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지리산둘레길은 오미마을에서 북쪽 방향으로 걷는 오미-방광 구간과 남쪽 방향으로 걷는 오미-난동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나는 오미-방광 구간을 17코스라고 하고 오미-난동 구간을 17-1코스라고 하고 싶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북쪽 길은 숲 속과 산능성이를 걷는 멋이 있다면 남쪽 길은 계절을 잘 맞춰오면 한껏 아름다운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 각각 매력이 다르다.
나는 2016년 4월, 벚꽃이 만개한 시기에 오미-난동 구간을 걸었다. 2015년에 둘레길 종주를 마치고 난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일부러 꽃피는 시기에 걸으려고 아껴두었다.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꽃구경을 한 시기이다. 평생 볼 벚꽃을 다 본 것 같다.
오미에서 난동까지는 18.9킬로이고 난이도 '하'로 보통 7시간 걸린다는데 내 걸음으로 그보다 짧게 걸을 수 있을 정도이다. 대부분이 높낮이가 없이 서시천을 끼고 걷는 산책로이다. 나는 오미-난동 코스를 다 걷지는 않고 꽃길이 펼쳐진 서시천을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둘레길 한 코스를 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걸은 킬로수는 둘레길보다 더 길다. 강을 따라서 쭈욱 올라갔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쭈욱 내려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역주행으로 이 코스를 다시 걸어볼 생각이다. 기왕이면 꽃 피는 시기에 맞추어 가려고 한다. 대신 이른 새벽에 움직여 걷기 시작할 것이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교통편은 오미와 난동 모두 구례에서부터 버스가 다니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하다. 버스는 하루 5~6번 있다. 오미와 난동 모두 차를 세워둘 만한 공간은 없다.
먹거리는 구례읍을 지날 때 길 건너면 식당이 많으므로 이용할 수 있고 광의면에도 길가에 식당이 좀 있다. 숙박은 오미와 구례읍에 많다.
이런 길을 걷는다. 그냥 이렇게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걷는다.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벚꽃 잎이 흩날리고 개나리가 방긋방긋 웃고 있다.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이다.
정작 지리산둘레길 구례 센터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앞에 펼쳐진 풍경 사진만 잔뜩 찍었다. 지리산둘레길은 남원 구역, 함양 구역, 산청 구역, 하동 구역, 구례 구역의 총 5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리산 자체가 워낙 커서 전라북도, 경상남도, 전라남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각 구역에 센터가 있고 중간중간 안내소도 있다. 내가 가본 곳 중에는 구례 센터가 가장 컸다. 여기서 정보도 얻고 지도와 스탬프 책자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태풍이 지나간 후나 장마가 지나간 후에는 길이 폐쇄되거나 우회로가 생기는 경우가 있으므로 센터에 들러서 정보를 확인하고 가자. 지금도 몇 군데는 길을 우회해야 한다고 한다.
벚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가운데 유독 분홍빛을 자랑하는 꽃이 피어있다. 무언가 찾아보니까 복사꽃이란다.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 중 그 복숭아꽃이 이 꽃이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색이 강렬하다. 그러면 이 나무에서 복숭아가 열릴까? 검색해 보니까 관상용으로 개량된 것도 있단다. 어쨌든 얘도 예쁘다. 여기는 지금 이쁜 것들 천지다.
맞은편은 19번 국도인데 그쪽에도 벚꽃길이다. 서시천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꽃들이 난리가 났다. 꽃들도 난리가 났지만 차들도 난리가 났다. 꽃은 벌과 나비만 유인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유인한다. 그래서 내가 둘레길을 걷고 있을 때 맞은편은 차들이 걷고 있었다. 이 시기에 여기에 오려면 새벽에 움직여 차를 대놓고 낮에는 걸어야 한다.
빨강머리 앤의 만화 버전에서 꽃터널을 지나는 장면이 있다. 여기가 그런 길이다. 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나무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은 무게감은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꽃터널의 기분을 만끽하면서 걸을 수 있다. 몇 년 더 지나서 나무들의 굵기가 굵어지면 여기는 더 멋진 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둘레길은 서시천을 끼고 걷다가 서시 2교 밑을 지나 광의면으로 향한다. 그런데 다리 밑을 지나다가 뱀을 보았다. 아니 왜 이런 곳에 뱀이? 잘은 모르겠지만 얘도 다리 밑을 지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서로 놀라서 얼른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진은 찍었다. 지금까지 둘레길을 걸으면서 뱀을 4번 정도 보았는데 유일하게 제대로 사진을 찍은 장면이다. 나머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기 바빴다. 여기는 수풀이 아니라 그나마 뱀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
서시 2교에서 턴하여 다시 구례읍으로 돌아왔다. 아까 걸었던 길의 맞은편을 걷는다. 꽃구경은 좋았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강변길이라 좀 지루했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것이 비가 내릴 것 같았다. 포장된 길을 계속 걸으니 발바닥도 아팠다. 이것저것 온갖 핑계를 대면서 돌아왔다. 하지만 나중에 살짝 후회가 되었다. 둘레길 구간 중에 내 발로 걷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너무 예쁘게 피어있는 민들레꽃과 홀씨 되어 날리기 직전의 민들레를 보았다. 어쩌면 이리도 색이 고울까 싶다. 그리고 서시천을 가로지르는 근사한 징검다리도 보았다. 곡선미가 예술이다. 저 멀리 아까 걸었던 벚꽃길이 보인다.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은 벚꽃 구경을 원 없이 했던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 구간은 여름에는 걷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벚꽃이 피는 3월 말이나 4월 초에 걷거나 아예 가을에 가도 좋을 것 같다. 서시천을 따라 걷는 길이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대신 편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이 구간을 다 걷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지만 아직도 걸을 구간이 남아있다는 약간의 여지도 남겨준다는 의미가 있다. 재밌는 것은 서시 2교에서 광의면, 구만리, 난동리로 이어지는 나머지 부분은 피아골에서 며칠 지내면서 차로 열 번을 넘게 지나갔다는 것이다. 근처의 맛집도 찾아가고 근처의 지리산정원과 구만제도 찾아가면서 지나가게 되었다. 마치 만나게 될 인연은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암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