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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Jul 17. 2021

오늘 퇴사합니다 <2>

면접을 통해 나와 맞는 회사 선택하기, 그리고 어이없던 면접 일화까지.

선택을 내리는 일이란 늘 두려운 일이다.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먹을지, 아니면 먹다 남은 찌개를 데워먹을지를 결정하는 그런 선택 말고, (물론 그런 선택으로 인해 내가 다음날 퉁퉁 부어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건 두렵지만) 앞으로 내 인생을 결정할 갈림길 앞에 서서 어떤 일을 할지 선택을 내리는 일말이다. 이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물론,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이직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그리고 오퍼를 받아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예전의 나는 겁 없이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의 나는 모든 선택 하나하나에 간을 졸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이 결정을 함으로써 내가 잃는 기회비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빠졌다. 어른이 된다면 좀 더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서른을 앞둔 나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겁도 많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회사가 있고, 어떤 곳은 정말 입사해서 일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게 하는 반면, 어떤 곳은 아, 누군지는 몰라도 이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사람은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도 있구나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저 나를 써주겠다 하는 곳이라면 "아이코, 미천한 저를 채용해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하며 감사히 다녔는데. 슬프게도 사회 초년생 햇병아리는 속세에 치여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그만 눈이 뜨여버린 것이었다. 물론 저마다 사람에게 맞는 조직생활이 있다. 나한테 편안한 곳이라고 해서 그 조직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연봉과 복지, 재밌는 프로젝트, 친근한 팀 내 분위기 등등 이상적인 회사의 조건은 참으로 많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회사들에는 장점도 많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단점들도 많았다. 한 회사는 재밌는 프로젝트가 참 많았지만 백인 남성 위주로 꾸려진 임원진들은 동양인 여성 직원에게 발언권을 쉽게 내주지 않았거나, 어떤 곳은 좋은 연봉을 제시하지만 회사 내 정치싸움이 심하고 서로 헐뜯는 분위기가 팽배해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이들이 많았다. 


한 때 SNS에서 돌아다녔던 불쾌했던 면접 일화, 한 두 개씩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니 아버지 뭐하시니?'에서 시작해서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둘 것이냐'며 지원자의 외모 지적까지 하는 안하무인 면접관 썰. 나도 겪어본 적 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두 번쯤 들어보았을 회사 리크루터가 연락이 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었는데 내가 관심 있는 회사도 아니었을뿐더러 이곳으로는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 딱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던 차였다. 면접관의 스케줄에 맞추어 금요일 낮에 급한 회사 업무를 마무리 짓고 점심도 거른 채 화상 인터뷰를 했다. 두 번째 라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담당자 둘은 내 지원서도, 내 포트폴리오도 사전에 검토하지 않은 채 면접에 들어와 꽤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면접 시작 후 부랴부랴 내 지원서를 읽으시느라 바빠 침묵에 쌓인 그 5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면접을 보면서 꽤나 인상 깊었던 질문들도 있었다. 



면접관: 지금 회사는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거죠? 

: 3년 동안 이 회사를 다니며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주니어 디자이너로써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고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일하며 귀중한 경험을 키웠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다른 업무 환경에서 제 성장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면접관: 그럼 우리 회사에서 일하며 6개월 정도 일을 다 배웠다고 칩시다. 그럼 바로 그만둘 건가? (코웃음 치며) 

: 물론 그건 어느 회사인가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6개월 정도면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적응을 마친 상태일 거고 능숙하게 프로젝트에 임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더더욱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

면접관: 유학생 치고는 꽤 영어를 하네요, 어디서 영어를 배웠죠?

: 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온 가족이 해외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면접관: 아버지가 뭘 하시는데요? 

나: ...

...

면접관: 우리 회사는 꽤 일이 많아서 주 5일 야근을 해야 할 거예요. 자신 있어요? 

나:...(그럼 사람을 더 뽑던가, 야근 수당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

면접관: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금요일 오후 2시인데, 한창 일해야 할 시간 아닌가요? 

: 네 면접 스케줄에 맞춰 오전에 업무를 마쳐놓고 시간을 비워놓았습니다. 

면접관: 우리 회사는 이렇게 딴짓하고 그럼 안돼요, 아셨죠? 

나:...(내적 한숨) 


면접이 끝난 후 한 동안 아무 연락이 없다가, 공휴일을 앞두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디자인 테스트를 보자고 하는 무례함까지. 기가 막혀 정중히 지원을 하지 않겠다 의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그 회사는 몇 달뒤 다시 연락이 와 인터뷰를 보자고 하였다. 물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회사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있다.)

정말 다행히도 이렇게 최악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회사는 대놓고 '이곳을 피해서 가시오'라고 광고해주는 격이니 정중히 거르면 다행이다. 


면접을 보다 보면 이 회사가 나를 면접을 보는 것인지 내가 이 회사를 면접을 보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나쁠 건 없다. 예전의 갑을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난 면접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개팅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들처럼, 난 이 회사와 소위 말하는 '썸' 타기 전 탐색전을 펼치는 것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면접관 혹은 리크루터와 인터뷰를 볼 때 간단한 자기소개로 대화의 포문을 연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서로의 안부를 짤막하게 물은 뒤, 면접관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1. 자기소개를 해주시오

이 질문의 핵심은 내가 어떤 회사에서 일했으며, 그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므로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설명하면 된다. 이 와중에 내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때도 있고, 면접관이 이미 내 포트폴리오를 보았다면 생략해도 된다. 

ㄱ. 내가 졸업한 학교와 전공 

ㄴ. 그동안 내가 다녔던 회사 - 담당 업무, 내가 리드한 프로젝트. 인상적이었던 성과 등등.


2. 지금 회사를 떠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났다면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왜 이직을 하고자 하는지 물을 것이다.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요, 상사가 정말 저를 힘들게 해요, 등등의 진실은 여기서 잠깐 묻어두는 게 좋다. 내가 지금의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이직을 하고자 한다는 희망적인 답변, 혹은 평소의 내 관심분야였던 곳에 지원을 하고 싶어서 등등 미래지향적인 질문을 하며 면접관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면접관은 이 질문을 통해 내 회사의 어두운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게 아닌, 나의 관심분야와 진취적인 모습을 보고자 함이다. 


3. 본인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강점은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다. 집중력이 좋아 업무를 완성도 있게 마무리 짓는다던지, 시간 분배를 잘하는 멀티플레이어라던지, 사교성이 좋아 팀 내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할 수 있다던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막상 약점을 얘기하려고 할 때는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덤벙대는 실수를 한다던지, 자기주장이 강해 팀 내의 분위기를 해친다던지 등등 '이것을 내가 이야기해도 되나.' 싶은 나의 감추고 싶은 약점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보는 시각에 따라 강점이 될 수 도 있는 약점을 얘기하거나, 혹은 솔직하게 내 약점을 이야기하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면 좋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그만큼 완성도 있는 프로젝트를 내놓기 위해 내가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면 좋다. 내가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다른 팀원들과 소통이 어렵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늘 먼저 한 발 다가가 대화를 개시하려고 노력을 한다던가,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 마디마디마다 팀원들에게 디테일한 중간보고와 피드백 요청을 한다던가 등등. 면접관은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조선 백자 같은 인재상을 원하는 것이 아닌, 옥에 티가 있을지언정 그것을 알고 있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재상에게 더 높은 점수를 쳐준다. 


인터뷰 맨 마지막에 면접관은 늘 면접자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없는지를 묻는다. 

면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너다. 내가 이 회사에 그동안 갖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고, 그만큼 내가 이 포지션에 갖는 관심이 커다란 것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면접자가 면접관에게 할 수 있는 질문들


1. 이 포지션이 새로 생긴 포지션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공석이었는가?

팀이 확장을 해서 인원 충원이 필요한 경우, 그래서 새로 생긴 포지션이라면 이 회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팀에서 이 포지션에 기대하는 역할과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만약 이 포지션의 전임자가 어떠한 사정이 생겨 떠나게 되었다면, 이 포지션이 오랫동안 공석이었다면 그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보통 매니저들이 답변해 주기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이라 리크루터와 이야기할 때 물어보면 좋을 질문이다. 


2.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은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지는가? 

팀 내의 소통이 원활한지, 어떤 식으로 팀원, 매니저와 소통하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 


3. 면접관이 생각하는 이 회사의 장점, 그리고 아쉬운 점은? 

인사이더 정보다. 이 회사에 나보다 먼저 입사해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외부인은 잘 알 수 없는 꿀팁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적대적인 면접관에게서는 아쉬운 점을 끌어내기 힘들겠지만 충분히 라포를 다진 경우에는 예상치 못했던 답변을 얻을 수 있다. 


4. 이 포지션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이 포지션에서 일을 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 뚜렷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 훗날 나에게도, 회사의 입장에서 성과 급여 및 승진을 가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보통 매니저와 팀원들이 연말 평가 때 피드백을 제공하기 때문에 각 회사마다 평가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3개월 동안 이직을 준비하면서 겪은 많은 일들은 어떨 때는 자괴감으로, 실망감으로, 또 어떨 때는 두근대는 설렘으로 내게 다가온 귀중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회사가 날 선택하는 것이 아닌 내가 회사를 선택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자세도 이때 체득할 수 있었다. 정들었던 옛 둥지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다니는 철새처럼 나는 또 새로운 환경에 발을 담그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이제 사회 초년생, 햇병아리라고 불리기에는 민망할 것 같다. 닭 볏도 좀 자라고 날개도 좀 커진 기분이다. 한국에서 머나먼 타지 뉴욕 땅에 자리 잡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디자이너로 뿌리내리는 과정 동안, 맨 땅에 헤딩도 많이 했고, 흔히 말하는 삽질도 여러 번 했다. 가끔은 멘토 같은 분들이 가르쳐주신 귀중한 조언들이 참 감사하게 다가왔고 난 그걸 나 혼자 간직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내 경험도 살을 붙여 이렇게 글로 적어내게 되었다.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덧붙이고 싶다. 

내 인생의 한 챕터에서 갈림길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을 하시라고. 비록 그 길이 돌고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가끔 가다 '아,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지?'라고 후회할 때가 오더라도 그 모든 게 나라는 사람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이 될 거라는 확신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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