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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Apr 25. 2024

정말로 큰 부재


나른한 노래를 들어도 소용 없어. 부재가 크잖아. 우리 관계에서 불안한 쪽은 너인데 이 저녁에 기다리는 사람은 나일까 어째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심심한 오후 여섯 시의 다정은 끓는데. 어린애 코피 같은 일몰처럼. 내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 엄마는 저녁 혼자 먹는 내가 안쓰러워 오래 전화를 끌었어. 어디냐는 전화에 거짓말 꽃을 배시시 피우던 너의 가슴에 달린 단추를 똑 따먹는 생각을 해도 배는 고픈데. 너는 달도 해도 닮지 않은 사람. 아니 낮에는 달을 닮고, 밤에는 해를 닮은 사람. 아니 너는 항상 일몰처럼 짧은 황홀. 불량한 발목 드러내고 멍청한 사랑 노래만 부르고 있겠지. 혼자인 노래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짜고 따듯한 눈물을 찍어 먹게 해달라던 목소리의 다정함을 상상도 못하는 기계를 연인 삼아서. 사랑 노래보다 멍청한 기계. 봄날치고 훗훗한 바람에도 너는 감기에 걸려 아플 거야. 습관처럼 붙이는 그 ‘사랑한다면’을 이번 기회에 쓸쓸할 때까지 집요하게 말해 줘. 때가 스민 촉촉한 공기를 어지럽히며……. 물을 가져다 줘, 사랑한다면. 벽에 낙서할 연필을 깎아 줘. 사랑한다면. 예리하지만 섬세한 칼날로 느릿느릿. 날 때부터 영양을 빼앗긴 푸석한 머리칼이 자라도록 방치해 줘. 사랑한다면. 불안한 사람의 미소를 묘사해 줘. 사랑한다면. 잠이 들 때까지 곁에 있어 줘.


사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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