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광주가 고향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홍어를 자주 먹었다. 초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친 홍어, 목살과 익은 김치와 함께 싸 먹는 홍어, 탕으로 깔끔하게 끓여낸 홍어는 내게 별미 중에 별미였다. 명절이면 아빠가 나주 영산포에서 제대로 삭은 홍어를 공수해 오셨다. 코를 뻥 뚫어주는 화한 맛이 어린 나이에도 맛있었다. 홍어에 있는 뼈도 오독오독 잘 씹어 먹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나는 본사에서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만의 비밀연애(남들은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른다고 생각하는)를 8개월 정도 하고 결혼했다. 2020년도에 나는 전주로 발령이 났고 얼마 전 남편도 내가 근무 중인 전북본부로 발령이 났다. 2년 만에 다시 같은 건물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손잡고 출퇴근하며 때로는 단둘이 점심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어죽이나 어탕과 같은 몸에 좋은 국물이 찐하게 담긴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문득, 예전에 팀원들과 함께 갔던 익산 시내에 있는 홍어 칼국수가 떠올랐다.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아침도 먹지 않은 탓에 찐한 장국 물에 홍어가 갈려 들어간 칼국수를 생각하자마자 식욕이 속구 쳤다.
같은 팀 여직원에게 다가가서 홍어 좋아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본래 고향이 전라도이셔서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했다.
"과장님, 혹시 홍어 좋아해요?"
"홍어요? 아니요. 왜요~?"
(이럴 수가ㅠㅠ)
"아. 아니 홍어 칼국수 맛있게 하는 데가 있어서요"
"아 그래요? 전 홍어 못 먹어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손가락을 뜯으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나의 슈퍼맨 남편에게 연락했다. 근데, 슈퍼맨이 유일하게, 정말 유일하게 꺼리는 음식이 홍어였다.
하지만 이미 샘솟은 식욕이 남편에 대한 배려를 이겨버렸다. 남편이 새로운 음식 먹어보는 걸 좋아한다는 생각으로 합리화해버렸다. 회사 메신저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똑똑"
"여보오오오오옹~~"
"오빠, 바빠?"
"괜찮아. 왜에?"
"오빠 점심때 내가 전에 한 번 얘기했던 홍어 칼국수 먹으러 갈래?"
"오~ 좋지~! 가보자. 혹시 거기 다른 메뉴도 있어?
"아니 홍어 칼국수만 팔아"
"아 그래? 단일 메뉴! 맛집인가 보네. 가보자. 홍어 칼국수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
"(앗싸!!!!) 오~~ 가자 가자. 맛있을 거야! 오빠 옷에 홍어 냄새 밸 수도 있으니까 잘 안 입는 회사 옷 꼭 걸치고 와"
"오키오키"
'홍어와 탁주'라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홍어 냄새가 진동했다. 막 빨을 수 있는 회사 옷을 단단히 걸치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자리에 앉아 홍어 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빨간 국물에 가느다란 홍어 살이 동동 떠다니는 걸 보니 또다시 군침이 돌았다. 후후 불어서 한참을 맛있게 먹었다.
문득, 남편을 바라보니 젓가락 질이 더디다. 다른 사람들의 식욕을 돋울 정도로 맛있게 잘 먹는 남편인데 어째 나랑 먹는 속도가 같다.
"오빠, 먹기 힘들어? 맛이 어때?"
"아니야, 괜찮아. 먹을 만해. 맛있네 구수하니"
"그래? 다행이다"
휴. 한숨 돌리고 또 열심히 먹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물었다.
"오빠 다음에 또 먹고 싶을 것 같아?"
"음. 혼자서는 안 올 것 같아"
"그럼?"
"여보 먹고 싶을 때 올 것 같아"
뭐든지 잘 먹는 남편과 달리 나는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그저 그런 음식은 조금만 먹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연애할 때 꽤나 마른 편이었고 남편은 내가 많이 먹고 살찌는 걸 좋아했었다.
(남편의 보살핌 덕분에 결혼 후 찐 살이 5kg을 넘었다.)
남자다운 외모와 다르게 은근히 돌봄과 양육의 성품을 가진 남편은 언제나 나의 먹을거리에 신경을 썼다. 연애 때는 내가 조금씩 자주 먹고 군것질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서는 고구마 같은걸 챙겨 다녔다.
점심때 나를 위해 애써서 먹은 홍어 칼국수에 이어 남편은 집에 와서도 나의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입가심이 하고 싶다며 마트에 가서 과자를 사 먹자고 했다.
"여보, 뭐 먹고 싶은 과자 있어?"
"음, 아! 오빠! 있어 있어 생각났어. 얼마 전에 경 과장님이 딸기맛 다이제를 하나 줬는데 그게 너무 맛있는 거야. 먹으면서 감탄했어. 다 먹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너무 맛있어서 가서 또 달라고 그랬잖아.
"과장님 다이제 딸기맛 또 있어요? 이거 진짜 맛있네요. 저 한 개만 더 주세요"라고 불쌍하게 말했어(까르르)"
"(카카 카카 카) 진짜? 우리 여보가 진짜 맛있었나 보네. 아 근데 여보가 진짜 좋아할 만한 맛일 것 같아. 그 팍팍한 과자 속에 딸기 크림이 부드럽고 촉촉하게 녹아드는 거 아냐?"
"맞아 맞아. 엄청 맛있어. 아 진짜! 내 취향저격이야!"
"여보, 왠지 다이제도 원래 좋아했을 것 같은데? 왠지 여보 스타일이야"
"어, 맞아!! 나 학생 때도 다이제 엄청 먹었어. 그 투박하고 달달한 맛이 너무 좋아"
"다이제 딸기맛 사자 사자"
야심 차게 마트에 들어갔는데 안타깝게도 다이제 통밀 맛과 초코맛 밖에 없었다. 다른 마트에도 가보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아쉬운 대로 그냥 초코맛 다이제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오빠, 그거 내가 찾아봤는데 롯데마트에서 봄 한정판으로 팔더라고"
"그래? 인터넷에서는 안 팔려나? 집에 가서 찾아보자. 한정판이면 많이 시켜놓고 두고두고 먹어 여보"
집에 오자마자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했다.
"여보, 다이제 딸기맛 여기 있다. 이거 주문할까?"
신나서 얘기하는 남편의 어깨너머로 모니터를 봤다. 5만 원이 넘는 다이제 딸기맛 세트를 선택해놨다.
"히익, 오빠 너무 많지 않아? 나 3개만 있으면 될 것 같아"
"왜에~ 여보 이렇게 특별히 좋아하는 과자가 흔치 않잖아. 여보 엄청 맛있게 먹은 것 같은데 많이 사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