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회고
원래는 상/하반기로 나누어 쓰는데 상반기 건너뛰었더니 회고가 너무 밀려서 할 말이 많다. 상반기 때 회고를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가장 큰 이벤트인 이사를 못했기 때문!!
가장 큰 변화는 이직과 이사였다. 3월에 판교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고, 9월에 이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1) 새로운 회사에서의 경험
정말 오랜만에 큰 회사로 이직했다. 사실 멋모른 사회 초년생 이후 진짜 제대로 일해본 경험 중 거의 처음. 직전 회사들이 작은 회사라 새로운 경험들이 많았다. 큰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들이 병렬적으로 진행되고(6월에 있는 "과제"가 이것이다), 협업해야 할 사람도 많다. 그리고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다. 나는 백오피스나 서버 구조를 어느 정도 아는 기획자라 생각했는데, 회사 인프라의 거대한 벽 앞에서 겸손해졌다. 겸손해야지.
기획서는 4월에 이미 나왔는데 생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이제야 개발 막바지. 실제 만들어지지 않은 기획서는 협업 시에 얼마나 그 이후에 많이 바뀔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조직개편이라는 것도, 연말평가 프로세스도 모두 신기하고 어렵다. 일에 대한 경험과 생각은 따로 자세히 글로 풀어야겠다:)
2) 집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사
3년 전부터 집을 갖고 싶었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 5월에 집을 구하고, 전셋집 만기에 맞춰 9월에 이사를 왔다. 평촌이라는 곳에 있는 나의 작은 둥지. 전세 퇴거 - 보금자리 대출 - 이사를 한 번에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주인이 퇴거에 협조적이지 않아 힘들었고, 혹 대출이 안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이전에도 밝혔던 것처럼 나는 평생 한 동네에서 살아온 셈이라 동네가 바뀐 것에 대해 정들기까지 오래 걸렸다.
동네를 바꾸는 것에 대한 글은 이미 올렸다. 하지만 매매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글은 탈고는 했지만 언제 맘먹고 올릴지 모르겠다.
3) 건강에 대한 위기감
7-8월, 그리고 12월 오미크론 대유행 때 재택을 하면서 짜증도 늘었다. 안 움직이고 누워있는 게 얼마나 좋지 않은지 느꼈다. 10월에 운동을 했을 땐 정말 좋았는데 그마저도 백신 접종과 맞물려 한 달 정도 쉬었다.
먹는 걸 좋아하게 되어서인지 살이 매우 포동포동하게 쪘는데, 가끔 무릎이 아파온다.
10월엔 사내 상담을 잠깐 받았었다. 5회기 정도라 결론이 나기엔 조금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건져 올린 몇 가지 실천사항이 있었다. 상담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나아지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자주 아프면 사람이 짜증이 나는 것 같다. 이제 나만의 컨디션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이젠 진짜 운동해야지.(소얀쓰 3대 허언 중 하나)
4) 자산에 대한 생각
작년에 돈 자체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면, 올해 본격적으로 “자산”에 대한 고민을 처음 시작했다. 올해 남편과 적극적으로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공인인증서 다루는 것도 서툴정도로 원래 금융에 무지했고 잘 몰랐는데 보금자리론 대출 진행과 연금저축펀드는 닥치니 하게 되더라. 앞으로도 투자는 주로 남편이 할듯하고, 나는 세액공제받을 만큼만 진행할 것 같은데, 내년엔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해보고 싶다.
5) 미술에 대한 관심
11월부터 이런저런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립중앙 박물관은 두 번 갔었고, 덕수궁미술관의 박수근 전시와 리움 미술관 기획전, 상설전, 국립 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전을 보았다. 서울에서 이사 나오자마자 이렇게 관심이 생겨서 웃겼고, 여름에 놓쳤던 전시들이 아까워졌다.
나는 고미술을 좋아하고, 현대미술은 조금 낯설어하는데 이번에 한국 근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말연시에 전시 세 개를 가고 싶어서 눈여겨보고 있다.
6) 조금 멈칫한 문장 줍기
현생이 바빠서일까? 문장 줍기는 그만큼 많이 못했다. 발행 빈도수가 격주로 내려갔고, 그마저도 연말 방학을 핑계로 쉬고 있다. 그래도 하반기에 소소하게 다른 업체들과 크리에이터로서 협업할 일이 있었다. 다른 뉴스레터 제작자들과 함께 팟캐스트에 나갔고(xyzorba 클립 듣기) 헤이버니와 인터뷰, 블라인드 북 이벤트를 진행했고, 스티비에서는 뉴스레터 광고를 진행했다. 책 읽아웃에 내 목소리가 나왔을 때 매우 신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충 하고 있나?"라는 경각심을 가졌다.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1) 사내 백일 글쓰기 모임
4분기에 사내에서 진행한 백일 글쓰기 모임을 했다. 록담 님이 진행자였는데, 글을 함께 쓰면서 울고 웃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함께 읽는 게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고, 큰 회사라 그런지 몰랐던 분들을 만나서 회사에 비밀 마니또들이 여러 분 생긴 느낌이다. 여기서 글을 쓰면서 많은 글감을 건지기도 했다.
(함께 진행해서 완주한 분의 인터뷰는 여기. 이 분은 글쓰기 모임 포함 세 개 백일 프로젝트를 완주하셨다(!) 나는 체감상 글은 한 90% 쓴 거 같은데 하도 지각을 많이 해서 환급은 59%..)
시즌 2를 기다리며 올해는 마무리.
2) 일하는 나를 지키는 글쓰기
뉴 그라운드에서 진행한 모임을 참가했다. 생각보다 꽤 감성적인 모임이다. 우리는 함께 두 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마지막 주에는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모임의 진행자인 민정님이 답장을 써 두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 대한 몽글몽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누었던 편지를 몇 번 꺼내볼 것 같고, 일 년 뒤, 이년 뒤의 내가 쓸 편지가 궁금해진다.
3) 사내 독후감 모임
사내 기획자들끼리 독후감 모임을 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기획자들끼리 각자 책을 골라 읽고 자신의 소감을 나눈다. 그로스 해킹(양승화 저), 일하는 마음(제현주 저), 서비스 기획 스쿨(도그냥), 오리지널스를 읽었다. 그러고 보니 오리지널스는 책 못 읽고 갔는데, 독후감 쓰러 가야겠다.
4) 회고준비러
IT 여성 소모임에서 연말 회고를 준비했고, 회사 프로젝트 단위 대규모 회고 위원회에도 들어갔다. 프로그램을 함께 정하고 이벤트 시간표를 짜는 과정을 여럿과 함께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벤트 기획자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변수를 최대한 대비해두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유연한 대처를 하겠다고 각오하지 않으면 못하겠다 싶어졌다.
온라인 회고가 대부분이라 고민했는데 대부분 열심히 참여해주셔서 뿌듯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바로 또 하라면 못 하겠고, 1년 뒤에 해야지^_ㅠ)
5)1년째 지속중인 글쓰기 모임!
뉴스레터 제작자분과 함께 글쓰기 모임중이다. 1년이 넘은 모임. 우리는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글을쓰고 보았고, 위에 쓴데로 팟캐스트에도 중간에 나갔던 적이 있다.
아무튼 시리즈 중 가장 좋았던 책. 뉴스레터 특집호도 만들 정도로 좋았다.
고등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 고수리(3월)
읽으면서 눈물 콧물 흘렸던 책.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어떤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반성을 했다. 만듦새와 디테일에 대한 생각도.
1)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상을 마주했던 순간
-한동안 전시를 못 봤는데, 처음으로 3층에서 유물을 보았을 때 참 좋았다. 3층 금속 미술관 개인적으로 추천
2) 9월 23일 방문했던 과천 저수지
-직전 글에도 썼는데 아무도 없는 저수지가 참 평화로웠다.
3) 3월에 갔던 정동진 바다부채길
-입사 직전에 갔었던 바닷길. 호쾌한 파도소리가 생각난다.
4) 후암동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
-종종 추천하는 곳. 환대받는 느낌이 이런 곳인가 싶다. 세 번 정도만 들렀는데 또 가고 싶다.
-내 돈으로 붉은 고기 덩어리 덜 사 먹기(X)
망했다.
-일에 흠뻑 빠지기, 업무에서 기록하기(X)
업무에서 기록하지 못했다. 가끔 노션을 써서 기록했는데 그 기간의 교훈이 남지 않았다.
-함께할 수 있는 일들 고민하기(O)
거의 못 지킬 뻔했다가 모임에서 두 건의 회고를 진행했다. 함께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디딤씨앗 통장을 알아봐야겠다.
-연금저축펀드 들기(O)
이것도 4분기에 겨우 정신 차리고 진행했다.
더 열심히 운동하고, 글 쓰고, 일하고 싶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가장 소중히 생각하기.
1) 운동과 제발 친해지고 싶다
운동과 친해지지 못한 건 영원한 나의 숙제다. 남편이 나에게 하는 잔소리는, 여덟 시간 앉아있는 사람은 1시간은 무조건 걸어야 한단다. 주 3일은 운동하러 가고 싶다.
2) 글에 진심이 되고 싶다
진짜 딱 6개월만 열심히 다시 주간으로 문장 줍기를 쓰고 싶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올리고 싶다. 구성에 대한 고민은 다음에. 한 달에 한 번씩 쓰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이 원고로 작게라도 책으로 엮고 싶다.
3) 일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일에 대한 갈증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푸는 것 같은데, 일단은 회사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조금 더 늦게 손을 들어 아쉬웠던 프로젝트들도 있는데 이번엔 손을 열심히 들어봐야지.
아래는 사모임 회고에서 썼던 글이다. 이 부분의 내용이 위의 회고가 되어주었다.
올해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파란 하늘, 산책, 글쓰기, 귀여운 댕댕이(@puding_diary > 지인의 지인이 맡는 유기견 임보 인스타), 미술관에서 멍 때렸던 시간
올해 새롭게 도전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이직했고, 큰 회사에서 기획자로서 일해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100일간 글쓰기를 해보았답니다! 100% 성공하진 않았지만 쓱쓱 쓸 수 있었어요. 퇴고는 어나더 레벨..
올해 아쉬웠던 일과 거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나요?
운동을 많이 못했고, 마음관리가 안 되었어요. 퇴근했지만 마음도 퇴근하지 못했던 날들이 많아요. 실제로 일은 잘 못하는데 퇴근이 안 되는 나를 보면서 일에서 퇴근한 나도 아껴주고 싶었어요. 프로젝트의 진척도에 따라 일희일비했는데 어떻게 일희일비 안 할 수 있나 싶네요? 이건 좀
올해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내 집 마련이요. 금융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약했는데, 하면 되고 하는 정신으로 보금자리 대출-전세 퇴거-이사를 한 번에 해냈고, 연금저축펀드를 해냈어요. 어려웠지만 그 과정을 이겨낸 저를 칭찬해봅니다.
올해 나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한 일이 있나요?
1) 업계에 환멸을 느낄 일들을 볼 때요. 모 사의 평가 사건, 모 사의 직원 괴롭힘 사건, 블리자드, 이루다 사건 등등 말이죠.
2) 더 이상 IT 지식을 따라잡거나 아티클 보는 게 설레지 않아요 :( 2년째 권태기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