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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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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Sep 14. 2023

습관


 또 밤을 꼴딱 새버린다. 이러다 내가 꼴딱 죽겠다. 지극한 사랑의 속삭임을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을 쓰는 것도 아니고 흐느적흐느적 만족스럽지 않은 문장을 끄적대느라 밤이 다 간다. 두통을 예감하면서 눈을 감고 두통을 직감하면서 눈을 뜬다. 나에게 아침은 없다. 밤의 옷이 다 하얗게 해져버려서 아침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진짜 아침이라곤 못한다. 진짜 아침은 맑은 정신이 새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두통이 없는 그런 시간이다. 두통이 없는 아침이 없어서 나는 좀 풀이 죽는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물이 비어져 나온다. 이 어리석은 눈물이야말로 어리석은 밤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인 것이다. 나는 조금 운다. 두통과 과로와 고집이 버무려진 하루는 열과 정으로 굴러가는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때때로 정열이 교묘히 새어나가고 없다. 고집은 남아 잠을 못 잔다. 피로해서 눈물이 비어져 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정말 이 끊을 수 없는 밤샘의 고리를 끊고 정상적 수면시간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내가 밤을 새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보라면 스무 가지가 넘는데 그중 나의 규칙적 일상과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을 완벽히 이길 수 있는 이유는.....그런 것은


 나도 모른다. 열정이 채찍질하는 기쁜 밤만큼 흐느적흐느적 펜을 꾸물거리는 밤도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라 숙면의 달콤함을 잊는다. 숙면이 과일처럼 달콤하다는 것을 잊어서 숙면이 그리 욕심나는 것도 아니지만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이 무서워서라도 잠을 자야겠다. 잠을 못 잘수록 눈물을 제어하는 신경의 기능이 퇴화하나보다. 그래서 슬픈 이유 없이 슬퍼지고 눈물도 나오나보다. 오늘도 두통이 날까 봐 무섭다. 숙면처럼 달콤한 과일을 밤에 먹으면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되나. 나의 사랑을 차지하는 지구의 과일을 이것저것 사서 애인에게 하나씩 먹여버리고 싶은데 애인은 나를 찾지 않는다. 발이 다 해진 줄도 모르고 산책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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