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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렸다.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내였다. 둘째가 그렇게 되었을 때에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던 아내였다. 그런데 눈물이라니. 처음 아내의 눈물을 보았던 건, 처음 만난 아내가 내 글을 읽을 때 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여자친구니 결혼이니, 모든 걸 잊고 혼자인 게 편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아내에겐 관심이 없었다. 관심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세상에 자신 있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그것뿐이었다. 신문사, 잡지사, 아니면 홍보회사 등등 공장처럼 글을 찍어내서 판다는 회사는 다 기웃기웃거렸다. 내 글 좀 읽어보시라고. 첫 문장이라도 읽어보라고.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합격도 불합격도. 차라리 대답이나 해주면 기대라도 내려놓을 텐데. 한 문장도 읽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런 글에 아내는 눈물을 흘려줬다. 고독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나.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조차도 내가 처음 쓴 소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저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예술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눈물이 많거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었던 사람인, 당시의 아내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왜 우세요라고 물어봄 직 했지만, 나는 물어보지 않는 것이 무언가 서로의 감정을 깊이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면 간단하게 눈물의 의미를 묻는 건 대단히 촌스럽다고 생각했거나. 어떻게 생각하든 겉멋만 들었던 그런 나이였다.
또, 아내 역시 눈물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막걸리 잔 앞에 아내가 주저리주저리 했던 말을 정리해봤을 때, 이유는 손에 잡히진 않지만 어스레히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짐작할 수 있었다. 유년시절이 힘들었다든지, 음악이 잘 안된다든지, 음악으로 고독을 표현하고 싶다든지. 여하튼 그때 그게 아내의 첫 번째 눈물이었다.
얼떨결에 나는 아내와 같이 음악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타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드럼이야 많지 않냐는 내 반문에, 아내는 드럼이야 많지만 국악에서 타악기를 다루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아내는 퓨전 국악이라는 장르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악도 어려운 판국에, 그 시절에 퓨전 국악은 미친 짓이었다. 나는 그때, 내 삶이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함께 하기로 했다. 글은 예술과 멀다 생각하고, 나는 예술하는 사람들을 좇기로 했다. 아내의 눈물이 궁금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