔지만 어떨 때는 돼지고기 육수로 낸 국이나 찌개, 돼지고기로 만든 반찬, 돼지고기가 들어간 크로켓 같은 빵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날, 무슬림 학생들은 밥이랑 김치만 먹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학교 급식실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 학생들을 위한 반찬을 챙겨준다. 원래는 알레르기 대체 반찬으로 제공하는 김이지만 무슬림 학생의 편의를 위해서도 제공한다.
최근 한국에 무슬림 다문화 학생들 수가 많아져서 비슷한 이슈들이 종종 생긴다. 2019년에 ‘광주 이슬람 출신 일부 초등생, 할랄식품 없어 점심 걸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제목이 자극적이다. 한편에서 보면 학교에서 학생의 생존권을 무시한 끔찍한 인권 유린 현장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한국 학교 시스템을 이방인인 무슬림들이 금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떠한 편에서 보던 분명한 사실은 무슬림 학생이 현재 한국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위해 이슬람 음식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3가지를 알아야 한다.
할랄(Halal)과 하람(Haram), 다비하(Dhabihah)
네이버 두산백과에 따르면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맞는 것으로 ‘허용된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음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말, 옷차림, 재화의 생산과 유통 등 모든 영역에 해당한다. 허용되는 음식은 ‘할랄 음식’로 통칭한다. 곡물, 야채, 해산물, 염소·양·소·닭고기 등이 있다.
그런데 모든 염소·양·소·닭고기가 할랄 음식인 것은 아니다.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고기만 허용한다. 이런 이슬람식 도축법을 다 비하(Dhabihah)라고 한다. 무슬림이 도축해야 하거나 도축 전 기도를 해야 하는 등 도축의 순서와 방식이 정해져 있다.
하람은 할랄과 반대로 금기되는 것들이다. 살인, 문신 등의 행동과 돼지고기와 동물의 피, 알코올, 다비하로 도축되지 않은 고기 등이다. 돼지가 하람에 속한 이유는 쿠란에서 금지하기 때문이다. 쿠란에 “알라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만을 경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마라”(2장 172~173절)는 구절이 있다. 왜 하필 돼지만이냐는 이유에는 돼지의 습생이 더러워서, 돼지고기의 기생충 때문에, 돼지고기의 귀함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종교와 신념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보다 우선할 수 없다. 따라서 할랄 음식에도 유연함이 있다. 인지하지 못했을 때나 생명의 위험할 때 등에는 허용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도 동자승의 성장과 영양상태를 위해 육식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
급식과 할랄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학교급식은 친환경 급식이다. 모든 식자재를 한국에서 조달한다. 소고기는 당연히 한우다. 하지만 한우는 할랄이 아니다. 다비하로 준비된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기독교 국가에서 수입한 소고기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슬림 학생들에겐 호주산, 미국산 소고기가 한우보다 훨씬 좋다.) 그렇다면 무슬림 학생들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진다. 광주에서 그런 보도가 나왔던 것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다행히 우리 학교 학생들은 소고기 정도는 먹는다. 하지만 만약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학생이 있다면 급식 문제가 더욱 고민스럽다.
최근 음식 다양성이 중요한 이슈다. 올림픽 때 할랄, 채식 식단을 제공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고 군대에서도 채식 식단을 도입한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도 이런 요구가 있고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영역과 달리 교육 현장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쉽지 않다. 종교와 정치에 절대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학교로서 할랄 음식을 도입하는 것은 특정 종교의 입장에 서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공항과 터미널에 기도실을 만들 때의 쟁점과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결정되는 데는 오랜 시간과 여러 숙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갖고 그 속에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