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누워 있던 소파에는 아무도 없다. 난 더 크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어엄마아아!”
“아니 얘는 좁은 집에서 왜 이렇게 엄마를 크게 불러?”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다.
“엄마!”
난 엄마를 껴안았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엄마는 껴안은 내 손을 툭 치며 말한다. 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릴 적에, 그러니까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엄마는 어떤 아이였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엄마는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어?”
“그랬다니까. 엄마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외할머니 말씀도 아주 잘 들었지.”
엄마는 날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엄마를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맞아. 엄마는 착한 어린이였어. 가끔 수학 학원을 빠지긴 했지만 말이야. 아쉽게도 강남정 춤과 구급차 춤은 좀 못 추던걸? 난 엄마 운동신경을 닮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엄마, 어릴 때는 키가 큰 편이었었나 봐. 참 지금은 안경을 안 쓰는데 왜 그때는 안경을 썼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힘을 주어서 말했다.
“장, 하, 리. 너. 거울 책 봤어?”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에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쩌다 책을 발견했고 과거로 가는 방법을 알게 됐는데 그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다고.
“거울 책이 하는 말만 듣고 과거에 다녀오다니. 넌 정말 겁도 없다.”
“내가 겁이 없는 건 엄마를 닮아서야. 엄마 용기가 장난 아니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내 과거 여행 이야기를 엄마에게 자세히 해 주었다.
“하하하, 생각난다, 생각나. 네가 그 김지혜를 찾던 아이라고? 어머나, 웬일이니. 어떤 애가 이 동네 삼 학년 김지혜 찾는다고 해놓고 나중에 동네를 잘 못 찾아왔다고 해서 얼마나 황당했는데!”
엄마는 연신 손뼉을 치고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외할머니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잠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엄마가 물었다.
“하리야, 그런데 왜 엄마가 열 살 때로 간 거야?”
“아, 그게 말이지…….”
“응? 응? 왜? 왜?”
엄마는 계속 재촉한다. 에잇.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엄마가 매일 나보고 ‘내가 네 나이 때는 그렇지 않았어.’ 하고 잔소리를 해서 말이지. 과연 엄마가 어릴 때 얼마나 모범생이었나 확인하려고 갔지.”
“뭐? 과거로 갈 수 있는 한 번뿐인 기회를 그렇게 썼다고?”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는 왜 그런 잔소리를 해서 엄마 어릴 때를 궁금하게 한 거야? 가서 보니까 모범생도 아니었던데. 히히. 어릴 때 나 같지 않기는커녕 나랑 잘 맞는다고 두 번이나 말했어.”
“뭐라고? 푸하하. 사실 엄마는 초등학교 사 학년부터 모범생이었어. 고학년이 되고 나서 정신 차렸지.”
“에이, 거짓말.”
“뭐 믿기 싫으면 말고.”
엄마는 거울 책이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 때.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할머니인 고조할머니가 산에 갔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고 정성껏 그 사람을 간호했다. 죽을 뻔한 그 사람은 기운을 차리게 되자 거울 책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고 했다. 이 책은 엄마 쪽으로 내려오는 우리 집 보물이고 딸들만 사용할 수 있단다. 스무 살, 성인이 되면 이 책의 존재와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고. 난 엄마의 과거 여행이 궁금해졌다.
“엄마는 언제 과거 여행을 했어? 엄마의 과거 여행 얘기도 해줘.”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과거로 가서 외할머니를 보고 왔어. 살아 계셨을 때 표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전하고 왔지.”
“아, 그랬구나. 참, 소진이 이모는? 이모도 거울 책을 썼어?”
“응, 이모는 조선 시대로 가서 세종대왕을 만나고 왔어. 너무 과거로 가서 다시 현실로 못 올 뻔했지. 그 시대의 거울과 거울 책을 겹쳐 들어야 다시 현실로 올 수 있잖아. 조선 시대 궁궐에서 거울 찾기가 어디 쉽겠어? 그렇게 과거로 가다니 소진이는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거울 책 이야기들을 들으니, 난 조금 아쉬워졌다.
“엄마, 나도 과거로 가는 기회를 그렇게 썼어야 했나 봐. 위인을 만나고 오거나 아니
면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과거로 가서 만나고 오거나.”
“뭐? 엄마, 아빠가 지금 살아있는데, 죽은 뒤에 보러 갈 생각을 하는 거야? 그것보다 지금 엄마 아빠에게 잘하는 게 낫지 않겠어?”
“아, 그러네.”
난 쑥스럽게 웃었다.
“참 엄마, 나 과거에서 엄마랑 헤어질 때 다시 만나면 더 재미있게 놀기로 약속했어. 우리 뭐 하고 놀까?”
“어머, 그랬어? 무려 삼십사 년 전의 약속을 이제야 지키네. 하하.”
“엄마가 춤을 좀 못 추던데, 내가 춤 잘 추는 노하우 좀 알려줄까? 이래 봬도 내가 방과 후 방송 댄스반을 2년이나 했잖아. 유튜브에서 강남정이랑 구급차 춤 찾아볼게.”
“어머나, 하리야, 오해야. 엄마는 초등학교 사 학년 때부터 춤을 잘 추기 시작했다고!”
“뭐라고? 그럼 엄마 춤 실력 한 번 볼까?”
“그래, 좋아! 엄마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봐야겠다.”
난 유튜브 영상을 찾으며 지금 거울 책을 사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정말 친구가 되어 본 사람은 이 지구 상에 나밖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