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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었고 나는 집을 잃었다

by 양독자


그날은 퍽 이상한 날이었다.


새해 첫날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 번째 평일. 해가 바뀌었다고 내가 바뀌진 않았다. 신년 필수 아이템인 설렘과 기대감을 의무적으로 챙겼을 뿐이다. 미리 사둔 다이어리를 호기롭게 펼치며 1년의 동행을 약속했고, 덕분에 바닥을 밑돌던 에너지가 보기 드문 상승 곡선을 그렸다. 기분이 저공비행을 하는 듯 둥실거렸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301호 세입자죠?”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 발신인은 다름 아닌 집주인이었다. 그녀(집주인은 여자다)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건, 꼭 4년 만이었다. 간섭이 없는 임대인과 요구사항이 없는 임차인은 서로의 육성을 들을 기회가 흔치 않다. 갑작스러운 집주인의 연락.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몇 년의 자취, 몇 번의 이사, 몇 명의 집주인. 모든 걸 겪은 세입자의 슬픈 예감은 비껴가는 법이 없다.


“나 집주인이에요.”


스스로를 ‘나’라고 지칭하는 그녀. 셀프존칭화법을 동반한 집주인의 고자세에 살짝 미간이 구겨졌다.(이건 무주택자인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녀는 내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월세로 전환하고 싶다고 했다. 관리비를 인상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치킨에 추가하는 치즈볼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녀는 ‘임대 수익 증대’를 올해 목표로 삼은게 분명했다.




이 집에서 나가겠습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월세를 내거나, 이사를 가거나. 집주인에게 며칠간 생각할 시간을 부탁한 뒤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예의상 해본 말이었다. 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여기서 계속 지낸 이유는? 순전히 내가 게을렀기 때문이다. 마지막 번복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고자 했으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제는 불편함이 귀찮음을 이겼다. 그것도 아주 가뿐히.


나는 지친 상태였다. 네 걸음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 좁은 원룸에 지쳤고, 계란프라이와 라면을 동시에 조리할 수 없는 1구짜리 하이라이터에 지쳤고, 장마철만 되면 제습제를 가뿐히 무시하는 곰팡이에 지쳤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원룸이길 바라며 찍었다


나는 당시 ‘묵시적 갱신’ 상태로 거주 중이었다. 이는 계약기간(보통 2년)이 종료된 후 서로 간 계약 해지에 관한 언급이 없어 그대로 계약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임대인 혹은 임차인이 퇴실 의사를 밝히면 3개월의 유예 기간을 받는다. 그리하여 나에게도 석 달의 여유가 생겼다. 새 보금자리를 찾기에 빠듯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널널하지도 않은 시간이다. 세상에 쉬운 이사는 없다. 그것이 나만 생각하면 되는 '1인 가구'라도. 내 앞에는 결정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줄지어 있었다.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지? 다른 지역에서 살지?

전세로 살지? 월세로 살지?

원룸에 살지? 투룸에 살지?

이참에 집을 살지! (이제는 나도 집주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내가 원하는 집이 나를 원할 확률 = 0%


이번 집은 적어도 이랬으면 했다. 청소 의지를 꺾어버리는 지워지지 않는 찌든 때는 없었으면 했다. 헹거나 싱크대 근처에서 잠들진 않았으면 했다. 꽃무늬 벽지와 체리몰딩 인테리어는 아니었으면 했다. 밤에도 무섭지 않도록 큰 길가 혹은 대로변이었으면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므로 역과는 멀지 않았으면 했다. 요약해 보면 조건은 이랬다.


1.5룸 혹은 투룸

역에서 10분 이내

신축은 아니어도 깔끔한 화이트톤

최소 3층 이상

안전한 주변 환경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요구사항이 늘어갈수록 월세가 10만 원씩 올라갔다.(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있다) 대단한 집을 바란 것도 아닌데 집세는 대담해져 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아쉽게도 이럴 때만 해당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최저 주거기준’이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 법적으로 정해진 셈이다. 1인 가구에게는 1개의 침실과 부엌이 존재하는 14제곱미터를 넘긴 공간이 필요하다고 나와있다. 대략 4.2평짜리 원룸이다. 아마도 이 법령을 만든 양반들은 4평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몰랐음이 틀림없다. 나는 또다시 법적 기준을 겨우 넘는 집에서 돈을 모으며 살아야 하나?




어디선가 들었는데 30대가 넘어가면 집이라는 공간이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한다. 아니, 전적으로 동의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집에 계속 살았다간 도리어 내 컨디션이 악화될 것 같았다. 행복함까지는 아니어도 피폐함은 느끼지 않을 주거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락함과 쾌적함은 비싸다. 이 감정들을 소유하려면 얼추 100만 원 정도의 주거비를 지불해야 한다. 재테크에 잼병인 나는 ‘아껴서 벌자’라는 신조로 살아왔기에 매달 큰 고정비용을 지출할 생각을 하니 손이 덜덜 떨렸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3개월의 유예기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나는 문득 ‘그곳’으로 주거지를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것은 퍽 이상한 묘책이었다.





<다시 캥거루가 되었습니다>에서는 갑자기 캥거루족으로 돌아간 다 큰 자식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캥거루족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계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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