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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주 Sep 07. 2023

엄마의 원 히트 원더

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원 히트 원더.

대중 음악계에서 한 개의 곡만 큰 흥행을 거두고 사라져버린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말이다. 아마도 엄마의 인생 속에서 시(詩)는 ‘원 히트 원더’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단 한 번의 시도로 화려한 성과를 냈지만 그 다음이란 없었으니까.     


부모님이 다니시던 노인복지관 담당자는 그해 처음 시행된 전국 新노년문학상에 작품을 내시도록 권유하셨다고 한다. 처음엔 아빠가 제안을 받았는데 ‘이런 건 집사람이 잘 합니다.’라며 엄마에게 토스를 하셨다. 서울 살던 시절에 엄마는 <MBC 여성시대>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투고하여 종종 소개되곤 했기 때문이다. 복지관 실적을 위해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담당자의 말에 엄마는 밤을 새워가며 시 한 편을 완성하셨다.      

대상을 받은 엄마의 시 액자는 저수지가 보이던 시골집에서 읍내 터미널 앞 아파트로 이사를 가도 늘 거실 가장 좋은 자리에 당당히 걸려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시가 인쇄된 액자가 시상식 이후에 그냥 버려지는 게 싫어서 서울에서부터 들고 오셨다. 제삿날을 핑계로 엄마를 혼자 보내서 미안했던 것일까? 아빠는 이웃 동네 사진관까지 가서는 시상식 사진을 아주 크게 뽑아서 나란히 걸어 두셨다. 하지만 아빠의 속마음은 진짜 어느 쪽이었을까. 복지관 사람들 앞에서 ‘시인 아내’ 자랑을 하다가도, 술이 좀 거나했던 어느 저녁에는 “대상 좀 받았다고 붕 떠서 요즘 (제사를 비롯한) 살림에 소홀한 거 아니냐.”는 어깃장을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외유내강, 평소 잘 참는 성정의 엄마지만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술에서 깨고 난 후 아빠는 기억이나 했을까? 상대방은 상처도 기억도 없을 텐데 엄마만 시를 통한 새로운 기회를 날린 것 같아서 10년 후에 듣는 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집까지 모시러 온 담당자와 함께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헛헛하더라. 상 받으러 가는 자리에 혼자 가려니 너무 초라한 것 같고, 딸들은 외국에 있고. 그래서 네 오빠한테 전화를 했지. 엄마가 상 받으러 가는데 좀 외롭구나. 다행히 시간 맞춰서 시상식장에 나와 준 아들을 대동하고 근사한 꽃다발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단다. 도착해보니 대상이라고 알려주더라. 내 성격이 어디 가겠니, 크게 표는 안 냈지만 아들 앞에서 어찌나 기가 살던지!     

막상 대상 받은 시 액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도 좀 미안했던 것 같아. 온갖 액자들로 복작대는 거실 벽을 정리하더니 한가운데 자리를 비우고 내 시를 떡하니 걸더라고. 그뿐이냐, 복지관을 통해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는 시상식 사진을 얻어서는 멀리 옆 동네까지 가서 크게 확대해 오기까지 했어. 자기 딴에는 그런 방식으로 미안함과 뿌듯함을 표현하려 한 것 같아. 마음 다 상하게 해놓고 그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다정한 말을 못 배우고 자란 그 시대 남자들의 한계가 아닌가 싶구나.” 


지금은 엄마 화장대 위에 곱게 놓여진 인터뷰 잡지


그때 이후 엄마의 시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느라, 먹고 사느라 자식들은 아무도 엄마에게 왜 안 쓰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단지 그렇게 간단히, 편안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조명제 심사위원은 엄마의 시 ‘동행’에 대해 “노년기의 건강하고 지혜로운 부부애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산뜻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라고 평했다.₁₎ 또 “복지관의 사회적 구실을 배경으로 고령화 사회의 자립하는 노인상을 이처럼 재치있게 다루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김정자 씨는 당당한 솜씨로 절제된 언어 감각과 팽팽한 긴장의 율격미를 조화롭게 처리하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명편(名篇)을 빚어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에게 시는, 글은 무엇이었을까. 그 속으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체념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엄마에게도 자신의 재능을 더 직시하고 뾰족하게 벼릴 수 있는 여유와 기회가 있었다면 50년의 세월 동안 더 많은 시를 지었을 텐데. 엄마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인지 상태가 나아질 무렵, 칠곡 할머니들이 쓴 시집 <시가 뭐고?>를 빌려다 드렸다. 다른 책은 보여드려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이 책은 글을 배우고 평생 까막눈에서 벗어나 훨훨 나는 기분을 느낀 할머니들의 이야기라는 말에 반색을 하셨다. 시 쓰는 여자들에 대한 호감이었을까? 마음이 가는 시엔 책갈피를 끼워 두고 더 읽어 보신다는 말씀에 마음이 찡하다. 불과 몇 달 전의 엄마에게선 기대할 수 없던 생기있는 반응이었으니까.    

 

이번에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책꽂이 속에서 2010년 수상자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찾아냈다. 73세 엄마의 힘 있고도 단정한 흑백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위로 몹시도 메마르고 조금씩 소멸해 가고 있는 86세의 얼굴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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