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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30. 2022

선생님은 너무 중요해

테니스 선생님이 열심히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저 공만 쉭쉭 던져주시는 느낌. 학생이 하기 싫어하면 바로 선생님이 알 듯, 학생도 선생님이 슬렁슬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레슨 시간 20분 중에 공을 줍는 시간 3분을 제외하면 실제로 강습 시간은 고작 17분 정도다. 난 최대한 많이 배우고 싶다. 몸이 잘 따라주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많은 조언을 듣고 싶다.     


 

요즘 테니스가 정말 유행인 건지 수강생이 점점 늘고 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체험 테니스를 신청하고 등록하는 사람을 본다. 옆에서 보면 처음 등록하는 사람에게는 어찌나 잘해주시는지. 적절한 조언과 칭찬, 격려 소리가 코트를 가득 채운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레슨 한 후 지친 선생님이 나에게 오신다.      



선생님이 공만 휙휙 던져주신 날이면 강습이 끝날 때 더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다. 

“회원님 많이 느신 거 아시죠? 이제 공이 날아오는 게 다 보이잖아요. 그쵸?”

항상 그런 건 아니라서 대답하기가 어렵다. 조금 망설이다가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어요.”하고 말한다. 선생님은 그래도 자신의 말이 맞다는 듯 “에이, 예전 생각해보세요. 많이 늘었잖아요.”라고 덧붙이신다. 이미 배운 지 8개월인데 처음과 비교하는 선생님의 칭찬은 과연 칭찬인 건가. 빈 껍데기 같은 칭찬이다. 밟으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근거 없는 모호한 칭찬보다는 정확하고 단단한 지적이 더 좋다.      



결국은 고민하다 남편이 얼마 전부터 새롭게 다니고 있는 테니스 코트장으로 옮겼다. 30분 테니스 강습을 받는데 오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먼 거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거리는 가까운데 차가 막혀서 오래 걸리는 거라 짜증이 난다. 정말 비효율적이다. 신호도 많고 차도 많고. 남편과 나는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새로운 테니스 선생님께 내가 얼마나 운동 신경이 없고 테니스를 잘 못 치는지 설명한다. 

“자, 얼마나 하는지 한 번 볼게요. 포핸드로 쳐 보세요.”

배웠던 대로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공으로 다가간다. 하나, 둘, 하나, 둘, 왼발을 앞으로 놓고 라켓을 휘익. 예상했던 대로 자세 지적을 받았다. 공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는 건 받았던 지적. 라켓을 아래서 위로 뭔가를 퍼내듯이 치라는 것과 마지막 포즈 할 때 팔꿈치가 하늘을 향해야 한다는 건 새로운 지적. 난 공을 칠 때 항상 사이드 스텝으로 갔는데 그렇게 하면 박자가 맞지 않을 때 공을 잘 못 칠 수도 있다며 꼭 사이드 스텝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이번엔 백핸드 해볼게요.” 

백핸드는 자신 있다. 백핸드 자세가 좋다고 칭찬도 받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선생님은 오른손에 힘을 주면 안 된다고 하신다. 오른손은 거들뿐 라켓은 왼손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처음 듣는 말이다. 선생님의 정확하고 열정적인 설명. 이 테니스장이 가깝지 않은데도 남편이 여기서 강습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내 옆에 와서 다시 자세를 잡아 주신다. 내가 치는 공 하나하나에 피드백을 주신다. 공에 너무 달려들지 말아라. 뒤에서 치지 말고 옆에서 쳐라. 공을 보고 쳐라. 힘을 빼고 쳐라. 손이 완전히 어깨 뒤로 넘어가게 해라. 뒷다리를 그냥 틀지만 말고 저절로 스윽 앞으로 쓸려가게 해라. 스텝을 밟지 말고 잔발로 뛰다가 공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라.      



내가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면 바로 더 쉬운 표현, 쉬운 예시를 찾아 설명한다.

“자, 이번엔 제가 네트 건너편으로 가서 공을 드릴게요. 쳐보세요.”

선생님이 던진 공을 보고 라켓을 휘둘렀다. 어, 된다. 공이 선생님이 계신 방향으로 쭉 나갔다. 

“나이스! 잘했어요!”

“아하하하하” 

예전에 수영 배울 때 처음 배영을 하며 하하하 웃음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가이드대로 하니 자세가 교정된다. 정말 나아진다. 예전엔 20분 강습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는데, 요즘엔 30분이 짧다.      



태생적으로 난 상체가 하체보다 약하다. 테니스를 치다가 손목을 다친 후로 테니스는 내 체형에 맞지 않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운 게 아까우니 남편이랑 슬렁슬렁 같이 칠 수 있을 정도만 배우자,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 계속 배우면 어쩌면 테니스를 계속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차가 더 막힌다. 

“이렇게 차가 막혀도 선생님이 잘 가르치시니 다른 테니스장으로 옮길 수가 없네.”

내 말에 남편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동안 배웠느냐보다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공장같이 생긴 가건물의 테니스 코트, 먼 거리, 안 좋은 대중교통, 대기 공간 부족. 선생님 이외에는 모든 게 아쉽다. 하지만 그냥 아쉬울 뿐,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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