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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19. 2022

초등학교 때 날 스쳐 간 운동
(에어로빅, 스케이트)

   

어릴 때 살던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지하에는 에어로빅 교실이 있었다. 문이 있는 뒷면만 빼고 벽 삼면에 거울이 붙어있는 곳. 방학이 되면 에어로빅 교실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에어로빅 강좌를 열었다. 동네 여자아이들은 거의 다 신청했다.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친구들과 함께 평소에 입던 편한 옷을 그대로 입고 에어로빅장으로 갔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땀을 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곡은 ‘짜라빠빠’다. 짜라빠빠 빠빠빠 짜라빠빠 짜짜라짜라빠빠빠~ 음악에 맞춰 허리를 신나게 흔들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내 몸은 뻣뻣했을 텐데 딱히 따라 하기 힘들었다거나 어려웠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처음 배우는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해 아주 쉽게 안무를 짜신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앞에 있는 선생님을 보고 따라만 하면 되니 동작을 외울 필요도 없고 좀 틀려도 아이들이 워낙 많아 티가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난 가끔 거울에 비친 내 동작을 보며 ‘음, 좀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수학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아무튼 1박을 하는 여행을 갔었는데 저녁때 다 같이 춤추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라(사실은 못 추는 편에 가까워서) 그때의 기억은 없는데 그다음 날 아침,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김 땡땡, 김 땡땡!”

뒤를 돌아보니 선생님께서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너 춤 아주 잘 추던데!”

마흔 넘게 살면서 춤 잘 춘다는 말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옆에 친구도 있어 쑥스러워 머리만 긁적이며 생각했다. 

‘내가? 내가 춤을 잘 춘다고?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내가 춤을 잘 추는 이유는,, 바로 에어로빅을 다녔기 때문일 거야!’

난 나름대로 추측하고 그다음 방학 때도 열심히 에어로빅을 다녔다. 그 결과는,,, 사실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 외에도 또 하나 습득한 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케이트다. 우리 동네 근처에는 아이스링크장이 있어서 가끔 주말마다 친구들끼리 놀러 가곤 했다. 5학년 여름 어느 날, 친구 두 명에 나에게 와서 같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했다. 보통 나는 못 타니 갈 수 없다며 거절하는데 그날 그 두 친구는 끈질기게 날 설득했다.

“괜찮아. 처음이라도 탈 수 있어. 우리가 양쪽에서 손잡아 줄게. 넌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그래?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알았어.”



난 순진하게 친구를 따라 스케이트장에 갔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스케이트 빌리는 곳의 북적거리는 분위기, 모두 익숙한 듯 보이는 사람들. 심장이 두근댔다. 익숙한 두려움이다. 어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긴장되는 그 느낌.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꾹 누르고 내 발 사이즈에 맞는 스케이트를 빌리고 스케이트 끈을 꽉 당겨 잡아 묶었다. 

“발이 이리저리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더 꽉 묶어야 해.”

“응응.”

친구의 말을 듣고 맸던 끈을 풀고 다시 더 꽉 잡아 묶었다. 스케이트를 신고 스케이트 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난간을 잡고 기우뚱대며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스케이트 얼음판. 미끄덩. 으악.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친구들은 양쪽에서 내 손을 잡고 날 끌어주었다. 난 가만히 있는데 내 몸이 얼음판 위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앞으로 나갔다. 

“아하하하하, 하하하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가르는 소리, 적당한 스릴감과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이야, 스케이트 재미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자 친구들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지쳤는지 날 아이스링크장 한가운데에 놓고 그냥 가버렸다. 

“야, 니들 나 놓고 가면 어떻게 해!”

난 친구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그러나 친구들은 깔깔 웃기만 하고 나에게 오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친구들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엉거주춤 이동하기 시작했다. 기우뚱기우뚱 걸으며 내가 붙잡을 곳, 그 한 곳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아주 멀었다. 마침내, 내가 난간을 붙잡고 겨우 허리를 펴니 그제야 친구들이 나에게 왔다. 

“어때? 할만하지?” 

“할만하긴 뭐가 할만해. 나 좀 잡아줘.”

“이그, 알겠어. 우리가 잡아 줄게.”

친구들은 다시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내 손을 놓고 까르르 웃으며 도망가버렸다. 난 씩씩거리며 다시 어기적어기적 스케이트 날을 얼음에 찍으며 벽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내 벽에 닿았고 이번엔 그 웃긴 자세로 괘씸한 친구들을 잡으러 갔다. 난 그렇게 스케이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때는 이를 박박 갈았지만 친구들이 날 아이스링크장 한가운데에 놓고 가지 않았더라면 난 스케이트를 배울 수 없었을 거다. 그러나 그 뒤로도 정식으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없어 아직도 폼은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고 보면 배우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려주는 게 능사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어느 정도의 도전 과제를 줘서 그걸 성취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아마도 배우는 사람은 ‘할 수 없다, 나에게 왜 이러느냐, 다시는 하나 봐라.’ 하고 난리를 치겠지만. 그러나 꼭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 몇 개월째 수영 기초반을 벗어나지 못한 동생이 안타까웠던 수영 강사는 내 동생에게 도전 과제를 주고자 깊은 물에 빠뜨렸는데 동생은 그 트라우마로 아직도 물을 무서워한다. 학습자에게 무리하지 않은 적절한 도전 과제를 주고 성취감을 주는 것, 그 어려운 일을 5학년인 내 친구 둘이 해주었다니. 그 친구가 누구인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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