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압력' - 01화 '나의 하루'
참혹한 현실 앞에 무력하다. 호흡을 하나 숨을 쉬지 못한다.
변변찮은 하루하루의 축적 속에 '나'는 생존의 연속성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한줄기 희망조차 가려진 칠흑의 어둠 속에 버려진 '나'는 어느 날 이상한 공간을 찾게 되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 가슴 저린 그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길 소망한다.
그녀가 환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놀랍고 반가운 맘에 와락 그녀를 안았다.
그 생생함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기뻐서 울고 꿈이라서 울었다.
.....
검은 방에서 눈을 떴지만 세상도 검어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을 비추는 달빛에 꼼짝 않던 나의 육신에 한 부분이 작동한다.
골목너머 들려오는 창백한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다.
아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고독한 모습은 나의 모습이다.
텅 빈 방에 생명체는 이 녀석뿐이다.
본체에 갈라 나와 길게 고개를 숙인 지리홍의 잎이 나를 흘겨본다.
어떻게 죽지 않을까 어떻게 죽지 않을까
나는 화초의 킬러, 살아있는 것들의 사신(死神)인데.
그녀는 어떻게 살려 냈을까 이 모든 것을.
차가운 현관문을 열고 길을 나선다.
편두통의 맥놀이는 이제 친숙하다.
폐에 고인 오염된 공기를 토해내고
나는 다시 혐오의 공간으로 기어든다.
생산공장의 일손이 모자라 직원 차출 명령이 떨어졌다.
명단 작성의 용지가 각 부서로 배달된다.
반강제의 배정이 시작되고 수군거림은 순식간에 전파된다.
대표이사의 확인전화에 억지웃음의 비굴한 대답을 한다.
"오버하시네 팀장님."
뜨거운 수화기를 내려놓고 적당한 명단을 재작성한다.
"오버하시네 팀장님."
어둑한 거리를 나선다.
어스름한 거리의 동선을 정확히 리와인드한다.
오늘따라 편두통의 맥놀이는 절정에 치닫는다.
표시선까지 가득한 혐오의 공기를 힘겹게 토해낸다.
나는 끝나지 않는 궤도의 어느 지점에 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