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먼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덤덤하게 건네던 열한 살의 소녀가,
중학교 시절 서로의 애칭을 만들어 교환일기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던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네가,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SKY대학은 너희 때문에 일부러 안 간다며 별빛 아래 잔디밭에서 백일주 마시며 웃고 울던 우리가,
찬란한 봄날을 같이 보고 싶었다며 벚꽃 잎을 한가득 싸와서 뿌려주던 세상 일등 로맨티시스트였던 그대가,
고작 보름을 떨어져 있는데 일 년 동안 못 만난 듯 편지를 써붙여서 이미 귀국해서 만났건만 한동안 집으로 계속 오던 그의 편지가,
어느 겨울밤, 전화도 없고 버스가 끊겨 먼 길을 벌벌 떨며 걸어온 나를 유일하게 기다리던 당신의 방 불빛이,
모든 나를 포기하고 오로지 너의 엄마로 지내는 나에게 매일 함박웃음으로 폭풍 같은 감동을 주던 너의 맑은 눈동자가,
어디서 무얼 하든 가장 큰 믿음으로, 가장 큰 응원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아는 나의 뿌리 깊은 울타리가,
너랑 얘기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아침 함께 마시던 너와 나의 짙은 커피 향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나를 불러 말없이 차려주던 잊지 못할 당신의 하얀 쌀밥과 따뜻한 된장찌개가,
그렇게 어느 날 내게 와서 멈춘 당신의 깊고 푸른 마음이.
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수학적 진리와는 달라서 100퍼센트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는 꽤 비슷한 상태를 가리킨다. )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러나 한 예술가를 평가할 때 그런 기술적인 요소들보다도 언제나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다. 그런 통찰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만이 진실한 감정을 창조해 낸다. (27~28)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존재의 내부와 존재 자체를 통찰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 즐거움이다. 내부에 있는 힘과 존재 자체의 힘은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파괴되기도 쉬운 맹목적인 힘이다. 그 변화의 힘과 통찰력의 빛을 이어주는 법을 의식적으로 배울 때 비로소 자신을 창조적인 존재로 느끼기 시작한다.
- 줄리아 카메론, <The Artist's Way>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수많은 가슴속에서 불변하며 찬란할 생명의 불꽃이기에.
꺼져도 꺼지지 않을 가장 처음이고 가장 마지막인 유일한 사랑이기에.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나를 태우고 작은 불씨를 피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