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30일째. 모든 사랑이 끝나듯

어떤 슬픔에도 끝은 있겠지만

by 하마

모든 이별 이야기의 완결은 눈물을 닦으며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결말들을 볼 때마다 뻔하다고 여겼지만 솔직히 나의 이야기 역시 그렇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난 여전히 미치게 슬퍼요’ 같은 결말은 너무 절망적이니까. 그렇기에 너무 오랫동안 이 이야기에 완결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픔이 사라질 거라고는 오랫동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연재의 편의성을 위해 '이별 후 며칠째'로 구분했지만 이별 후 실제로 지난 시간은 그보다 길다. 마지막 '30일째'의 글을 쓰는 오늘은 실제 헤어진 날로부터 130일이 지났다. 초반에는 일기처럼 실제 날짜에 글을 썼지만 시간이 지나며 텀이 생겼고, 이후에는 매일 글을 쓸 만큼 이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는 30일이 지났는데 왜 이 사람처럼 괜찮아지지 않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봐 밝혀둔다.


전 남자친구의 외도로 헤어진 지 네 달이 지난 지금도 완벽히 괜찮아지는 않았다. 아마도 누구든, 얼마나 시간이 지나든 완전히 나아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바람피운 전 애인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속상하기도, 섭섭하기도, 불쌍하기도,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이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씁쓸한 기분이 된다. 여전히 그의 외도를 납득할 수 없고 우리의 관계가 왜 그런 결말을 맞아야 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관계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닦고 일어서기까지 걸린 시간

헤어진 직후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까지 3시간

친구들에게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하기까지 7일

불쑥 터지는 울음이 잦아들기까지 15일

엄마 아빠에게 이별을 털어놓기까지 21일

손 놓았던 업무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32일

소개팅 어플에 가입하기까지 35일

다시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시작하기까지 100일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상처에 조금씩 딱지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 생경하고도 기꺼웠다. 한 달보다 두 달째, 그리고 세 달째가 되면서 슬픔이 둔해지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을 여유도 생겼다. 대신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는 뉴욕의 싱글 여성들이 가진 불안감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독신여성이 집을 매매하면서 수많은 '미혼' 체크박스에 체크하고, 고독사 관련 뉴스를 보며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혼자 외롭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주인공 캐리는 그 대신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책도, 동행도, 선글라스도 없이 당당히 점심 식사를 즐긴다. 몇 명이냐고 묻는 웨이터에게 싱긋 웃으며 'Just me'라고 대답하며.


헤어지고 눈물이 그친 뒤 1~2달 동안은 얼른 다음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공백이 길어지면 스스로가 아직 이별을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몇 달을 넘기면 몇 년도 훌쩍 지날 것 같아 두려웠다. 시간 날 때마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밤에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과 잦아드는 슬픔과 커지는 불안감에 떨었다.


보통의 데이트와 최악의 데이트를 번갈아 하면서 지쳐가던 어느 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여도 괜찮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외롭고 심심하긴 하지만 오늘부터의 나는 더 이상 연애를 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고장 났을까 봐 불안하지는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치유는 예고도 없이 이토록 갑자기 찾아왔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도 열렸다. 헤어진 지 100일째에, 온전히 혼자임을 받아들인 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 ‘처럼’

어떤 경험은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나는 이별의 경험이 나를 바꿔버렸을까 봐 두려웠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핸드폰을 매일매일 검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털어내지 못한 채 그 시간만큼 외롭기만 하면 어쩌나. 괴로움이 지나가지 않고 내 안에 머물러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고통의 시대는 자연스레 지나갔지만 아직 흉터는 남아있다. 배신을 당하면 사랑한 만큼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연애를 새롭게 시작한 지금 내가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덜 좋아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연애가 끝났을 때 덜 아프도록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전 애인과 매번 같이 다니던 모임에 이별 후 처음으로 애인 없이 혼자 가게 된 날, 내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분명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데, 분명 헤어지기를 잘한 일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왜 기분이 우울한 걸까. 왜 아직도 가끔 이렇게 서글플까.

이번에 겪은 이별은 나에게 그 어떤 감정도, 어떤 행복도 끝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어떤 신뢰도 완전할 수 없고 어떠한 마음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과거에도 지금과 똑같이 행복했지만 이토록 아프게 끝나지 않았느냐고, 또 바보처럼 누구를 믿기 시작한 거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나를 다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이별이.

한번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매번 실패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처음 걸음마를 떼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처음 빠질 때보다 더 큰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애인이 나에게 한 가장 큰 잘못은 불신이라는 씨앗을 심어준 것이다. 믿었던 누군가가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걸 모른 채로 줄 수 있는 마음과 알고 있는 채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은 결이 달랐다.

누군가가 할퀴고 간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상처가 늘어나고 나는 점점 무뎌지거나 반대로 겁에 질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에 다시 빠지기로 결심했다.


이별을 지나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재해를 겪고 일어나는 과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쌓아 올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무너졌을 때, 망가진 추억을 정리하고 마음을 재정비하고 다시 설렐 준비를 시작하는 것.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덮은 뒤 다시 움직이는 것. 재난이 할퀴고 간 삶을 일으키는 것. 실연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 그저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관계란 언제든 예상치 못하게 무너질 수 있고, 그 폐허에 갇히는 것은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영원할 것 같은 이별의 괴로움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모든 사랑이 언젠가 끝이 나듯 실연의 괴로움에도 반드시 끝은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이번 이별의 경험에서 잊지 않고 온전히 기억해야 할 진실은 오직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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