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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y 26. 2019

죽음, 실패 박물관? 한 장으로 보는 박물관의 역사

수집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장이 되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박물관은 어딘가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이탈리아로 출장 간 아빠를 따라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일해야 하는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는 나와 내 동생 손을 꼭 잡고 한 달간 유럽을 누볐다. (엄마도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젤라또를 쭉쭉 빨며 고스란히 여름의 태양을 온전히 맞은 채 종횡무진 쉬지 않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퍽이나 한국이라는, 집이라는 공간이 그리웠다. 

무수히도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들렀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루브르 박물관이다. 전시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던가 공간이 주는 압도감이라던가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정말이지 조그마한 모나리자 앞에 벌떼같이 모여 움직이기도 힘든 다닥다닥함과, 도무지 끝나지 않는 전시품의 행렬과, 무엇보다 나가고 싶은데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마냥 헤매었던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상징적인 유리 피라미드


전 세계 202개국에 55,000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다. 생각해보면 참 특이한 공간이다. 특정 주제의 작품을 모아놓고 대중에게 보여준다니. 이 발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수집의 역사에서 시작된 박물관



수집 본능

수집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면 까마귀도 둥지에 반짝거리는 것을 모으는 습성이 있다. 이처럼 '수집'이라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다. 석기시대 유적지를 발굴해도 조개껍질, 특이한 형태의 돌 등의 애장품이 한쪽에 고스란히 모여있는 흔적이 발견된다. 지금도 우리는 피규어, 각 국가의 스타벅스 텀블러, 읽지도 않을 책, 우표, 병뚜껑까지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것을 모으고 있다. 바로 이런 '수집에 대한 본능'이 현대 관광사의 한 축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취미, 수집

특히 왕조를 포함한 부유층이 주로 수집을 많이 했다. 대표적으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하는 모든 선박을 뒤져서 서적을 압수한 후 몇 달이 걸리든 필사하고, 원본은 돌려주어 장서를 수집했다. 이 방식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서관이 되었다.

(좌) 과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상상화, (우)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교회와 수도원에서도 다양한 보물을 수집한 흔적이 있다. 수집품에는 곤충이나 조개껍질 같은 자연물도 있었는데, 이것이 신이 만든 진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대왕 사후, 헬레니즘 시대에 특히 미술품의 수집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떤 수집광이 자신의 수집품을 유료로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 박물관의 전신이다. 로마 군사가 정복한 지역의 전리품과 미술품을 수집하여 가정에서 진열하여 본격적으로 사립박물관이 생겨났다. 로마의 폼페이우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신전을 공개한 것 또한 태초 박물관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수집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군주 귀족 등 특정 계층이 향유하는 문화였다. 

카이사르의 신전

수집의 확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수집'이 대중까지 확대된 것은 크게 신대륙의 발견과 프랑스혁명 때문이다. 신대륙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주로 상인과 잡부였고, 이들이 특이한 곤충, 식물, 동물을 수집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다. 

The Storming of the Bastille

그리고 프랑스혁명으로 귀족 계층이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이 프랑스 전역 골동품 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흥 부르주아 계층은 그 물건들을 사모았다. 또한 왕족과 성직자의 물건을 강제로 뺏고, 가장 상징적인 궁궐에 모으고 일반인에게 공개했는데 이것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의 시작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파리시를 지키기 위한 중세의 성체였고, 이후 14세기부터는 왕궁 역할을 했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취지는 대중도 왕실을 편하게 드나들며 다양한 예술품을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경험한 다른 계층도 조약돌에서부터 곤충, 인형 등 다양한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




박물관, 돈이 된다


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난 박물관

어떤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는가? 박물관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펠리페 왕자 박물관은 개장 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 해 관광수익이 무려 2억 유로(한화로 약 2,700억)에 달한다. 

발렌시아의 펠리페 왕자 박물관

2000년에 개장한 이 박물관은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작품으로 고래 뼈를 본뜬 모양이 특징이다. 전시물은 세 개 층에 걸쳐 26,000㎡가 넘는 넓은 면적에 진열되어 있다.

만지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금지
- 펠리페 왕자 박물관의 슬로건


펠리페 왕자 박물관 개장 전 발렌시아에 정박하는 크루즈는 연간 1척이었는데, 개장 후 무려 매년 220척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개관 이후 과학관의 관람객이 10년 동안 2천2백만 명에 달했다.


독일 뮌헨의 거주 인원은 130만 명인데, 뮌헨 박물관 방문객이 무려 140만 명이라고 하니 박물관의 힘이 새삼 강력하게 느껴진다. 독일 하노버 메세(메세는 행사라는 뜻)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박람회로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에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인근 숙박 시설의 비용은 무려 7-10배 가까이 뛰어, 해당 사업 종사자들은 거의 10개월치 매출을 한 달에 올린다. 

하노버 메세 현장 인터뷰


가장 방문객이 많은 박물관?

집계 방식에 따라서 상이하지만, 명실상부 1위 박물관은 단연 루브르 박물관(850만 명)이다. 그 뒤를 브리티시 뮤지엄(580만 명),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박물관은 어떨까? 우리나라 박물관 또한 10위권 내에 든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내외국민 포함하여 연간 300만 명이 방문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학생 단체 관람객의 숫자가 꽤 큰 편이다. 




이색적인 박물관?


사실 문화로서 가치 있는 유품, 예술품들을 찾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굉장히 많이 소비되는 일이다. 최근 개장하는 박물관은 비단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뿐 아니라 다양한 테마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원래 수집이란 사거나 가져오는 특이한 소비 행위인데, 새로운 컨셉의 전시를 기획하여 관람 수익을 얻으면 생산 혹은 투자 행위가 될 수 있다.  



죽음 박물관 (Museums of Death; 미국 LA)

죽음 박물관 정문

LA엔 오직 죽음만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다. 집단 자살 사건, 죽음에 대한 물건, 연쇄 살인마의 기사, 부검 장면, 다양한 사형집행 도구 등이 모여 있다.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여, 오히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대표 전시품으로 ‘천국의 문(Heaven’s Gate)’ 집단 자살 사건을 재현했다. 천국의 문은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았으며 유일한 구원의 길은 자살을 함으로써 혜성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UFO에 탑승하는 것뿐이라고 믿는 사이비 교단이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발에는 모두 나이키 신발이 신겨져 있었으며 머리에는 비닐봉지가 씌어 있었다. 그리고 몸에는 보라색 천이 덮어져 있었다.

천국의 문 집단 자살 사건 현장



실연 박물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설립자인 올린카 비슈티카는 연인인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별을 아픈 기억으로 남기보다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자고 동의했고, 자그레브의 한 컨테이너에서 첫 전시를 개최했다. 

이별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이별과 관련된 물건들을 태운다.
잊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굳이 태워서 없앨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별 박물관의 전시들. 현재 여러 국가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둘의 연인 관계는 끝났지만, 둘은 박물관의 공동 설립자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시회에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라며 치유를 받고, 연인들은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동기를 얻는다는 취지다. 



국제 화장실 박물관 (인도 뉴델리)

이 박물관은 수집광인 인도인인 파터커가 만들었다. 그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다가 인도로 돌아와 참혹한 화장실 상태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는다. 오수로 뒤덮인 바닥, 휴지가 없는 것을 물론이다. 그는 인도의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세계적의 화장실을 인도인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화장실 모형, 그리고 수천 년간 대중이 위생 관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재현했다. 

국제 화장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변기들



실패 박물관 (미국 미시간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이유가 있다.
- 안나 카레니나 중

오직 실패한 작품만을 모아둔 박물관이 있다. 미국 조직 심리학자 사무엘 웨스트가 연 '실패 박물관'. 창시자인 웨스트는 성공한 것은 비슷한 이유로 성공하지만, 실패한 것들에도 너무나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기업에 대한 분석은 난무하지만 실패는 잘 분석되지 않지만, 혁신은 실패의 분석에서부터 나온다.

대표적인 실패 제품에는 보라색, 녹색 케첩, 투명한 콜라 등이 있다.  

보라색 케찹과 투명한 콜라


상류층의 수집에 대한 본능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주제로 발전한 박물관. 미래에는 어떤 형태의 박물관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출처 : 팟캐스트 손에 잡히는 경제 외 (박정호 한국산업경제산업 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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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를 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8년 한 해동안 약 350개의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사람과 사람들의 접점을 이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석유화학회사 환경법, 환경정책 관련 업무

       와인 21 객원 기자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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