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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Sep 01. 2022

"쉬면 더 힘들어요"

러닝은 나와의 싸움


“쉬지 마세요. 쉬면 더 힘들어요. 힘들어도 참고 끝까지 뛰어야 되요.”     


러닝을 할 때는 쉬고 싶어도 중간에 쉴 수 없다. 대신 속도를 늦춰 달리면 된다. 3km든 5km든 10km든 목표로 세웠으면 종착점까지 가야 한다. 포기하고픈 마음을 꾹 억누르고, 주기적으로 호흡을 하면서 벅차오르는 숨을 조절하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야한다.


 한마디로, 나와의 싸움을 해야해서 힘들다.      


그런 점에서 러닝은 일상과 상당부분 닮아있다. 일정한 호흡과 안정적인 자세로, 같은 동작을 무한반복해야 하는 일. 쉬운 것 같아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온 집중력을 쏟아야 하는 운동이다. 기계가 된 것처럼 생각을 비우되 내 호흡에 집중해야하고, 뒤에서 누가 오지 않는지 또는 발 밑에 돌부리는 없는지 주변을 감지해야한다.


발 어디에 힘을 줄지, 발바닥 어디부터 바닥에 댈지, 팔은 어떻게 휘두를지, 호흡은 어떤 리듬으로 해야할 지 그런 고민은 오히려 독이 된다. 몸에 힘을 빼고 달리다보면 가장 편한 자세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러닝을 할 때마다 내가 이 모든 것에 그동안 서툴렀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현재에 몰입하지도 못했고, 주변 상황을 살피지도 못했고, 쓸데없는 생각만 너무 많이 해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는 순간적인 욕망에 레이스를 포기했고, 백수가 되어버렸다.      


직장생활을 관둔 가장 큰 이유는 기계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새벽에 나가 밤에 돌아오는 일상에서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고 느꼈다. 점심을 굶어야 겨우 업무 마감을 해낼 수 있는 구조라 1분1초 흐르는 게 초조했다. 상사의 채근과 일방향적인 의사소통방식에 성격은 조급해졌고, 퇴근 후 가족들에게 하소연하는 날이 많아졌다.      


회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퇴근 후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리프레시를 하라는 조언들은 내겐 해당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얻는 우울한 감정은 몸을 일으킬 의지를 꺾었다. 집에와서 저녁 식사를 하면 금세 밤이 되었다. 몸을 뉘인 침대나 소파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걸 아쉬워하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주말 밤에는 출근 스트레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내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매일이 불안의 연속인지라 평일에는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생각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자기관리 실패였다. 스스로를 기계라고 생각하는 게 레이스를 완주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듯, 별다를 것 없는 하루라도 소중히 받아들이고 소소한 기쁨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제와서 후회를 하는 건 아니다.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 같다.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레이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나의 레이스 완주를 포기했다고 해서 실패자는 아니다. 그냥 이번엔 내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다.


달리기는 자주 하다보면 실력이 는다.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더 큰 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해서 조금 시간은 걸릴 수 있겠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생각하니 설렌다. 어떤 기적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도 된다. 눈앞에 놓인 것을 해내기 급급하기 보다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갖추고 싶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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