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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Jan 16. 2023

하얀용 세계관AMA 제작 강의 요약본 5

5강. 기업 세계관과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관계

[강의 전체 목차]

1강 - 오리엔테이션과 메타버스와 세계관

2강 - 세계관 개요 및 세계관 제작의 연습

3강 - 키워드 클라우드, 메시지와 장면, 핵심키워드·반응키워드

4강 – 세계관 제작의 순서와 구조

5강 - 커뮤니티의 중점, 메타버스·세계관·커뮤니티의 관계


[5강 가이드라인]   

    기업 세계관 제작의 필요성과 기대효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담당자에게 적합한 글  

    5강의 핵심 테마: 비즈니스로서의 세계관, 크리에이터의 시대, AI 사용법, 브랜드 커뮤니티  

    글의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소제목]을 참고하여 발췌독하길 권함  

[국가 주도의 메타버스 사업과 세계관 비즈니스]

향후 10년간 국가에서 지원할 신사업은 메타버스일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 차원에서 게임, K-POP, 전기자동차 산업에 투자했던 것처럼, 메타버스에 투자할 것이라는 의미다. 왜? 메타버스가 거의 모든 산업군을 포괄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VR과 AR은 물론이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AI, 블록체인, 이커머스, 패션, 엔터테인먼트, 건설, 핀테크, 6G 통신 등의 산업이 모두 메타버스를 향한다. 메타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또 하나의 우주(세계)를 만드는 산업인 셈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 이전에 기업들은 일찌감치 메타버스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인 만큼 대부분의 기업은 메타버스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바꿔 말하면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든 기업이 기회만 보고 큰 위험을 짊어질 만큼 현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실험적, 선제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위주로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보다 더 많은 기업들은 메타버스보다 조금 더 기술적, 개념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비즈니스에 손을 뻗는다. 바로 세계관 사업이다.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K-POP 산업에서 아이돌 세계관이 거대한 팬덤을 모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세계관에 돈을 쓰는 고객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심지어 글로벌에서 비즈니스를 성공시켰으니 이보다 좋은 레퍼런스도 드물다. 그리고 발 빠른 빙그레가 자사 SNS에 도입한 ‘빙그레우스’ 세계관이 등장한 지도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세계관 마케팅의 대박 효과를 눈으로 목격한 기업들은 이제 너도나도 세계관을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고 활용해야 할까? 


[K-POP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연출이다]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의 등장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K-POP 산업의 특수성이 세계관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아이돌 멤버 하나를 떠올려 보자. 누구든 좋다. 그 아이돌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 노래 실력일까? 그렇다면 노래를 더 잘하는 보컬리스트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춤 실력인가? 전문 댄서보다 잘 추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 예쁘고 잘생긴 외모인가?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돌의 매력은 하나의 기준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종합적인 매력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특장점이나 핵심 포인트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K-POP 산업의 특수성이다. 아이돌의 매력은 뮤직비디오와 음악방송, 예능 프로그램, 라이브 스트리밍, 유튜브 콘텐츠 등에서 보이는 모습의 총합이다. 

그러면 산업으로서 K-POP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잡탕인가? K-POP을 장르 차원에서 접근해보자. 우리는 K-POP을 음악 장르로 인식하는가? 재즈나 힙합, 클래식 등과 같은 위상에 놓고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운드로 음악 장르를 구분한다면, K-POP은 장르가 아니라 연출 방식의 하나로 분류되어야 한다. K-POP은 멜로디와 가사, 춤, 패션, 메이크업, 캐릭터, 스토리 등 가능한 표현방식을 총동원해 특정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연출 방식을 지칭하는 단어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세계관 속 캐릭터 ‘반희수’가 운영하는 콘셉트의 유튜브 채널 ‘Ban Heesoo’ https://youtu.be/pnj2H1gyDTU



연출로서의 K-POP이 새로운 개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K-POP의 방식은 녹음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시대의 음악과도 일맥상통한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은 음원으로서, 스트리밍 앱 서버에 데이터로서 존재한다. 소리를 녹음해서 언제든 재생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공연을 봐야만 했다. 오프라인에서 가수의 노래와 연주, 표정 등을 다 함께 감상하는 행위였다. 그저 이어폰으로 소리‘만’ 듣는 지금의 음악과 달렀던 것이다. 음악이 공연으로서 존재하던 당시의 음악은 종합 예술, 연출의 영역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종합 예술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음악에 연출이 들어갔을 테니까.


이처럼 종합적인 연출이었던 음악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자 사운드라는 영역으로 쪼그다른 채 유통되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막 태동되던 시절에는 많게는 3Mb(메가바이트)에서 적게는 300Kb(킬로바이트)까지 낮은 용량으로 압축해야 음악을 공급하고 소비하기에 편리하니까. 그러나 대용량 정보 전달의 비용이 저렴해진 지금은 모든 예술을 하나로 모아 전달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제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해 종합 예술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음악에게서 연출이라는 필살기를 빼앗았다가 다시 쥐어준 셈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생겨난 음악인 K-POP은 연출을 손에 쥐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아우른다. 공연, 뮤직비디오, 굿즈, SNS 이미지, 라이브 스트리밍은 물론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 손을 뻗어 수익을 창출해낸다. K-POP 산업의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하나의 아이돌 그룹에 붙은 스태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때 문제는 산업이 다르고, 매체가 제각각이고, 담당자가 바뀌면 연출의 지향점이 저마다 조금씩 다를 위험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차는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팬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종합적인 완성도를 뚝 떨어트린다. 


결국 일관성을 유지한 채 확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심이 단단해야 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모든 지점에서 일정한 맛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K-POP은 여러 예술 매체와 산업군을 넘나들면서도 똑같은 맛을 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어떤 창작자가 만들어도 일관성을 유지하게 만들어 줄 창작 매뉴얼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 매뉴얼을 다듬고 체계화한 결과물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말했던 세계관의 정체다. 정리하자면, K-POP 산업에서 세계관은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협업하기 위한 창작 도구이자 팬들의 과몰입을 유도하는 매력적인 콘셉트로서 기능한다. 


[비용 절감 수단으로서의 세계관]

창작의 요람으로서 세계관은 매체 간 전환, 산업 간 전환을 간편하게 한다. 가령 해리포터 소설이 없어도 ‘해리포터 세계관’이 정리되어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지을 수도 있고,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다. 더불어 누가 만들어도 세계관의 일관성은 유지된다. 세계관은 콘텐츠 비즈니스를 효율화한다. 


여기서 AI의 등장은 세계관의 효율성을 몇 단계 더 높인다. 세계관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용이 드라마틱하게 절감되기 때문이다. 현재 나온 기술만 봐도 그렇다. 텍스트를 작성하면 이를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기술이 오픈소스로 공개(Dall-E, Midjourney 등)되어 너도나도 쓸 수 있게 된 지가 벌써 1년이 되었다. 지금은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기술도 있다. 이러한 각종 구현 기술은 점점 더 빨리 발전하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전무해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세계관이다. 


가령 AI에게 숲을 그려달라고 하면 어떨까. AI는 수많은 숲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어떤 것을 고를지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의 몫이다. 침엽수가 많은 북유럽의 숲인지, 아마존의 열대우림인지, 그 숲에는 어떤 동물들이 사는지까지 AI에게 말해줘야 내 머릿속에 있는 숲과 유사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독창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디테일을 높여보자. 숲에 난파된 우주선이 있고, 그 우주선에서 외계인이 나온다면? 외계인이 가진 기술이 지구보다 500년쯤 앞서 있다면? 구체적인 묘사와 섬세한 뉘앙스 표현을 AI에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이미지는 점점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실감이 나는가? ‘말로 떠들기만 해도 콘텐츠로 구현되는 시대’는 이미 어느 정도 현실이다. 작가에게 남은 과제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AI는 앞으로 작가의 스타일부터 작업방식, 사소한 습관, 자주 쓰는 단어 등을 맞춤형으로 끊임없이 학습할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물론이고 작업용으로 사용한 소프트웨어의 모든 사용 기록이 AI에게 데이터로 제공되는 것이다. 그 결과 AI는 고흐의 그림체를 흉내 내듯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해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수많은 작품을. AI의 수준이 여기에 도달하는 작가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기계가 대신 작품을 만드는 세상이 될까? 


[1:1 맞춤형 AI]

어떤 작가는 자신을 대신해줄 AI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당수의 작가들과 대중들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길 원할 것이다. 창작자를 대신하는 기계가 아닌, 창작자의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구현하는 도구로서의 AI를 기대할 확률이 높다. 창작자는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고객은 그 관점을 보고 싶어하니까.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행위는 곧 창작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둘은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용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려는 AI 서비스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가령 검색 서비스 YOU.COM은 사용자가 검색어를 입력한 결과로 관련 자료나 예시 등을 띄워준다. 그러면 사용자는 그 결과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고, AI는 사용자의 판단을 학습하여 검색 결과를 고도화한다. 

꼭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AI의 등장은 기계의 원래 목적에 부합한다. 지금까지 사람은 기계와 소통하기 위해 기계의 언어를 배워야했다. 컴퓨터 언어인 Python, C++ 외에도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면 언제나 그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부터 익혀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정말 유용하려면,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쪽이 이치에 맞다. 내 의도를 알려주기 위해 컴퓨터 언어를 정교하게 학습하는 쪽이 아니라. 

물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웹2 기반의 소프트웨어에서도 고객이 인간이라는 가정하에 각종 편의 기능이 제공된다. 화상회의 화면에는 마이크를 켜고 끄는 버튼이 있고, 채팅을 입력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로봇이나 소프트웨어가 고객이었다면 불필요했을 UX(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다. 고객이 인간이라는 말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서비스에는 사람과 소프트웨어 사이를 중재하는 AI가 별도로 존재한다. 가령 AI 기반 검색 서비스 ChatGPT는 사용자의 검색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최적화된 결과값을 도출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가진 AI가 진화해 나를 학습하는 AI로 진화한 것이다. 나를 잘 아는 AI가 나를 도와준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창작자를 대신하는 AI와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AI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전자는 그저 AI가 지닌 방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뒤져 마음에 드는 이야기 하나를 꺼낸 것과 다를 바 없다. Midjourney로 만든 그림이 기술적으로 놀랍기는 하지만 AI가 검색해서 조합한 결과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작가가 한 일이라고는 아직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검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AI가 대신 그려주는 것과 내 그림이 똑바로 그려지도록 AI를 사용하는 것의 차이다. 


[세계관의 가치 = 콘텐츠의 가치] 

창작은 AI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자동화되고 있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비용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설, 영화, 웹툰, 게임 등 매체의 특성에 따르는 제약도 빠르게 줄어든다. 경제적 이익이 있는 곳에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시장 참여자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진입한 창작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디지털의 속성에 따른 소비 패턴 변화에 있다. 디지털에는 국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무엇을 만들든 곧바로 전 세계 사람이 볼 수 있는 세계인 셈이다. 그래서 ‘디지털 글로벌’이라는 단어는 부분적 의미 중복이다. 게다가 디지털 제품 생산 가격은 물리적인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오프라인의 그것보다 저렴하다. 오프라인에서 글로벌 제품을 만드는 한계점은 또 있다. 글로벌로 통용되려면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표준화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코카콜라가 대표적인 예시다. 기존의 글로벌은 초대량 단일 상품을 의미했다.

그러니 디지털 제품은 굳이 표준화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 공급된다. 전 세계에 2,000명만 소비하는 콘텐츠도 얼마든지 글로벌 제품이라 부를 수 있다. 1,000장만 팔리는 한정판 스니커즈도 글로벌이다. 과거에는 글로벌 제품이 되기 위해 10~100만 명이 소비해야 했다면 지금은 과거 대비 1%의 고객만 소비해도 공급할 유인이 생긴 것이다. 최근 소비의 파편화가 갈수록 눈에 띄는 이유다.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각자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한다. 나와 관심사가 다르면 100만 구독자를 가진 채널도 아예 처음 들어봤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신의 얼굴과 신상을 숨기고 아바타로 활동하는 버추얼 유튜버(버튜버)가 상용화되면 이러한 파편화는 앞으로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누구나 캐릭터로서 디지털 세상의 창작자가 되니까. 디지털 창작자가 점점 더 세분화된 취향과 관심사를 저격해서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소수의 구독자를 머물게 할 여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세계관의 중요성이 부상한다. 창작의 두 가지 요소는 ‘의도’와 ‘구현’이다. AI 기술 발전이 구현 기술로 기능해 창작으로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나면 창작자가 자신을 차별화할 방법은 의도뿐이다. 이 의도를 체계화한 것이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세계관의 가치는 콘텐츠의 총가치에 근접하리라는 과감한 예측도 가능하다. 


더욱이 NFT는 이러한 세계관의 가치에 가격을 부여한다. 디지털에서의 정보는 누구나 복제할 수 있기에 빠르게 인기를 얻고 확장성을 가질 수 있었지만, 복제 비용이 0원이기에 판매에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NFT는 무한히 복제되는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원본의 특정성은 유지하여 판매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모든 디지털 자산을 상품화할 수 있는 시대가 이제 막 열리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처음 열렸던 시기에 앱을 만들던 회사가 지금은 거대한 기업으로 발전했듯이. 거대한 산업군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디지털 시장의 격동은 큰 사업을 하지 않은 개인들의 일상과 경제활동 역시 송두리째 뒤흔든다. 배달앱이 생기자 식당들은 테이블 회전율을 계산하던 시대에서 앱 리뷰와 검색 상단 노출을 주요 지표로 삼게 됐다. 그리고 인기 식당이 파는 제품의 양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불어났다. 당신은 배달앱의 편의성을 칭찬할 수도 있고, 배달료가 올랐다며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배달앱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를 무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관과 NFT가 촉발한 산업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디지털 환경이 뿌리부터 바뀌고 있으니까.


[고객 니즈 파악, 신원정보가 아니라 행동 정보에 답이 있다]

소비의 파편화 현상을 창작자가 아니라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것‘만’ 골라 소비하는 시대라면, 다른 것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면 기업은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할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어떤 고객이 내 제품을 살지 예측해야 한다. 기존의 기업들은 열심히 고객 페르소나를 만들고 성별이나 나이를 주요 지표로 파악했다. 그러나 매출이 디지털에서 일어난다면, 고객의 정보 중 나이나 성별과 같은 신원정보보다 행동 정보의 가치가 더 예측력이 높다. 고객의 행동 정보를 수집하는 데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사례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도 과거에는 기존의 고객 분류법대로 30대 여성이 좋아하는 장르를 추천하는 식의 알고리즘을 사용했다. 그러나 현재의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은 이런 정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계정 ID 81619049에서 ‘카산드라’라는 닉네임을 쓰는 고객이 어떤 콘텐츠를 끝까지 완주했는지, 클릭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시청을 중단한 콘텐츠는 무엇인지 등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짠다. 이는 이론에 기반한 변화가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의 실제 성과를 기반으로 한 변화다.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시청자는 멕시코의 50대 여성도 있고 한국의 10대 남성도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결과다.  고객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보다 특정 ID를 쓰는 ‘캐릭터로서의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예측력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과 캐릭터로서 소통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인친’, 트위터에서 만난 ‘트친’, 게임에서 만난 ‘겜친’과 성별이나 본명 따위를 공유하는가? 애초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심지어 상대방이 만든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에도 그 사람의 아이디와 작품만 확인하고 거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마치 익명의 공간인 스타벅스와도 같다. 스타벅스는 돈만 내면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피부색이 어떻든, 학벌이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은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캐릭터,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만 파악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기업의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때에도 캐릭터로서의 고객들만 대상으로 하면 깔끔해질 것이다.

이 가설을 비즈니스로 구현한 또 다른 사례가 애플과 파타고니아다. 애플은 새로움과 혁신에 열광하는 캐릭터에게 어필하고, 파타고니아는 환경 문제에 대한 진정성으로 캐릭터의 윤리적인 면모를 자극한다. 덕분에 애플의 제품은 비슷한 성능의 경쟁사 제품에 비해 2배의 가격을 책정해도 날개 돋힌 듯 팔린다.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라는 광고를 함으로써 오히려 더 높은 매출과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캐릭터로서의 고객이 자사 제품을 숭배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업의 리스크 관리가 끔찍하게 어려워진 이유]

고객이 기업과 제품을 숭배하는 현상은 고객의 캐릭터화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공간에서 캐릭터가 된 고객은 오프라인에서의 개인과 사뭇 다르게 행동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인격이라기보다 특정한 역할만을 수행하는 로봇과도 같다. 그리고 이 사실은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기존과 다른 게임으로 변화시킨다. 

역할 수행 로봇은 편집증적으로 사소한 부분에 집착한다. 가령 배달원의 아주 작은 실수에도 강력하게 항의를 하며 리뷰에 혹평을 남기고, 항의 전화를 반복한다. 제품에 대한 ‘깐깐한 평가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반대로 식당 사장님의 선행 사실이 온라인에 공유되면 앞다투어 배달 주문을 하는 이른바 ‘돈쭐(돈+혼쭐내다. 구매를 통해 사장님을 바쁘게 해 혼쭐내준다는 반어법적 의미의 합성어)’ 역시 동일한 패턴이다. 착한 자영업자에게 상을 내리는 ‘윤리적 소비자’의 지위에 심취한 역할극이다. 

디지털에서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모이기 쉽다는 점은 역할 수행 로봇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한다.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기업에 대한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고, 수많은 댓글과 포스팅을 통해 의견이 모이면 불매 운동과 돈쭐이라는 인터넷 여론은 금세 거대한 파도가 된다. 

과거에는 불매운동이 벌어지려면 KBS 9시 뉴스에 등장해야 했다. 사실관계도 명확하며, 임팩트도 큰 사건이 언론을 통해 밝혀져야 비로소 고객이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현재에는 특정 고객 집단이 가진 편견으로 인한 작은 오해가 불매운동으로 쉽게 번질 지경이다. 과거에는 결집되지 않았던 작은 목소리도 전국구로 모인 디지털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당일 기사화되어서 손 쓸 시간조차 없다. 

기업이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대응 속도가 빨라져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괜한 트집까지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객센터에서 전화로 한 명씩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의 담당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평생 배운 노하우가 뒤집어지는 셈이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커뮤니티 회원에게 배워야 할 판이다. 


[팬덤을 만드는 기업 세계관]

고객이 캐릭터가 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떤 캐릭터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 이득일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우리 기업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캐릭터를 찾고 모으는 전략이다. 그런데 일일이 캐릭터를 찾고 모으는 것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아예 우리 기업을 위한 캐릭터를 따로 만들게 하는 편이 훨씬 깔끔하다. 누구나 여러 ‘부캐’를 가지고 있고, 새로운 부캐를 만드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니까, 애매하게 비슷한 부캐를 억지로 끌어들이느니 맞춤형 부캐 생성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이 부캐들은 무엇을 중심으로 뭉치나. 제품의 성능을 중심으로? 그럴 확률은 낮다. 애플의 고객은 혁신을 바란다. 나이키의 고객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캐릭터들을 하나로 모으려면 심장을 뛰게 하는 문화적 코드가 필요하다. 최근 눈 밝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세계관을 제작하는 이유다. 

이때 세계관은 꼭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나 중세 귀족과 같은 비현실적 장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은근하고 비언어적인 소통으로도 세계관은 고객의 내면에 스며든다. 가령 애플의 스트리밍 서비스 ‘Apple TV+’는 왜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화했을까? 그간 차별화를 지향해온 애플의 행보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 선택에는 애플 고객의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다는 맥락이 흐르고 있다. 콘텐츠 하나를 고를 때에도 감도와 안목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가 전 세계 도시의 청년이 대중적으로 즐길 법한 콘텐츠를 다량 제작하는 방식과 대조적이며, 티빙이 2030 여성 구독자를 타깃해 <술꾼도시여자들>, <여고추리반> 등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 라이브 세션 Q&A 

Q. 세계관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언어적으로 전달된다면 애플 광고 속 톤앤매너도 세계관이라 부를 수 있을까?

A. 아니다. 세계관의 정의는 제각각이지만, 광고의 톤앤매너까지 세계관으로 해석해버리면 모든 것을 세계관으로 묶게 된다.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관념을 말한다. 이를 기업의 세계관으로 좁혀 단순화한 것이 ‘문화적 코드’다. 그러니까 애플 광고 속 톤앤매너보다는 애플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세계관에 가까울 것이다. 혁신을 강조하는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가 좋은 참고자료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타벅스가 있다. 스타벅스의 문화적 코드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제3의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 영상을 보면 어떤 뉘앙스인지 감이 잡힌다.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경찰의 의심을 자주 받는 흑인에게 ‘스타벅스 컵을 들고 거리를 걸으라’는 유머 아래에는 스타벅스의 문화적 코드가 흐른다.


[메타버스에서 모든 제품은 살아남기 위해 작품이 된다]

물론 세계관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 가상 공간을 만들면 고객은 기업이 지향하는 스타일을 한눈에 익히게 된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니까. 게다가 가상 공간은 세계관을 표현하기에 오프라인보다 유리한 지점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우주를 표현하든, 광활한 초원을 표현하든, 거대한 미로를 만들든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이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주얼과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물리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력이나 마찰력 등의 자연법칙도 가상 공간에서는 개발자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력을 0.5배만큼 줄인 상태에서 술래잡기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백화점 모양을 역삼각형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세계관에서 상상 가능한 무엇이든 구현 가능하다. 

세 번째는 실용성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타버스에서 의자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아바타에게 정말 의자가 필요한가? 다리가 아플 리도 없는데 말이다. 필요하다면 오프라인의 의례를 그대로 가져온 형식적인 필요일 가능성이 크다. 오프라인에서는 의자를 만들기에 적당한 소재와 몸무게를 받치는 구조, 인체공학적 디자인 등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기본을 갖춘 다음에야 심미적인 요소를 덧붙인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의 의자는 실용적 기준이 무의미하다. 물론 너무 불안정한 구조라면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의자 제작에 있어 실용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없이 줄어들 것이다. 실용성이 사라지고 나면 거의 모든 제품 제작 원리의 근간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예술이다. 캐릭터는 싸고 튼튼한 의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쁜 의자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의자를 ‘원한다’. 즉, 메타버스에서 이케아의 무난하고 저렴한 의자는 팔리지 않는다. 이케아가 내세워야 할 강점은 북유럽 디자인과 조립하는 재미일 것이다. 이제 의미가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용가치는 제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의미를 증명하는 제품, 아니 작품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에서의 작품은 오프라인의 작품과 다르다. 오프라인에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변수는 희소성이다. 그래서 미술품시장에서는 원본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유명 작가의 경우 원본의 복사본인 ‘에디션(판본)’을 생산할 때 개수에 제한을 둔다. 반면 디지털에서는 작품이 더 많이 복제될수록 높은 가치를 지닌다. 작품보다 사람의 관심이 더 귀한 세상이기에 가치는 인지도와 비례한다. 그 인지도를 높이려면 작품은 널리 공유될 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치 있는 것만 복제하고 소유하고 공유하니까.


그래서 메타버스에서 기업의 작품 하나하나는 기업의 세계관을 의미에 녹여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업은 세계관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는 DNA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설령 내부에서 어느 정도 빌드업을 한다고 해도 모든 사물이나 건물 하나하나를 기업이 직접 만들 순 없다. 외부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은 필연이다. 가령 이케아의 의뢰를 받은 크리에이터는 당연히 이케아 세계관에 기반한 아트워크를 선보이게 된다. 작품이 놓일 메타버스에는 이케아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있으니까. 앞으로 메타버스는 특정 브랜드 기반의 커뮤니티를 위한 창작물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세계가 될 것이다. 


[세계관, 브랜드 커뮤니티의 씨앗] 

이러한 브랜드 커뮤니티의 씨앗은 세계관이다. 그런데 꼭 세계관이어야 할까? 만약 ‘스토리가 중심이 되면 안 되냐’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스토리는 작가가 오프닝과 끝을 만들어놓은 닫힌 세상이다. 닫힌 세상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지만, 모인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가 어렵다.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소극적 리액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차 창작도 가능하겠지만, 마니아의 영역이다. 

반면 세계관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이자, 누구나 창작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정리된 레시피이다. 커뮤니티에 모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할 잠재력을 지닌 것이다. 스토리의 목적은 소비되는 것이지만 세계관의 목적은 창작하는 것이다. 

창작은 캐릭터의 숙명이기도 하다. SNS에 아무 게시물도 생산하지 않는 계정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령 계정이라 불린다. 폰으로 찍은 사진이든, 한 줄짜리 글이든, 하다못해 이모티콘 댓글이든 무엇이든 창작해야 캐릭터로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계속해서 무엇이든 만들어야 한다. 2년 동안 활동이 없으면 휴면회원처리 되듯,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캐릭터에게 세계관은 생명수와도 같다. 아무리 마셔도 줄어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이 마실수록 불어나 커뮤니티를 윤택하게 만든다.


[오프라인을 닮아가는 메타버스 공간]

메타버스는 거대한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디지털 공간에 오프라인의 역할을 부여한다. 바로 ‘발견’이다. 가령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차피 온라인에서 결제할 거라면 오프라인 서점은 불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오프라인 서점은 발견의 공간이다. 평소의 나라면 전혀 고르지 않았을 분야의 책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시장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 우리는 시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어떤 물건이 있나 구경하고, 시식코너도 기웃거렸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세일 코너에서 삼겹살을 집어 온다. 오프라인은 의외성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기존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이 의외성을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2차원 공간에, 그래픽 해상도도 낮아 실제로 돌아다니는 듯한 감각을 재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이 문제들을 해결한다. 3차원 공간에서 앞뒤 좌우 어디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조금 낮은 단계에서 구현한 매체가 오픈월드 게임들이다. 예를 들자면 <God Of War 4>는 무제한에 가까운 프레임으로 영상을 재생하고, <GTA 5>에서는 게임 내 모든 사물이나 캐릭터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The Witcher 3>가 구현한 도시는 놀라운 사실감으로 실재하는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 우리가 거대한 디지털 공간에서 의외성을 발견하는 미래는 바짝 다가왔다. 필요성도 있고, 기술도 있으니까. 남은 것은 누가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공간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관으로 흥행산업의 리스크 회피하기]

기업 입장에서 세계관은 안정적인 수익의 기반이기도 하다. 기업이 고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그때그때 유행하는 장르, 가령 하이틴 웹드라마를 제작했다가 또 유행이 바뀌면 중세 로맨스 판타지 만화를 선보인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장르를 좋아하는 고객이 유입될 수는 있겠으나 기업과 접점이 미비하다. 게다가 콘텐츠 산업은 태생적으로 흥행산업이다. 아무리 퀄리티가 좋아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와 반대로 우링 기업에 특화된 세계관을 만들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된다. 기업 세계관은 기업의 문화 코드와 장점, 브랜드 정체성 등이 녹아있기에 연결점이 확실하다. 

또, 하나의 세계관에서 여러 콘텐츠들이 파생되기에 웹소설을 봤던 사람이 음악을 찾아듣고, 영화도 보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나 너무 익숙한 콘텐츠에 열광하지 않는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적절히 배합하는 건 대중문화의 기본 공식과도 같다. 그래서 익숙함을 담당하는 세계관과 새로움을 담당하는 콘텐츠는 구조적으로 탄탄하다. 게다가 하나의 세계관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면 팬덤이 형성된다. 기업 입장에서 팬덤이란 고정수요층이고, 고정 수요층이 생기면 예측이 쉬워진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수요량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데이터가 마련되는 것이다. 


[세계관의 거주민과 관광객] 

고정수요층이 세계관의 거주민이라면,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관광객이 있다. 관광객은 세계관을 속속들이 즐기는 대신, 가족이나 연인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길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세계관을 찾는다. 1020 세대의 콘텐츠 감상 패턴에도 이러한 관광객스러운 목적이 숨어있다. 영화를 1.25배속으로 감상하고, 드라마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감상하는 이유는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관광객에게 콘텐츠는 대화의 소재이자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한 윤활유다. 누군가 2023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화 후기를 얘기하면 그 사람이야 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창작자는 작품의 퀄리티나 테마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적당히 즐기기에도 적합한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멀티버스가 주요 테마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복잡한 화면 전환에 앞서 엄마와 딸이라는 가족을 먼저 부각시킨 것처럼. 메타버스에서도 갑자기 낯선 AI를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안내요원으로 강아지 로봇을 앞세우거나, 미니게임으로 간단한 체험을 유도하는 등의 장치가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을 수 있다. 사람들끼리 세계관 내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놀면서 콘텐츠를 창작하는 단계는 그 다음 단계에 진행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러한 장치는 거주민과 관광객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끈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사람은 거주민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왜 굳이 스타벅스의 프리퀸시를 모으는지, 아이돌 생일에 왜 팬들끼리 모여 카페를 가는 건지 등등. 문화적 코드를 합리성이나 효율성의 잣대로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어 팬이라면 프리퀸시를 하나 공짜로 준다고 해도 거절하기도 한다. 이걸 모으는 과정이 즐거움의 원천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또 이런 예시도 있다. 내 여자친구가 어떤 아이돌의 팬이라서 티켓을 예매하려고 했는데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암표라도 구해서 주려고 한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암표는 절대 안 된다”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티켓의 정가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행위가 아이돌 팬덤 생태계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공연을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질서를 교란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다. 이때 여자친구는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강한 팬이다. 


[다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물론 세계관 제작이 팬덤 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계관이 팬덤이라는 건물을 올리기 위한 기초 공사로 작용하기 때문에 계속 언급이 되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홈페이지나 앱을 만든다고 해서 사업이 대박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가 모여들 기반이 없으면 사업으로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여기에 IT 기술 발달도 한몫한다. 가상 캐릭터와 가상 공간을 만드는 비용은 갈수록 더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내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가상의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것도, 캐릭터를 NFT로 비즈니스화하는 사업이 한국에서도 선을 보이고 있다. 또, 디지털 세상의 멋진 점은 많은 것들이 오픈소스로 공유된다는 사실이다. 복제될수록 생명력이 커진다는 일종의 디지털 준칙에 따라 앞서 말한 기술들이 여러 개발자와 사용자에 의해 사용되고 보완되고, 진화한다. 전 지구적 스케일로. 물리적 현실인 오프라인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해내려면 비용에 0이 몇 개는 더 붙어야 할 것이다. 이제 크리에이터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얘기하면서 메타버스가 가져올 변화를 종종 유튜브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타버스가 가지는 함의는 그보다 방대하다. 유튜브가 모바일 시대에 상징적인 킬러 앱이라면, 메타버스와 창작자 커뮤니티는 모바일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산업으로서 빛을 발한다. 모바일이 거의 모든 산업군에 변화를 강요했듯이, 메타버스도 그러할 것이다. 



편집 :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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